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복(시인)

 
 

몸 다스리고 온다더니…

휠체어 타고 북경으로, 제주도로
큰 바위 얼굴 공원으로
들로, 산으로 꽃구경 할 때
세상 사람들 다 쳐다봐도 당신이 있기에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소

필수, 수정이 밥 먹여 학교 보내고
도시락까지 챙기며
거동 못한 당신 곁에 있다가
저녁 길 돌아와
그들을 뒷바라지 할 때
2009년 그 가을은
당신 은혜 갚는다는 즐거움으로 살았소
그땐…. 그땐 참으로 행복했었소
정말 재미 있었다오

매듭매듭 풀고 가소
흘러간 추억들
당신의 슬픔과 한!
가슴 찢어지도록 아프게 한 내 무례함
수천 만분의 일만도 못한 내 인내
뒤돌아보며 몸소 갚으려 하는데
다 받지도 못하고
내 곁을 홀연히 떠나려 하오

미련도 없다든 이승!
그래도 가기 싫어하는 길
행복도, 즐거움도, 슬픔도
붙일 길 없는 그 길
내 힘으로 잡을 수 없어 미안하오, 윤영자 씨

이제 미련두지 말고 가시오
53년을 포개고, 또 포개어 놓았던 추억들을 하나 하나
넘기며 당신을 잊지 않으리다
당신과 함께 있으리다
지금 내 귀에 달달거리던 소리
귀찮게만 들리던 당신의 꾸지람
그립고 그립고 또 그립소

사랑한다는 말은
모두가 입 밖에 소리라 하던 영자 씨
그래도 사랑한다는 그 말 밖에
내가 가는 날까지 편안하게 지내시고
우리 그때 한 쌍의 학으로
하늘여행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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