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덥지근한 온도와 습도에 벼들이 몰라보게 커져 있다. 논을 갈고 땅을 골라 물을 댄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허리춤까지 키가 자라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언뜻번뜻 백로들이 서성인다. 그것도 넓디넓은 온 논에 다 있는 것은 아니다. 몇 몇 먹이가 있는 논에만 그리 있다.

제초제와 농약으로 먹이가 사라진 논엔 가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친환경농사가 지어지는 논엔 미꾸라지, 우렁이, 다슬기, 드렁허리, 옆새우, 장구애비, 송장헤엄치개, 거머리까지 먹을 것이 가득하다. 다만 한 가지 무서운 것은 사람이 가까이 오느냐 안오느냐는 것뿐. 거의 천적이 없는 환경에서 나날이 백로 식구들은 늘어만 간다.

그도 그럴 것이 하얀 백로들은 둥지를 나무위에 튼다. 그러니 족제비나 오소리 삵이나 들고양이들이 감히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백로는 네 번째 발가락이 길어서 나뭇가지를 잘 잡을 수 있어서 쉽게 나무 위 생활에 적응한다. 그래도 둥지를 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다. 나뭇가지와 잎을 얽기 설기 엮어 쌓은 품이 바람에 날려 사라질 것만 같다. 그래도 그 안에서 사랑도 하고 새끼도 낳고 심지어 고쳐가면서 떠날 때까지 쓴다. 그 둥지에 알을 3개 정도 낳는데 약 3주간 품어 알을 부화시킨다. 새끼가 나오면 그때부터 바빠진다. 어미와 아비가 교대로 먹이를 잡아오는데 보통 2시간 정도 사냥 후에 둥지로 돌아와 먹이를 토해내 새끼를 먹인다. 이때 돌아와서부터 한 2-3분 정도 사랑의 속삭임을 펼치는데 사랑이 지극하다. 날개를 들락 말락 펼치며 서로 몸짓을 나누다 S자로 휘어진 목을 꼬았다 풀었다, 머리로 배를 쓰담쓰담, 목으로 등을 토닥토닥. 입맞춤만 빼고는 지극한 정성으로 서로를 확인한다. 부리로 입맞춤이라? 어색하기는 하다.

그 요긴한 S자 목이 백로의 특징이다. 힘차게 하늘을 날 때 목을 S자로 굽힌다. 반대로 백로와 비슷한 황새는 날 때 목을 쭉 뻗는다. 다리도 길고 목도 길고 하얀 털을 가져서 서로 비슷해 보여도 날 때 목을 보면 쉽게 구별이 된다.

백로는 왜가리와 함께 모여 둥지를 짓고 번식을 하는 데 같이 여름철새이거나 텃새로 살고 있다. 분류상 황새목 왜가리과에 속해 있는데 속만 백로속 왜가리속 황로속으로 나뉜다. 그러니 두 종은 서로 비슷한 생활을 공유한다. 다른 것이 있다면 백로는 다리와 부리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하얀 깃털로 덮여 있으나 왜가리는 회색 깃털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 그러니 백로를 두루미로 오해하거나 왜가리를 재두루미로 착각하는 경우도 생긴다.

한편 천적이 없다보니 점점 그 수가 불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대도시 주변에선 백로 왜가리들이 숲을 차지하고 밤낮으로 울어대는 바람에 시끄러워 잠을 못잘 정도라고 하소연을 한다. 깃털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먼지와 배설되는 많은 양의 똥 때문에 차량에 피해가 가고 빨래도 널지 못할 지경이라고도 한다. 악취 또한 큰 문제라고 한다.

그래서 내놓은 대책들이 나무 솎아내기다. 백로들이 살던 나무들을 가을 무렵 베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검은 구름에 백로 지나가는 격이다. 이듬해 살 곳을 잃은 백로들은 풍선효과처럼 또 다른 곳에 모여들 것이고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은 채 다른 곳으로 옮겨갈 뿐이다.

'까마귀 호골에 백로야 가지마라'는 노래에서 들어왔던 것처럼 오랜 세월 길조로 여겨왔고 함께 살아 왔듯이 정착을 방해하고 정착을 유도하는 여러 공생의 방법으로 그 수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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