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자(보길도비파원 원장)

 
 

95세, 연로하신 어머니가 드디어 사고가 나셨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가려다 그대로 주저앉아 고관절 골절이 된 것이다. 다행히 수술이 잘돼 2주일 만에 퇴원하시는 날, 의사들은 모두들 축하를 해주었다.

"그 연세에 수술을 잘 견디시고 회복 중이니 참 대단하십니다" 특히 수술을 담당한 외사촌 동생은 "고모님 이제 재활치료만 잘 하시면 돼요, 걱정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날 밤 옆자리에 누운 내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두들 수술이 잘 돼 곧 좋아질 거라는데 난 이제 갈 때가 됐나보다. 뼈 금간 곳이 문제가 아니라 입이 마르고 기침이 나는 건 여전하고 몹시 고통스럽다" 그리고는 반지 등은 이미 다 나눠주었노라 며 "넌 액세서리를 좋아하니 저 코트에 꽂아있는 18K 브로치를 주마"하시는 것이었다. 그 연세까지 큰 병 없이 정신까지도 말짱한 부모 복을 주셨던 어머니의 약해진 모습이 갑작스런 일이 아니었구나, 그동안 많이 참고 견디셨던 모습과 담담히 마지막을 준비하는 모습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 누구에게나 한번 닥칠 노쇠에 따르는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어머니도 그걸 아시고 마음정리를 하는 이런저런 행동을 하시는 걸 옆에서 보면서 그래도 후회 없는 간호를 해드리고 싶다.

병원에서 소화기능이 약해진 어머니에게 소위 보약이라는 것을 드시게 하기 위해 이튿날 한방을 찾았다. 평소 양방병원만을 이용하던 터라 거의 가지 않았던 한방병원에서 어머니는 전혀 새로운 처방을 받았다. 입이 마르고 바튼 기침이 나는 건 폐의 열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당분섭취도 꿀보다는 설탕으로, 물은 오미자차를 드시도록 하는 등 새로운 얘기들이었다. 입이 마르고 혀가 갈라져 쓰리다고 할 때마다 꿀을 발라보라고 얼마나 서투른 충고를 많이 했던가.

나는 음양이니 오행이니 하는 체질에 따라 식품을 골라 먹어야 한다는 전통 한방처방을 믿고 따르는 까다로운 식생활을 하지 않고, 일상의 음식은 무엇이든 고루 먹는 게 좋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만약 환자의 경우라면 어떨까? 특별한 이유 없이 병이 생기거나 고통이 계속될 때 고통을 최소화해줄 어떤 방법이 있다면 기꺼이 따를 것이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느낀 건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비 정밀성이다. 전문적인 것은 모르겠지만 식사만 해도 그렇다. "왜 병원에서 주는 모든 환자의 메뉴가 보다 세분화되지 못하고 거의 똑같은가?", "한·양방 협진이라는 개념을 잘 실천되고 있는가?", "헬스K 등으로 관광객을 모으고 수출까지 한다는 의료콘텐츠와 시스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선진국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다는 평을 듣고 있는 우리나라 의료수준이다. 그래도 환자입장에서 보면 섭섭한 곳, 허점이 있는 곳이 많다.

한때 전문화, 전문가 등이 대세였다면 요즘의 시대정신은 소통과 다양성이 중요하고, 정치에서도 협치라는 말이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다. "문재인대통령이 협치와 소통을 강조하는데 내용적으로는 본인의 어젠다를 성급하게 밀어붙이는 그런 측면이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협치(協治)의 정확한 의미는 '서로 협조 협의하여 다스린다'는 뜻으로 이는 거버넌스(governance)에서 유래한다.

이는 합종연횡과도 다르며 요즘 야당이 요구하는 '네것과 내것'을 함께 담는 것도 아니다. 내용과 형식면에서, 중앙과 지방, 좌와 우, 위와 아래 사이에서 '나'를 양보하고 '너'를 인정하는 관용과 배려의 정신이 필요하다.

협치를 강조하고 있는 문재인정부에게 기대를 한다. 관의 독주로 지방자치까지 다 감당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지방자치에서부터 철저히 협치의 정신을 발휘할 '섬세의 정치'를 보여줬으면 한다. 어머니 병 수발을 하면서 나라일까지 걱정하다니 나도 참,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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