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활센터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65세 정년이 되어 퇴임한지 두달이 다 되어가면서 마음과 달리 법적 사회적으로 노인이 되었다.

최근 미국의 어느 패션잡지가 9월호에서 노화방지(안티에이징)라는 표현은 은연중 나이 듦(노화)을 퇴치해야 할 대상이라는 메시지를 주므로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는 글을 읽었다. 젊음이 아름답다고 나이 듦이 추한 건 아니라며 노화방지라는 말은 노인차별(에이지즘)이라고 본 것이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늙거나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을 싫어하는 분위기가 일반화되었다. 사회가 성숙해질수록 성차별이나 인종차별 등은 약화되어 왔는데 유독 노인차별은 점점 더 심해진다. 사회적 차별은 늘 다른 사람과 집단을 대상으로 하지만 노인차별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미래를 가리키고 있는데도 그렇다.

젊음을 나타내는 청춘이 부러워 나이 어리고 젊어 보인다는 말은 듣기 좋아한다. 이런 말들은 젊음은 좋고 늙음은 나쁘다는 '나이 불평등'을 만들 수 있다. 젊음과 늙음이라는 자연스러운 인생의 변화를 좋고 나쁨의 잣대로 본다면 늙음을 나쁘게 보는 차별의 문제가 된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화장품회사와 제약회사만 돈을 벌게 할뿐 늙음을 막을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그렇다면 젊음과 늙음은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 다르면서도 또한 같은 것이다. 젊음과 늙음은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둘이 아닌 하나로서 서로 존중하고 축복하는 아름다운 한 생명인 것이다.

예전에는 젊은이들은 어르신들이 살아온 생활과 삶의 방식을 배웠으며 그들의 지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어르신들은 젊은이들의 삶의 지표였으며 지역공동체의 중심축이었다.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우리 지역도 노인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 초고령화사회가 되었다. 노인들은 오늘의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있게 한 일등공신이면서도 가난과 외로움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자식들과 젊은이들의 눈치를 살피는 '눈치인생'을 사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고 있다.

우리사회는 노인들은 많지만 '큰 어른'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존경할 만한 어른을 찾아보기 힘든 '어른 없는 사회'가 되었다고 말한다. 노인들은 나이들면서 더 권위적이고 독선적으로 변하는 경향도 있다. 나이만 먹는다고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어서 젊은이들의 사표(師表)가 되는 어른은 많지 않다.

어른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시대변화를 이끌 지성과 통찰력, 불의에 맞서는 비판과 저항정신, 반대자와 약자에 대한 관용과 베품, 시대의 변화와 호흡하는 유연한 사고 등을 꼽을 수 있다.

어른은 끝없이 인간의 욕망을 충동질하고, 욕망이 욕망을 낳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정글사회의 문제점과 그 덧없음을 나이 들어감에 따라 통찰하며 불의에 비판 저항하며 진리를 외치는 용기를 가지며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고 자기성찰과 소통을 통한 인간이해와 관용 및 배려를 중요시해야 한다.

"편하게 살려거든 불의를 외면하라. 인간답게 살려거든 그에 도전하라!"

"생각하는 대로 살라,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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