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종교적 신념이나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대의명분으로 시작되지만 다분히 정치적이다.

서기 11세기부터 14세기 까지 십자군 전쟁은 표면상으로는 '성전(聖戰)' 이었다. 회교도에게 빼앗긴 예루살렘을 회복하기 위해 유럽 가톨릭교도가 주도한 원정전쟁인 십자군전쟁은 시간이 흐를수록 명분은 약해지고 참여세력간에 이해관계가 얽힌 세속전쟁이 되었다.

성지를 회복하기 위한 전쟁은 약탈전으로 변질되었고 4차 원정에는 아예 이슬람은 그림자도 없이 비잔틴의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하는 원정이 되었다. 지배층은 명예와 지위 권력, 상인들은 돈, 그리고 전쟁에 참여한 노예들은 자유를 얻기 위한 전쟁이었다. 360여간에 걸친 전쟁은 교황의 권력약화 및 영주, 기사들이 대거 몰락하고 국왕의 왕권강화로 귀결되었다.

미국은 1920년대 활황을 누렸지만 경제발전의 과실이 일부계층에 집중되었다. 사치품이나 투기, 주식투자 등에 편향된 기득권층의 소비행태에 경제가 좌지우지 되고 과잉투자와 과잉생산을 일반 대중들의 소비여력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1929년 대공황이 촉발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파장이 미친 공황타개를 위해 영국, 프랑스처럼 식민지를 가졌던 나라들은 폐쇄적인 경제블럭을 형성했다. 반면에 독일, 이탈리아 일본처럼 식민지를 갖지 못했던 나라들은 전체주의 아래에서 침략팽창정책을 펼쳐나갔다. 대공황은 개인에게 실업과 빈곤이라는 엄청난 고통을 주었고 국가간 이해관계의 충돌은 제2차 세계대전을 불러왔다. 엄청난 참화를 통해서 서서히 대공황의 여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공황이 전쟁을 불러오고 전쟁을 통해서 공황에서 벗어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전쟁은 블랙홀이다. 인력뿐만 아니라 모든 물자를 무한소비하고 철저히 파괴하며 인간성을 말살한다. 그럼에도 부와 권력을 더 확대하려는 자들은 전쟁을 충동질 한다.

북한의 6차 핵실험을 계기로 한반도에 전쟁의 암운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선제타격론'과 '예방전쟁론'으로 위협하는 미국과 '괌포위 사격'과 '전면전'으로 대응하는 북한 김정은 정권의 대치는 상대의 양보를 기다리며 갈 때까지 가는 치킨게임(Chicken Game)의 양상이다.

이번 사태 와중에 사드배치가 은근 슬쩍 이루어졌다. 이제는 더 나아가 전술핵 배치가 공론화되고 심지어는 핵무기 개발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초대 합참의장인 오마 브래들리 장군은 "핵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그것이 절대로 시작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어떠한 경우에도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전쟁이 발발하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는 것은 남북한과 한민족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북한의 극단적인 생존전략과 남한의 안보불안을 동시에 퇴치하는 특효약은 상호신뢰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이다.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자주성'을 넘어서서 '주체성'이 필요하다. 자주성은 해야 할 일을 솔선해서 스스로 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주체성은 해야 할 것이 명확하지 않을 때 그것을 명확히 하고 솔선해서 스스로 해내는 것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이나 자주국방의 토대도 갖추지 못했기에 국제관계에서 주체적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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