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끝 전망대에서.
▲ 땅끝 전망대에서.

한국 대표사진가들의 어록과 지역이야기를 대비시켜 작가 특유의 시선을 담은 사진으로 풀어나갈 정재승의 사진이야기를 월 1회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작가는 제목을 달지 않습니다" 어느 날 충무로의 한 전시회장에서 작품의 주제를 묻는 사람들에게 사진가 김중만은 이렇게 대답했다. "카메라를 드는 순간 누구나 작가다"라는 멋진 표현을 스스럼없이 전파하는 그는 사진을 배우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매료시켰고, 창의적인 생각을 갖게 했다. 국내에서 월수입 17억을 넘나들던 상업사진계의 최강자였던 그가 홀연히 아프리카로 떠난 이후, 전 세계를 누비며 문화예술의 중심도시인 파리를 주 무대로 활동하기까지 그의 손에는 언제나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근래,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으로 인해 주변에도 실력 좋은 사진가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하나같이 쨍한 풍경 한 장면 얻기만 바라는 모양새다. 상대방의 오감을 만족시켜야 실력을 인정받는 사진계의 현실에서 주제의 동일성이 주는 예술의 세계는 사람들의 진정성과 창의적인 생각을 가로 막았다. 그래서인지 사진이라는 예술행위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수없이 망설여왔던 사진이야기를 이제야 기고하는 이유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지역의 문화자원과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세세하게 기록하여 남기고자 하는 생각에서다. 계획을 세우고 나니 작품에 제목을 달지 않았던 작가의 의도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어떤 일을 준비하거나 혼자만의 생각이 필요할 때 나는 가끔 땅끝에 간다. 조용히 사색하며 걷기에는 땅끝바다가 보이는 산책로만큼 좋은 곳이 없다. 뭍의 끄트머리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 이곳에서 곰곰이 생각해 본 것은 이생의 자랑거리에 지나지 않는 모든 것들을 뛰어 넘기를 바라는 염원, 그것은 작가가 갖춰야 할 덕목인 하나의 진정성이었다.

비개인 하늘, 잿빛 바다와 먹구름 사이로 정오의 햇살이 망망한 바다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지나는 배 한척 없이 고요한 바다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에게 마음의 안식(安息)과 희망의 빛을 안겨주었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