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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천녀가 아로새긴 북미륵암 좌상… 두륜산에 번지는 인자한 미소가련봉 부근 암반으로 조각
대칭 이룬 남미륵암도 존재
박수은 기자  |  pse@h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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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5  14:4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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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의 인자한 모습은 절로 경건함을 갖게 한다.
   
▲ 북미륵암이 있는 용화전 풍경.
   
▲ 아름다운 가을 단풍을 만날 수 있는 대흥사.
   
▲ 천녀와 천동의 전설이 내려오는 천년수.

대흥사를 둥글게 안고 있는 두륜산의 가련봉 방향으로 제법 험한 산세를 오르다 보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을 쯤 돌계단 위에 자리잡은 전각을 만난다. 이 전각의 이름은 용화전. 천녀가 아로새겼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을 담고 있는 곳이다.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은 산꼭대기의 자연 암반을 그대로 활용해 조각됐고, 높이 4.2m에 달한다. 높은 곳에 위치한 만큼 봉우리의 절경도 두루두루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북미륵암은 보물 제48호로 지정됐다가 지난 2005년 국보 제308호로 승격됐다.

이름에 북쪽을 뜻하는 '북'이 포함된 것은 대흥사를 중심으로 남북 2곳에 미륵암이 있기 때문이다. 두 미륵암은 서로 대칭을 이루는데 남미륵암은 두륜봉 아래에 위치한다. 또한 북미륵암은 양각으로, 남미륵암은 음각으로 만들어졌다는 차이점도 보이고 있다. 창건 기록이 없어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말이나 고려 초기라는 추측이 전한다.

이 미륵암은 천녀와 천동이 하늘에서 내려와 조각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천상에 살던 천녀와 천동은 죄를 지어 옥황상제로부터 하늘에서 쫓겨나는 벌을 받게 된다. 대신 하늘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하루 낮 동안 바위에 불상을 조각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지상에 내려온 천녀와 천동은 두륜산에 있는 천년수를 발견했고 해가지지 않도록 천년수에 해를 매달아놓은 채 천녀는 북쪽 바위에 앉아있는 불상을, 천동은 남쪽 바위에 서 있는 불상을 조각했다. 앉아 있는 불상을 조각한 천녀는 빠르게 조각을 마쳐 천동을 기다리지만, 하염없이 시간만 흐르자 천녀는 매달린 해의 끈을 자르고 하늘로 올라가버리고 말았다. 어둠이 찾아오자 천동은 불상을 조각하지 못해 하늘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남미륵암은 희미한 음각으로 표현돼 있다.

   
▲ 북미륵암 동쪽 삼층석탑.

북미륵암 인근에는 같은 형태의 삼층석탑이 두 채 있다. 하나는 북미륵암의 옆, 다른 하나는 북미륵암에서 동쪽으로 조금 올라가야 한다. 이 탑들은 동서로 대칭을 이룬 쌍탑인데 동탑의 받침 역할을 하는 바위는 오른손 손바닥 형태로 선명히 조각돼 있다. 부처님 손바닥 위에 석탑이 조성된 형태다.

이연숙 문화관광해설사는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북미륵암이 있는 곳은 바닷게와 같은 형태여서 게의 오른발인 서쪽과 왼발인 동쪽에 삼층석탑을 세워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고 말했다.

천녀와 천동의 전설에 등장하는 천년수는 북미륵암에서 만일암지로 가는 길목에서 만날 수 있다. 천년수는 수령 1200~150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만일암지의 만일(挽日)은 해를 잡아맨다는 뜻으로, 북미륵암과 남미륵암의 전설에도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만일암지에는 전남 문화재자료 제246호로 지정된 오층석탑이 남아있다.

서산대사 충정 기린 표충사

대흥사에는 사찰임에도 유교형식의 사당을 겸한 '표충사(表忠祠)'가 있다. 서산대사의 위국충정을 기리고 은덕을 추모하기 위해 제자들이 지난 1669년 건립한 사당이다. 서산대사를 주벽으로 그의 제자인 사명대사와 뇌묵당 처영대사를 배향하고 있다. 정조 12년 왕이 표충사로 사액했고, 매년 예관과 헌관을 보내 관급으로 제향하게 했다.

특히 정조대왕이 표충사 편액을 직접 금물로 써서 내렸을 만큼 예우했던 곳이다.

이 곳에는 별도의 비각이 있으며 표충사건사적비와 서산대사표충사기적비가 세워져 있다.

 

   
 

성스러운 보물 한 자리에서 만나는 성보박물관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는 지난 1978년 서산대사 유물관을 건립해 서산대사의 유물을 보관해오다가 1998년 서산대사와 초의선사 유물 등을 모아 성보박물관을 열었다.

또한 유물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지난 2012년 새로운 성보박물관을 건립했다.

성보박물관에는 다양한 불화를 살펴볼 수 있는 불화관, 성스러운 보물을 모은 성보관, 다도의 중흥을 이끈 초의선사 유물을 모은 초의관 등이 조성돼 있어 다양한 고문서와 현판, 보물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서산대사의 유물을 전시한 유물관은 서산대사가 쓰던 발우·칠보염주 등을 비롯해 승군단 표지, 호패, 친서, 금병풍 등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서산대사는 대흥사가 물, 불, 바람으로 인한 세 가지 재앙이 들어오지 않고 만세토록 파괴되지 않는 곳이라며 가사와 발우를 전하도록 했다.

 

   
 

대흥사 곳곳에 남은 조선 후기 명필들의 흔적

대흥사 전각의 현판에는 조선 후기 명필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대웅보전', '천불전', '침계루' 현판은 옥동 이서가 만든 동국진체를 아름답게 완성했다고 알려진 남도 명필 원교 이광사의 글씨이다.

대웅보전 바로 옆 '무량수각' 현판은 조선 후기를 주름잡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고 '표충사'는 정조대왕, '가허루'는 창암 이삼만의 글씨다. 

현판에는 추사와 원교가 얽힌 이야기도 전해진다. 원교가 세상을 떠난 지 60여년 후 추사는 제주로 유배를 가는 길에 교류하고 있던 초의를 만나고자 대흥사에 들렀다. 그 때 원교가 쓴 대웅보전 현판을 보고 이를 비판하며 직접 대웅보전 현판을 쓴 뒤 바꿔 걸라고 했는데, 이후 유배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여전히 원교의 현판이 보관되어 있는 것을 보고 이를 다시 내다 걸게 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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