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옥(해남공고 교사)

 
 

대장갑질! 올해의 사자성어는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입에 올린 용어가 아닐까?

비행기를 돌려세운, 대리점에 덤터기로 남은 물량을 안기는 우유업체 사장의 이야기는 흔하고도 흔한 이야기 중의 하나다. 사람들은 갑질 소식에 예외 없이 공감하고 분노한다. 그만큼 주변에 많아서, 겪은 적 있어서 더욱.

공관병 상대의 갑질은 갑질이 아니라 명령, 부당한 명령이라 불러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공관병은 명령 거부하기를 선택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상관의 명령이므로 지체없이 꼼짝없이 이행하지 않으면 군법상 명령불복종에 해당되고 바로 영창을 가야하는 처지이므로 갑질이라는 이름은 부정확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갑질은 뭣이지? 원래는 계약서를 작성할 때 계약서상의 두 주체를 일일이 거론하기 불편하므로 '갑', '을'이라 칭하는데서 발생했다. 계약관계란 계약조건 범위에서만 서로 거래를 하는 관계이므로 계약을 벗어난 범위에는 강제적 요구나 불리함이 있을 수가 없어야 한다. 갑질은 갑의 계약 외 요구를 을이 거부하고 싶으나 강한 갑으로부터 당할 다른 피해가 우려되므로 할 수 없이 부당한 요구를 떠안을 때 발생한다. 그 요구도 부당한 피해지만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해버릴 것이 두려워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에.

계약은 선택의 문제이니 평등할 것 같지만 대기업과 하청업체, 본사와 지방 대리점 등의 관계는 계약조건부터 을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고, 계약서가 적시하지 못하는 포괄적 내용, 해석차이를 부르는 애매한 문제도 발생한다. 부당함을 증명하면 을이 입은 피해를 언제든지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라면 갑질은 그렇게 자주 고약하게 발생하진 않는다. 문제는 증명이 쉽지만은 않고, 조금이라도 애매한 지점에 대해 권력이나 사법부가 대부분 갑, 강자의 편에 서기에 을들은 대항을 꿈꾸지 못한다.

봉건사회에서 소작인이 지주에게 견디기 어려운 것은 관행적 소작료만이 아니라 주인의 턱없는 다양한 요구사항이었다. 지주가 "우리집 담이 이번 태풍에 허물어졌는데" 이 한마디 흘림만으로도 소작인은 알아서 곱게 담을 쌓아주어야 했다. 내년에 소작을 놓치지 않으려면.

계약 이외의 불리한 요구는 당연히 거절이 가능하고, 이 거절로 입는 피해는 당연하게 원상회복이 가능한 사회여야 한다. 지금은 실제적인 민주정권이 들어서니 각종의 갑질에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고, 부당한 문제에 대한 정부의 공정한 개입으로 여기저기서 억울함이 바로잡히고 있는 상황으로 읽힌다. 운전사 폭언, 피자집 갑질, 파리바게뜨 비정규직 채용문제 등은 너무나 흔한 일상의 일이었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준다는 말을 실감한다. 역시 사람 사는 곳에선 민주주의가 중요한 문제다 언제나.

더 깊은 곳을 돌아본다. 갑에 대한 선망과 갑질에의 욕망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 갑의 위치에만 서려고 하는, 참고 견디어 나도 마침내 갑이 되고나면 보다 더 강력한 갑질을 할 생각. 그 근저에 물질적 성취만이 성공이라는 가치가 깔려있다. 윤리, 상식, 배려를 다 버리더라도 출세와 성공만이 답이라는 물질주의적 사회풍조. 윤리와 상식, 배려를 지킨 사람에게 존경이 아니라 조롱이 쏟아질 정도로 우리사회는 이미 물질 숭배로 병들어 있다. 당신과 나 우리들 마음 속에도 혹시? 이 뿌리가 좋아지지 않고서 갑질문화의 온전한 해결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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