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읍성 흔적 군청 뒤편에
왜구 침입 막고 수성송 심어

▲ 해남읍의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숨쉬는 해남읍성은 해남군청 건물 뒤편에 일부가 남아있다.
▲ 해남읍의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숨쉬는 해남읍성은 해남군청 건물 뒤편에 일부가 남아있다.
▲ 전라남도문화재인 해남향교 대성전에서는 성현을 모시고 있다.
▲ 전라남도문화재인 해남향교 대성전에서는 성현을 모시고 있다.
▲ 해남군청의 1970년대 모습.
▲ 해남군청의 1970년대 모습.
▲ 서림공원에 위치한 단군전.
▲ 서림공원에 위치한 단군전.

해남은 고려시대 때 영암군에 속한 현이었다.

'우리 마을의 삶과 문화'에 따르면 옛 해남현은 조선조 태종 9년인 1409년 진도군과 합해져 해진군이 되고, 치소를 지금의 삼산면 나범리에 소재하는 구녹산역지로 옮겼다. 3년 후에는 왕산고현성으로 옮겨 지금의 해남읍 성내리에 읍성을 축조하기 시작했다. 해남읍성으로 치소를 옮긴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읍성의 남문인 정원루가 완성된 해가 성화을축년 1469년으로 나와 있어 이 즈음으로 추측되고 있다.

해남현이 해진군에서 다시 해남현으로 분리된 것은 세종 19년인 1437년이다. 이 때부터 현감이 상주했고 현감이 행정업무를 보는 현청이 있었는데, 이 곳이 지금의 해남군청 터이다. 1555년 현감 변협이 을묘왜변 때 왜구를 물리치고 읍성을 지켜 그 공훈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해남 동헌 앞뜰에 소나무를 심고 수성송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현재 해남군청 뒤편에만 일부 흔적이 남아 있는 해남읍성은 해남읍으로 치소를 옮기고 치소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성이다. 둥근꼴 형태로 축조돼 작은 마을 정도의 크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남아있는 성벽은 높이 5m 가량이다.

해남읍성은 해남군청 뒤, 해남서초등학교 서쪽 담 부근, 인산 제재소, 토담식당, 구 성보병원 입구, 구 국민은행, 중앙극장터, 농협군지부, 보훈회관 등으로 이어졌을 거라는 예상이며 4대 문이 위치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이 해남 사람들의 정신을 말살시키기 위해 헐어버려 북쪽만 일부 남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평동마을에는 하마비라는 명칭과 말뚝거리라는 지명이 내려오고 있다. 말을 타고 올 경우 평동마을에 도착하면 말에서 내리고 읍성까지 걸어서 들어갔기 때문에 유래됐다. 해남읍은 읍성 중심에 모든 관공서가 위치했으며, 해리택지개발사업 후 읍내 외곽으로 빠져나가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해남읍내에는 해남향교, 해촌서원, 미산서원, 민정기 가옥, 해남윤씨 녹우당, 단군전과 기미독립선언비 등 다양한 역사의 숨결이 남아 있다.

유생들 공부 하던 해남향교
독립운동 열망 담긴 서림공원

해남향교는 고려 충렬왕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남향교창수전래기에는 조선시대 해남향교의 중수와 이건에 대해 적혀 있는데, 이에 따르면 처음 이건할 때 향교구기는 고도리 향교터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1482년 중창했다. 1739년 지금의 위치로 이건했다.

공자 등 성현 24인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은 전라남도문화재 제77호로 등록돼 있으며 이 밖에 유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명륜당, 기숙사인 동재·서재, 기타 건물 5동으로 구성돼 있다. 해남향교 사무실에 미리 연락하면 유생복 입기 체험도 진행할 수 있다.

박천하 전교는 "1년에 두 차례 음력 2월 상정일, 8월 상정일에 제사를 모시고 있다"고 말했다.

해남향교 명륜당 앞마당에는 1910년에 12대 전교가 심은 은행나무가 있었으며 2014년에 향교 입구 앞으로 옮겨 심었다.

많은 군민들이 휴식을 위해 찾는 서림공원은 해남의 좋은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무를 심으면서 조성됐다. 이연숙 문화관광해설사는 "해남의 서쪽 지역인 서림이 터져 있어 기가 약하다보니 자연환경을 인위적으로 보완해 좋은 기운으로 바꾸려고 하는 풍수의 비보에 따라 팽나무, 느티나무 등을 심은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 곳에는 단군전을 비롯해 옛 현감과 관리들의 공덕비, 기미독립선언비, 4.19 고윤광현민주충혼비 등이 건립돼 있다.

단군전은 지난 1920년 화산면 금풍리 백운 이종철 씨가 구월산 삼성사를 방문했다가 일제의 만행으로 폐허가 된 영정과 사당을 발견해 화산으로 모셔와 전각을 세우면서 건립됐다. 해남군민들이 단군전건립기성회를 조직해 1957년 지금의 위치로 이건했다.

독립운동의 얼도 서림공원에 서려있다. 1919년 4월 6일 해남읍 보통학교 학생들의 독립만세 시위로 시작해 4월 11일 서림공원에서 모여 해남장터 부근으로 독립만세를 부르며 이동했다고 한다.

 

 
 

군민 휴식터로 사랑 받는 금강산과 금강골

해남 금강산은 약 해발 483m로 가벼운 등산을 하기에 적당한 높이이다. 정상을 오르면 해남 읍내 전역을 내려다볼 수 있다.

금강산은 마산면 만대산과 옥천면 만대산을 좌우로 거느리고 있다. 만대산은 만개의 큰 바위라는 뜻인데 이를 작은 봉우리로 해석할 수도 있어서 금강산은 봉우리 이만봉을 거느린 아름다운 명산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금강산 자락에 이어지는 금강골은 많은 군민들이 찾는 해남 대표 휴식터이자 탐방로이다.

해촌서원을 지나는 금강골 데크로드 산책로부터 시작해 체련공원, 출렁다리, 수변공원, 해남천 금강습지로 이어지는 금강저수지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좋은 토양에서 나오는 풍부한 맛 해남 고구마

해남 고구마는 청정 지역과 좋은 토양에서 재배된 우수성을 인정받아 지리적 표시 제42호에 등록돼 있다.

영양분이 풍부한 황토에서 자란 해남 고구마는 당도가 높고 품질이 우수해 전국의 소비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섬유질이 많고 혈압을 낮춰 건강식품과 다이어트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품종은 호박 고구마로, 익히면 호박처럼 샛노란 색을 띄며 당도가 높고 밤고구마보다 섬유질이 많아 부드러운 맛을 자랑한다.

▲ 동영상 보기
▲ 동영상 보기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