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황사 뒷산, 달마산 왼쪽 귀퉁이 산꼭대기에는 작으나 작은 암자 하나가 있다. 산꼭대기에 있는 손톱만한 암자다. 역사를 품고 있거나 문화재적 가치를 지녔다는 말 들어본 적 없지만 한 번 가면 자주 찾게 된다. 몇 번 방송을 타고 세상에 알려지면서 외지 사람들 방문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신기해서 그런다고들 하지만 볼수록 암자는 여러 가지를 다 갖추었다.

조금 떨어진 삼성각 가는 길목쯤에 서서 보면 암자는 하늘에 떠있거나 달마산 처마 밑에 붙은 제비집처럼 보인다. 건물의 크기보다 더 아래에서부터 좁은 틈을 돌로 쌓아올리고 흙을 메꿔 터를 만들었다. 눈썹으로 불러 무방할 작은 집이 그 돌틈 사이에 앉아있다. 어떤 간절한 믿음이 산꼭대기라고 할 만한 자리에 바위틈을 메꿔 암자를 지을 생각을 했는지. 하루하루 돌을 쌓고 흙을 메꿨는지.

바위틈의 암자는 자연을 거스르거나 억지로 힘자랑을 하는 대목이 전혀 없다. 자연의 틈 속에 자연의 일부로 박힌 듯한 제비집 같은 암자다. 암자에서 보는 낙조는 제일의 절경이다. 드론을 이용한 촬영기술도 발달한 요즘이니 암자와 낙조와 이를 눈 시리게 바라보는 여행객을 함께 담은 걸작사진을 누군가 찍어주시기를 기대해본다.

낙조와 전망도 시원하지만 작은 암자를 둘러보면서 놀라는 것이 몇 가지 더 있다. 작은 터에 맞게 기둥과 서까래는 가늘고 작다. 도솔암 현판도 작고 겸손하지만 그 기둥에 맞게 써붙인 주련의 작은 글씨가 금빛으로 반짝인다. 시를 적은 이도 그 글씨를 남긴 이도 모른다. 조광장엄동해출(朝光莊嚴東海出) 야경적정해중월(夜景寂靜海中月) 몇 발짝을 경계로 산 능선을 넘나들며 장엄한 일출과 석양의 낙조를 볼 수 있는 암자에 아침과 저녁, 해와 달, 고요와 솟아남으로 맞춘 댓구는 누구의 솜씨인지 암자에 딱 들어맞는다.

작디나 작은 그 암자에 마당이 있다. 기단을 쌓아 반 뼘쯤 높여 지었으므로 건물은 품격을 갖추었고 그 아래는 분명하게 마당이라 불러야 한다. 안전을 위해 둘러친 낮은 돌담과 암자 사이의 거리는 두어 발짝이니 한 평이나 될라나. 세상에서 제일 작은 마당인데 진짜 어느 집 안마당처럼 편안함을 준다.

거센 북서풍을 막아주는 바위는 마당 오른쪽에 놓였고 그 옆으로 오래된 좀팽나무가 바위를 감싸고 서있다. 겨울에는 북서풍을 막고, 여름에는 그늘을 드리우니 마당아래 서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무게로 버티어선 바위가 묵직하고 거기에 딱 맞게 늙은 티나는 좀팽나무의 구불거림이 잘 어울려 마당 한켠에 괴석도 한 폭이다.

도솔암에서 내가 제일 놀라는 대목은 뒤란이다. 그 좁은 공간에도 한 사람이 걸어갈 만한 자리가 있다. 아무 기능도 안할 것 같지만 이 뒤란이 없이 뒷 바위에 붙여 건물을 지었다면 암자는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실용과 공간의 효율적 활용이라는 데 얽메이지 않아서, 눈에 띄는 억지나 거스름이 없어서 암자는 편안했던 것이다. 균형과 순리는 안중에도 없고 효율성과 기능만 담아내면 그만이라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과, 무엇이든 크게, 눈에 틔게 해서 나 여기 있다고 악다구니를 쓰는 현대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작은 암자 도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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