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방미외교가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애초에 사드문제로 회담이 파탄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며 일부 언론이 호들갑을 떤 것에 비하여 사드문제는 공식 의제에도 들어 있지 않았고 상호 사전 접촉 속에 물밑에서 조율이 마무리된 형국이다.

대통령 특보가 미국에서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 라고 한 발언 직후 연합뉴스 신모 특파원이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사드 한국배치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격노했다"는 기사를 시발로 한미동맹이 파탄 날것처럼 나라가 시끄러웠던 것에 비하면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 격이다.

트럼프는 정말로 격노했는지? 격노했다면 언제 무슨 연유 때문인지? 그렇다면 한미관계 동맹의 미래를 위해서 사드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라는 분석과 전망에 대한 기사를 송고했어야 한다. 국책통신사가 '한 고위관계자' 라고 지칭하여 확인할 수 없는 취재원에게 받아쓴 기사를 자가발전을 통해 확대 재생산 한 것은 양국 간의 불협화음을 바라거나 조장할 목적이 있었다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미국언론에는 보도 되지도 않은 사실을 한국 언론이 쏟아낸 것은 독자들이나 국민들에게 사건을 그릇되게 이해시키려고 의도적 오독(誤讀)을 유발시키고자 하는 행태일 가능성이 크다.

시민주권과 촛불의 지지를 통해 당선된 우리나라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의 심기에 맞추어서 외교를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국내 여론이나 다른 의견을 지렛대로 활용하여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음에도 이러한 보도에 대해 정치권뿐만 아니라 주류 언론이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우리가 뿌리 깊은 대미 의존적 행태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류역사상 성명서의 단어 하나 오역(誤譯)으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2차 세계대전이 종전을 향해 치닫고 있던 1945년 7월 26일 미국, 영국, 중국 등의 연합군 측은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며 거부 시에는 신속하고 완전한 괴멸 뿐 이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협상을 통한 강화를 바라던 히로히토는 시간을 벌며 협상을 지속하는 전략을 택했고 스즈끼 수상은 "무조건 항복 요구에 대해 답변을 당분간 보류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 사용된 단어 묵살(默殺,모쿠사츠もくさつ)는 '언급이나 논평을 삼간다'는 의미와 '무시한다' 라는 의미가 포함된 중의적 단어였음에도 일본 측 통신사는 '노코멘트(no comment)'가 아닌 '완전히 무시한다(ignore it entirely)'로 번역한 것이다.

이러한 반응은 즉각 미국 측의 공분을 불러 일으켜 결과적으로 트루먼 대통령은 일본에 원자폭탄 투하명령문서에 서명하므로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이어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수많은 인적, 물적 피해를 불러 왔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고 또한 지나간 사건의 인과관계를 정확히 증명할 수는 없지만 만약 '노코멘트'(no comment)' 였더라면 어땠을까?

의도적인 '오독'이나 치밀한 검토 없는 '오역'이 때로는 엄청난 파국을 불러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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