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붙였다. 루터가 용기있게 행동에 나선 것은 가톨릭의 '면죄부' 판매행위에 격앙되었기 때문이었다.

루터가 위대한 '종교개혁자'인 것은 거대권력인 로마가톨릭에 맞선 용기있는 행동보다도 천 여년 동안 제도의 틀에 눌려 빈사상태에 빠진 복음의 진리를 되살려냈기 때문이다.

루터는 스물두살 청년기에 친구가 폭풍우 속에서 벼락에 맞아 죽는 것을 목도하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목숨을 살려주시면 수도사가 되겠다"는 서원을 했다. 그 시기 사람들은 삶의 죄책감과 그에 따른 형벌의 두려움은 커져 가는데 용서와 구원의 확신이 없는 불안함에 광신적인 영혼구원 미사나 성인숭배에 몰입하던 시기였다. 루터 역시 수도사가 되어 엄격한 수행·극기·고행·명상으로 절제되고 치열한 수도생활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죄책감과 구원에 대한 불안으로 괴로워했다. 8년여의 고통 속의 성서연구를 통해 이신칭의(以信稱義)의 원리, 즉 하나님의 의(義)가 죄인을 지옥으로 던지는 심판의 정의가 아니라 죄인을 의롭게 만드는 구원의 의임을 깨닫게 되었다.

첫째, 죄인이 의롭다 함 곧 구원에 이르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이다.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이 가져다준 선물로 구원받은 것처럼 구원받은 자들이 이웃을 향한 사랑과 봉사(diakonia)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실천하는 사명은 모든 직업과 모든 활동을 통해 실천될 수 있다고 했다.

둘째, 성경은 최고 권위를 가지고(sola scriptura) 있고, 성경의 진리는 어떤 세상적 혹은 종교적 권위보다 더 높으며 교황이나 왕의 권위보다 더 높다라는 깨우침이 그를 죽음을 무릅쓰고 종교개혁의 깃발을 들도록 추동했다.

한국교회는 500주년 종교개혁일을 역사적 기념일로 회고하고 기념행사를 하는 것으로 넘어가기에는 너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내부적으로는 공교회의 사유화, 영적 리더쉽 결여로 사회적 신뢰가 바닥을 향하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한국사회의 부조리와 부정의에 애써 눈감고 오히려 권력의 편에 서서 분단 현실의 고착화,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를 옹호하는 역할을 자임해왔다. 그 결과 교회가 한국사회 진보와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사회적 비판에 직면해 있다.

자유인 외에도 노예·이방인·유대인까지 포괄하는 다양성과 보편성의 사랑의 종교가 종교적 도그마에 갇혀 편가르고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을 문제 삼고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 누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인가?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삶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이다. 예수그리스도는 권력을 사용해 다른 사람을 지배하기 보다는 서로 섬기는 희생의 삶을 통해 생명과 정의, 평화로운 사회인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다.

한 달 사이에 지상파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에 등장한 개신교·천주교·불교 성직자들의 일탈은 개인문제를 넘어 구조적문제를 안은 한국종교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종교계 내부 부조리와 하나님보다 돈을 숭배하는 맘몬이즘의 유혹에 정직하게 직면하고 회심하지 않는다면 종교는 또 다시 개혁대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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