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성송을 사랑한 화가.
▲ 수성송을 사랑한 화가.

"소나무는 한국인의 얼이다". 사진가 배병우가 한 말이다. 우리 조상들은 새 생명이 태어나면 소나무 가지를 꺾어 금줄에 매달아 놓았다. 또 소나무로 지은 집에 살면서 소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했다. 그렇게 살다가 생을 마치는 날에는 소나무로 짠 관에 담겨 자연으로 돌아갔다. 한국인에게 소나무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함께 하는 소중한 존재였다.

배병우는 소나무 사진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빼어난 소나무를 찾아 전국 곳곳을 돌며 작품을 남긴 세월이 40년 넘는다. 세계적 팝 가수 엘튼존이 그의 소나무 사진에 반해 비싼 값으로 작품을 사들이자 한국 사진계는 그를 주목했다.

엘튼존에 이어 루이비통과 시슬리 자라 같은 세계 패션 거장들도 그의 작품을 소장했다. 호주 국립미술관은 그를 '세계 100인의 사진가'로 선정했다.

명성이 높아지자 스페인 정부는 그에게 세계문화유산인 알함브라궁전 촬영을 맡겨 그가 2년간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배병우는 소나무처럼 우직한 모습으로 국제무대에서 이름을 알려갔다.

해남군청 마당에는 해남읍성을 수호하던 든든한 소나무가 서 있다. 수성송이다. 화가 한 사람이 틈틈이 그 나무를 그리고 있다. 지역 화가인 김창수 씨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화가는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무척 궁금했다. 그를 사진에 담고자 했지만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러다 국향 가득한 계절에 문득 그와 수성송이 떠올랐다. 아침나절 카메라를 들고 찾은 수성송 앞에는 마침 화가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다중촬영으로 작업에 열중하는 김창수 씨를 '수성송을 사랑한 화가'로 표현했다.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강렬한 터치로 수성송을 화폭에 담아내는 모습이 내게는 구도자처럼 다가왔다. 순간 사진가 배병우의 모습이 그와 오버랩됐다.

작가는 사회적 문제의식과 자신이 속한 곳의 역사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를 이해해야 한다고 거장들은 말한다.

'진정한 예술가는 자기 주변을 홀대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예술의 거장들이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구상할 때 나는 몇 번이나 고민을 하고 셔터를 눌렀을까.

생각해보니 주변 것보다 멀리서 주제를 찾으려 애쓴 것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소나무를 사랑한 사진가 배병우와 김창수 화가는 우리네 삶과 그 주변 것에 대한 애착을 가졌을 것 아닌가?

<정지승의 사진교실 535-2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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