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웅(해남군장애인종합복지관장)

 
 

연일 쏟아지는 뜨거운 뉴스들이 많다보니 벌써 오래 전 이야기 같지만, 지난달에 있었던 '신고리 공론화 위원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고 싶다. 지난달 20일경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 위원회는 공론 조사결과 발표를 통해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공사 재개와 함께 장기적인 탈원전의 길을 제안하였다. 공론와 위원회의 제안 결과에 대해 개인적인 호불호야 있지만 그 내용은 일단 뒤로 하고, 그 공론화 과정과 그 결과를 존중하는 모습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지금껏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서 하는 일에 대한 '공론화'과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번처럼 국민적인 관심을 높이고 결과에 대한 불협화음의 강도가 낮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 동안 각종 정책이나 대규모 사업을 앞두고 벌어졌던 공론화 과정은 공청회, 여론조사, 타운미팅 등의 방법으로 시도되었으나 찬성하는 측이나 반대하는 측이나 다들 자기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만을 주 대상으로 일방적인 주장을 펼쳤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배제하곤 했던 경험들 속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다보니 '공론화'라는 다양한 형식들이 관심영역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냉소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공론화의 과정은 독특하고 신선했다. 처음 공론화 위원회를 꾸려 공론화 과정을 만들어가겠다는 청사진을 접했었을 때는 '그게 과연 가능할까?' 라는 기대 섞인 의구심에서부터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를 가리기위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학습된 냉소까지 다양하지만 부정적인 스펙트럼이 내 안에서도 여럿 자리 잡고 있었다.

3개월이라는 그리 긴 기간은 아니었으나 각계각층의 시민 471명으로 구성된 시민참여단은 전문가의 강의와 인터넷 강좌를 통해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는 과정을 거치고, 치열한 내부토론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순회토론회, 4번의 여론조사를 거쳐 결론을 도출하였다. 그 과정에서 공론화 과정에 들어서기 전에 가졌던 입장이 변화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갈등이 예상되는 어떤 일을 결정하고자 할 때 각자의 주장만을 고집하지 않고 그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 공부하고, 숙의하고, 토론하고, 귀를 열어 자신의 입장 변화도 수용하는 과정들이 몹시 세련되어 보였다.

물론 처음 시도되었던 과정이라 미숙함이나 부족함이 있고 갈등이 예상되는 모든 일들을 공론화의 과정으로 해소해 나갈 수는 없겠으나 이번 '신고리 공론화 위원회'의 활동 과정은 갈등 해결을 위한 '공론화'의 좋은 예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싶다.

국가사업과 같은 거시적인 일에도 그러한 것처럼, 우리 같은 소시민의 평범한 일상에서도 공론화의 과정은 필요한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거나 협업을 해야 할 때 난감한 경우들이 가끔 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주장을 끝까지 굽히려 하지 않고 타인의 다양한 의견에 대해 '닫힌 귀'를 고수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가 그런 경우이다.

혼자 사는 세상이라면 이런 저런 고려나 배려 없이 '나' 하고 싶은 대로 세상을 세팅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 혼자서 책임을 지면 될 일이나, 혼자서 사는 세상이 아니고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일을 결정해야 하는 과정에서의 합리적인 공론화에 이르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

하다못해 가족 나들이의 장소를 결정하는 경우라도, 나의 경험과 입장만을 고수하기보다 다른 가족들의 의견과 그 배경을 '열린 귀'로 경청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성실히 거치고 그 과정에서 나의 주장과 다른 결론이 나오더라도 그 결과를 존중하는 태도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공동의 책임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크건 작건 어떠한 일을 결정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때, 내 주장과 경험이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처럼 타인의 주장과 경험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는 인식, 서로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는 인식, 서로 다른 주장을 합리적인 경청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 그 과정에 의해 도출된 결론은 존중하고 함께 책임진다는 인식의 태도가 일상화 된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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