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옥(해남공고 교사)

 
 

이번에 치러진 선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도의원 당선자의 출신 지역에서 쏟아진 몰표로 승패는 쉽게 갈렸다. '지역주의 선거문화를 타파하자!' 맞다. 타파해야 한다. 아주 깨부수어야 한다. 당연하고 올바른 주장이 수십 년째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자문해본다. 다른 문제는 없는가. 나에게는 책임이 없는가. 혹시 내가 미는 후보가 떨어지니 이건 지역주의가 원인이야 라고 불평의 화살을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선 지역민들의 입장에선 도의원 선거는 별로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군의원보다 도의원의 위상과 역할은 지역민에게 어정쩡하게 멀어 지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기도 하다.

여러 이유로 유권자에게 도의원은 나랑 별 볼일 없는 사람이다. 내 삶의 개선에 영향력이 미미하다면 지역민에게 도의원 선거는 벼슬자리 놓고 그들끼리 벌이는 한 판 놀음일 뿐이다. 이 선거가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선거라고 지역민이 느끼기 전에는 '인물보다는 지역'이란 프레임은 먹혀 들어갈 수밖에 없다.

기형적인 지방자치제의 틀과 그간 도의원들이 보인 행태가 문제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세비나 축내고, 행사에서 무게만 잡으며 재선 준비만 다지는 행태가 사람들을 더 무관심하게 만들었다. 예산과 권한이 중앙에만 몰려있어 도의회를 형식화시키는 현행의 지방자치 제도도 문제다. 지역주의 선거 양태를 바로잡으려면 현행 지방자치의 제도적 결함을 바로잡는 일, 의원들의 활동에 대한 게으름을 질타하는 것이 먼저다. 도덕적 고고함 위에 앉아서 지역주의 투표성향을 문제 삼아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지역주의를 비난하긴 쉽지만 내 안에 지역주의는 없는 지도 물어야 한다. 선거 시작 전부터 '해남출신'이 아니라고 배척하고 아예 후보의 반열에서 제외하지는 않았는가. 해남 출신의 후보가 다른 사람보다 해남을 더 잘 알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식과 경륜, 입장과 살아온 삶을 놓고 비교하면 뽑힐 만한 사람이지만 선거에선 지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밀려난다. 외지출신이 해남의 선거에 출마해서 지지를 받은 적이 얼마나 있었는가. 이건 지역주의 차별을 넘어선 배제다.

수십 년을 해남에서 살았어도 해남의 초.중.고를 다닌 사람이 아니면 붙여주지 않는 '해남사람' 이름표. 그 사람도 조금만 파고들어가 보면 어느 시점에선가 외지에서 해남으로 들어온 사람일 뿐이다.

지역출신만이 지역문제에 바르게 대처할 것 같지만 지역출신 당선자들은 선거 이전부터 형성된 인맥, 빚, 이해관계 때문에 중요한 판단 앞에서 공정하지 못한 경우를 숱하게 보아왔다. 외지에서 해남으로 들어온 이들은 해남의 인맥이나 이해관계와 직접 얽혀있지 않아서 지역출신보다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누구에게도 빚진 바가 없어서 공명정대한 판단 앞에서 더 자유롭다. 그들을 무조건 배척할 일은 아니다. 해남을 넘어선 외지인, 아니 외국인까지 밀려들어와 있는 세상이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모든 이에게 마음의 문, 기회의 문을 공평하게 열어야 한다.

내 속에 자리 잡은 뿌리 깊은 지역주의는 놔두고 표피적 지역주의만 비난하는 겉핥기식은 문제를 반복 누적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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