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아침 밥상에 구수한 쑥 된장국이 올라오고, 장에는 봄동이 지천이다.

출근길에 매실나무 아래를 스칠 때 면, 코끝에 매화향이 살포시 묻어난다. 가끔 매서운 바람이 불어대지만, 완연한 봄빛이다.

지난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의 기억이 채 아물지도 않았는데, 살갗을 간질이는 봄볕에 민낯을 내어 놓고, 마루에 앉아 감긴 눈꺼풀을 투과하는 햇빛을 음미하고 있자니 마치 계속해서 봄날이었던 것 같고, 앞으로도 계속 봄날일 것 만 같이 보인다.

지난해 겨울 초입부터 올 봄 까지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탄핵정국이 드디어 3월 10일을 기점으로 일단락 지어지는 것처럼 보이고, 3월 11일 토요일 광화문광장에서 쏘아 올려진 폭죽소리와 함께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의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일상으로의 복귀를 시작하기 전, 한 가지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고 싶다.

왜 나는 저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는가? 왜 나는 저 광장에 서지는 않았으나, 매일같이 뉴스를 흘깃거리며 분노하고 마음 졸였는가? 내 손에 들려진 촛불과 간절한 마음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희구하는 마음의 울림은 무엇 이었나?

지난한 탄핵정국을 주도했던 광장의 촛불 시민은 단지 특정 1인의 탄핵만을 주장한 것은 아니리라. 빈부의 격차가 갈수록 심화되고 고착화되며, 대다수의 청년들이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삶을 전전하게 되는 비전이 보이지 않는 사회에 대한 변화의 의지가 한 데 모아진 것이리라.

사람이 상식에 근거해 살게 되었을 때, 충분히 평화로운 일상을 보장받을 수 있는 상식의 회복. 어린아이들의 목소리로 불리워지는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가 너무도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상식의 세상. 이러한 세상을 꿈꾸었기에 지난겨울 엄동설한에도 그 수많은 사람들이 조그만 촛불을 의지하여 모이고 외치지 않았을까 싶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이 확정되고 나서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분열된 국론을 통합해야 하네, 촛불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네 등 설레발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심히 딱하다.

하지만 이미 내 힘을 자각해 버린 주권자는 내가 원하는 세상을 내가 만들어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2016~2017년 겨울을 나는 동안 고치속의 애벌레가 성장하여 이제 나비가 되어 날고 싶어 할 수 있게 되어버렸다. 그들에겐 불행이고, 우리에겐 다행이다.

끝이 아닌 시작. 그 시작을 시작하는 건, 바로 나. 비록 광화문 광장에 함께 서지는 않았으나,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부지런한 일꾼 하나로 나서고 싶다. 무수히 많은 시민들이 눈물겹게 열어놓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가능성을 마중물 삼아, 정의롭고 수고가 인정받는 상식적인 세상을 만드는 데 한 손 보태고 싶다.

앞으로의 나날들은 지금의 따사로운 봄날이 아니라, 뜨거운 여름일수도, 스산한 가을일수도, 치열한 겨울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직선으로 뻗어만 갈 것 같은 시간은 역설적이게도 다시 돌고 돈다. 다시 돌아 봄을 맞이할 테다. 그 봄은 오늘의 봄은 아니겠으나, 오늘보다 더 성숙한 봄날일 테지.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드디어 자신의 힘을 각성해 그 환희로운 느낌에만 취하지 않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내가 꿈꾸고 원하는 세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새로운 움직임을 시작하기에 좋은 봄이다.

존경하는 시인 김수영의 말처럼 촛불광장에 모인 하나하나가 스스로 도는 힘을 회복하고, 스스로가 메시아라는 강한 소명의식으로 세상을 바꾸어가는 하나의 세계들로 기능할 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돌고 돌아 또 봄이다. 참 좋은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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