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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과 세상살이민인기(전 해남지역자활센터 관장)
해남신문  |  mig552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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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10  17:4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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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문턱에 들어서는 입추(立秋)가 지나도 불볕더위다. 입추에는 벼가 한창 자랄 때라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짓는다'고 했다. 올해에도 찜통더위로 더위 먹을까 건강 걱정과 엄청난 가뭄으로 농사 걱정을 하는 농민들의 한숨소리가 들린다. 우리고장 해남은 자연재해가 별로 없는 복 받은 땅이었는데 올해는 왜 이렇게 덥고 가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없는 사람들에게는 겨울보다 여름 지내기가 났다는 말을 어릴 적부터 들었다. 불 때고 물을 덥혀야 하는 겨울보다 여름 더위는 견딜만 했고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다. 지금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여름이 더 힘들고 서럽다. 누구는 에어컨 바람으로 집과 사무실에서 시원하게 지내지만 농사짓고 없는 사람들은 선풍기 하나로 살인적인 더위에 맞서야 한다. 요즘처럼 폭염이 지속되는 삼복더위에는 소득에 따른 거주지 온도 양극화까지 발생한다. 이른바 더위 불평등이다.

지난 토요일에는 더위도 피할 겸 산이 있어 가고 다녀오면 며칠간 머리가 맑고 기분이 좋은 산행 습관에 따라 이른 새벽에 출발하여 자주 다니는 지리산 산행에 나섰다. 백무동에서 장터목 대피소와 세석대피소를 거쳐 한신계곡으로 내려오는 짧지 않은 코스다.

산행을 고단한 인생살이와 흔히 비교한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흠뻑 땀을 흘리며 홀로 나아간다. 숨차고 힘들지만 한 걸음 한 걸음 그저 걷고 또 걷는다. 정상인 천왕봉은 가까운 봉우리와 비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장터목과 세석에 부는 바람은 시원함을 넘어 차갑게 느껴진다. 오르는 길이 여러 갈래여서 각자 다른 코스로 왔지만 이곳에서 많은 산행꾼들이 함께 만난다. 사람들의 생각과 사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행복이라는 인생의 보편적인 목표가 공통적인 것과 같다.

산에 오를 때 빨리 오르냐, 천천히 오르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뭔가에 쫓기듯 빨리 오른 사람과 풍경을 즐기며 천천히 오른 사람이 서로 무시하거나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 형편에 맞게 오르거나 오르다 말고 내려와도 그뿐이다. 경쟁과 효율이 우선시되는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정글사회에서의 빨리빨리는 산행에서는 최선의 방법이 아님은 분명하다.

산행은 가진 것을 버리는 과정이다. 산에 올라 사람 사는 세상을 내려다보면 아웅다웅 살았던 일상의 세상살이가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생각하게 된다. 남을 미워하는 생각과 지나친 욕심과 집착을 땀에 섞어 버리고 싶어진다. 정상은 오래 머무는 곳이 아니며 오래 머물 수 없어 오른 순간 내려갈 준비를 해 다른 사람에게 비켜줘야 한다. 산행은 내려갈 때가 위험하여 조심해야 한다. 세상살이도 마찬가지다.

한신계곡 물에 발을 담궜다. 가물어 물은 많지 않았지만 차가워 오래 견딜 수 없다. 이 계곡물은 맑고 가볍게 하염없이 산골짝을 흘러내린다. 앞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흐르다 보면 더렵혀진 물이나 썩은 물과도 만날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 그런 물과 만나 섞여 흐르지만 본래 맑고 차가운 제마음 제정신을 잃지 않고 바다로 흘러갈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나주까지는 소나기가 쏟아져 기분 좋았지만 해남에 도착하니 열대야에 아스팔트 도로위에는 물기가 전혀 없다. 이제 제발 찜통더위는 물러가고 비 좀 내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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