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년동안 170여건 심의

▲ ① 횡단보도가 없는 남창시장 앞 도로.
▲ ① 횡단보도가 없는 남창시장 앞 도로.
▲ ② 횡단보도 신설이 필요한 해리사무소와 해리노인정 앞 도로.
▲ ② 횡단보도 신설이 필요한 해리사무소와 해리노인정 앞 도로.
▲ ③ 중앙선만 지워지고 반사경 설치가 보류된 한 업체 앞 도로.
▲ ③ 중앙선만 지워지고 반사경 설치가 보류된 한 업체 앞 도로.

도로를 안전하게 다니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횡단보도, 교통신호기 등 교통안전시설이다. 교통안전시설은 사망위험이 큰 사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경찰청은 훈령 '교통안전시설 등 설치·관리에 관한 규칙'을 통해 교통안전시설 심의위원회를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교통안전시설 심의위원회는 횡단보도의 신설 또는 이설, 교통신호기의 신설 또는 이설, 일방통행로 및 가변차로의 지정, 중앙선 절선 좌회전 및 유턴의 허용 등을 심의한다.

경찰서의 교통안전시설 심의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해 15인 이상 20인 이내의 위원들로 구성된다. 위원장은 경찰서 교통안전시설 담당 주무과장이고 교통관련 공무원 및 전문가, 교통관련 시민단체 임원 등이 위원으로 임명된다.

해남경찰서는 매년 3차례의 심의회를 열고 적게는 10여건에서 많게는 60여건을 심의한다. 심의회에서 가결된 내용은 해남군청으로 전달돼 교통안전시설을 설치 및 관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심의회의 안건은 민원발생이나 사고위험지역 등 교통안전시설의 필요와 제거 등이 논의된다. 지난 2015년에는 총 88건을 심의해 82건 가결, 지난 2016년에는 총 66건을 심의해 55건 가결, 올해는 두차례 심의회가 열려 31건을 심의해 28건을 가결했다.

심의회의 안건 부결 수는 지난 2016년 11건으로 가장 많았지만 대부분 심의회 개최마다 5건을 넘지 않았다.

심의위 통과됐어도 차일피일

북평면에 있는 남창시장. 시장안에 30여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지만 장날(2,7일)이면 주차공간이 부족해 시장 맞은편에 있는 비슷한 규모의 공원 주차장에도 차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시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왕복 1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해야 한다. 과속방지턱이나 신호등, 횡단보도 등 안전장치가 전혀 없기 때문에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보행자들의 안전을 위해 횡단보도가 필요하다는 민원이 제기됐고 지난 3월 열린 교통안전시설 심의위원회에서 횡단보도 신설이 가결됐지만 아직까지도 설치가 되지 않고 있다. <사진 1>

해남읍 해리사무소와 해리노인정 앞 왕복 1차선도로. 최근에 차량통행이 늘고 특히 출퇴근 시간에 차들이 꼬리를 무는 곳인데 바로 앞에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횡단보도가 없다보니 이곳을 오가는 노인들이 위험스럽게 무단횡단을 할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지난 7월 이곳에 횡단보도와 과속방지턱을 신설하기로 심의위원회에서 결정이 됐는데 9월이 다 지날 때까지 설치가 되지 않고 있다. <사진 2>

이렇듯 교통안전시설 심의위원회에서 가결됐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 시행이 되지 않고 있는 경우는 지난해와 올해 최근 2년동안 줄잡아 10여건에 달하고 있다. 사고 위험이 있어 신속하게 교통안전시설을 보완해야 한다며 심의위원회에서 안건을 통과시켜놓고 차일피일 미뤄지는 것도 문제지만 해남경찰서나 해남군 모두 안건 통과이후 시행이 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심의위원회 의결은 경찰 권한으로 시행은 자치단체 권한으로 나뉘어져 있는데다 해남군으로 넘어온 사안도 도시계획도로는 지역개발과로 농어촌도로는 건설과로 신호등 설치는 환경교통과로 다시 분류돼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의위원회를 열어 안건을 통과시켜놓고 시행여부도 제대로 파악을 못하고 있으니 행정력 낭비에 심의위원회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가하면 가결이 됐지만 무산되거나 보류가 된 경우도 많다. 해남읍 고도사거리의 경우 사고 다발장소로 차량들의 속도를 제어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는 민원에 따라 지난해 11월 과속방지턱과 횡단보도를 합친 이른바 고원식 횡단보도를 신설하기로 심의위원회에서 가결됐지만 설치가 무산됐다. 해남읍 중앙교차로 농협주유소 앞에 회전교차로와 방지턱을 신설하자는 안도 올해 심의위원회를 통과했지만 해남군의회가 제동을 걸며 일단 보류가 됐다.

해남군 관계자는 "고도 사거리에 고원식 횡단보도를 신설하는 것은 심의위원회에서 필요성이 인정됐지만 이 곳이 왕복 4차선 도로로 제한속도가 60㎞/h 라 갑자기 속도를 줄이도록 할 경우 운전자들의 민원이 예상돼 군 자체적으로 추진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이 난 사안이다"고 밝혔다.

추진 과정에서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고 큰 문제나 또 다른 민원소지가 발생할 우려가 클 경우 보류나 무산시키는 게 타당하다고 할 수 있지만 심의위원회에서 통과된 사안이 자주 뒤집어지면 행정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심의위원회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어서 석연치않은 상황이다. 또 시행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은 물론이고 무산됐거나 보류된 내용에 대해서는 민원인들에게도 충분히 설명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 기본인데 이마저도 무시되고 있다.

남창과 땅끝 사이에 북평면 땅끝 해안로에 위치한 한 업체의 경우 1년전 공장 문을 열었지만 도로에 중앙선이 계속 이어져 회사로 진출입을 하려면 중앙선을 침범해야 하고 사고 위험이 커 중앙선을 지워주고 반사경을 2군데 설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최근 중앙선은 지워졌지만 반사경은 설치가 되지 않은 상태인데 심의위원회에서 반사경 설치는 업체에서 부담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사진 3>

업체 대표는 "여기서 회사 차도 그렇고 경운기 사고도 있어서 반사경도 필요해 같이 민원을 제기한 것인데 심위위원회에서 그렇게 결정이 난 지도 몰랐고 관련 기관에서 알려준 사람도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심위위원들 거수기 전락 논란

심위위원회 운영을 둘러싸고도 말이 나오고 있다. 경찰청 훈령에는 일선 시군의 경우 심의위원을 15명에서 20명으로 구성하도록 하고 있고 민간위원들이 과반수를 차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민감한 사안을 다룰 수 있어 위원들의 명단을 비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훈령에는 위원들 가운데 6명 이상만 참여하면 위원회가 개최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실상 위에 규정이 있으나 마다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자치단체도 마찬가지지만 해남에서도 경찰, 해남군, 도로교통안전공단, 모범운전자회, 녹색어머니회, 명예 시민경찰 쪽에서 1명씩 모두 6명 정도가 참여해 심의위원회를 열고 있다. 6명 중에 과반수만 찬성하면 가결이 되니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둘 수 밖에 없다.

특히 녹색어머니회를 비롯한 민간 참여 위원들의 경우 심의안건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채 일시와 장소만 통보받고 심의위원회에 참여하는데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현장 상황을 경찰에서 설명을 해준다고 하지만 해당 도로가 익숙하지 않거나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의 경우 이른바 대세에 따를 수 밖에 없어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한 심의위원은 "미리 어떤 내용이 다뤄지는 것인지 알고 가면 그나마 고민도 해보고 관련 자료도 찾아보고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고 당일 회의 때가 되서야 안건을 알게 되니 답답한 면이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미리 안건이 새나갈 경우 사안에 따라 로비의 대상이 되거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 있어 경찰을 제외한 다른 위원들에게 심의안건을 회의 전에 알리지 않고 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해남군 관계자는 심의안건을 미리 알고 위원회에 참석한다고 밝혀 형평성이나 공정성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시행여부 알리고 운영전반 개선 필요

이에 따라 교통안전시설 심의위원회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해결하고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운영 전반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의결과 시행을 둘러싸고 주관기관이 나뉘어져 있지만 보통 1년에 3번 정도 열리니 열릴 때마다 지금까지 가결됐던 내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서로 소통해야 한다. 그래야만 가결이 됐어도 차일피일 시행이 미뤄지는 것을 막고 아무런 통보나 상의없이 심의위원회에서 가결된 사안이 뒤집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특히 관련기관에서 아예 시행이 되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웃지 못할 상황도 사라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이를 통해 민원을 제기한 민원인에게도 추진상황을 제대로 전달해 책임행정과 소통행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민감한 사안이 다뤄질 수 있어 여러 가지 장치를 두고 있지만 오히려이것이 위원회 운영을 둘러싸고 형평성과 공정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위원회 구성이나 운영과 관련해 다시 한번 점검하고 필요하다면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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