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는 ABCD, 즉 원자력, 생물, 화학, 재난(Atomic, Biological, Chemical, Disaster)위기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
1995년 일본은 이 네 가지 위기를 한꺼번에 경험했다. 1월에 한신아와지(阪神·淡路)대지진(D), 3월 도쿄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B·C) 12월에는 고속증식로 몬쥬(文殊)의 나트륨냉각제 누출화재사고(A)가 일어났다. 국가차원의 위기관리 문제점이 노출되었지만 사고로 인한 경각심은 잠깐이었고 사고에 대한 근본적 대비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이는 결국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에서 모든 전원이 상실되고 노심용융이 일어나는 극한 사고 가 발생했다. 5중 안전시설을 갖춘 다중방호시설이나 심층방호 시설로 원전은 절대 안전하다는 안전신화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사고 원인은 착각에 지나지 않았던 허구적인 안전신화에 기대어 위기관리 능력이 결여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1974년 일본 아오모리에서 지역주민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험항해에 나섰던 원자력동력선 '무쓰'에서 방사능 차폐벽의 설계미스로 미량의 방사능이 누출되었다. 그러나 기술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자만심에 돌발사태에 대한 방재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누구도 가까이 가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야식용으로 준비했던 주먹밥을 던져서 막아보려 했으나 잘되지 않자 우왕좌왕 하다 결국 말단연구원이 주먹밥으로 그 틈새를 메우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9년 3월 31일 월성원전 1호기에서 핵연료 교체과정에서 장비 오작동으로 37개 한 묶음 중 2개가 바닥과 수조에 떨어졌다. 고선량 방사능을 내뿜는 연료봉을 한 명의 작업자가 집게하나로 10시간이 넘는 사투 끝에 처리했다.
이 사건은 원전 측의 은폐로 유야무야 넘어 갔고 당시 작업자는 방사능 피폭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시간이 흘러 이제는 진상규명조차도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2012년 2월에는 고리1호기 전원이 12분간이나 끊기는 '블랙아웃' 사태가 벌어졌지만 한 달가량이나 사고를 은폐한 적도 있다.
신고리 5·6호기 공사재개 여부를 논의한 공론화위원회에서 공사재개 찬성이 59.9%로 공사를 재개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찬성 측과 반대 측의 정보 비대칭성과 이미 투입된 비용 문제가 찬성으로 기울게 된 주 요인이었다. 이미 상당부분 투자가 이루어진 신고리 5·6호기는 건설하되 향후 더 이상 건설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흐름으로 단기적으로는 경제논리, 장기적으로는 안전논리에 힘이 실렸다.
양쪽 모두 완승이나 완패가 아니라서 '신의 한 수' 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원전건설 재개에도 불구하고 폐지된 고리 1호기를 포함하여 원전 10기가 한 지역에 몰려있고 사고발생시 직접 영향범위인 반경 30km 내에 382만명이 살고 있다는 것은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이다.
절대적 안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안전기준은 기술적 제약과 경제적 제약 때문에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타당성을 갖도록 설정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최저한의 기준을 충족했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국민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허구적 안전신화에서 벗어나 투명성을 높이고 항상 최선을 목표로 안전기준을 끌어 올려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