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적으로… 마땅한게 없어서
유신 잔재, 시대에도 뒤떨어져

▲ 지난 1월 광천교에 새마을기 20기가 걸려있는 모습이다 찢기고 헤진 상태로 방치됐다가 최근 전면 교체됐다.
▲ 지난 1월 광천교에 새마을기 20기가 걸려있는 모습이다 찢기고 헤진 상태로 방치됐다가 최근 전면 교체됐다.
▲ 여성회관 국기게양대 제일 오른쪽에 새마을기가 걸려있다.
▲ 여성회관 국기게양대 제일 오른쪽에 새마을기가 걸려있다.
▲ 해남군청에는 새마을기 대신 전라남도기가 걸려있다.
▲ 해남군청에는 새마을기 대신 전라남도기가 걸려있다.
▲ 성남시에는 새마을기 대신 세월호기를 내걸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성남시에는 새마을기 대신 세월호기를 내걸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해남읍에 있는 해남군여성회관. 건물에 있는 국기게양대 중앙에 태극기가 걸려있고 왼쪽에는 해남군기가, 오른쪽에는 새마을기가 걸려있다. 새마을기에 대해 회관에 있는 담당 부서에 확인했더니 언제부터 걸린 것인지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냥 걸려있어서 원래부터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치고 있는 것이다.

확인 결과 이 건물에 해남군새마을회가 입주해 있어 그 곳에서 오래전부터 새마을기를 걸고 관리해 왔다고 한다. 취재가 시작되자 며칠 새마을기를 철거했다가 새마을회에서 항의 아닌 항의를 하자 최근 다시 새마을기를 내걸고 있다.

우리 주위에 새마을기가 어디어디 걸려있는지 상당수 군민들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새마을기가 있는가요",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는데요", "우리 면사무소에 있는지 없는지 한번 확인해볼게요"

해남에는 해남군여성회관외에도 14개 읍·면사무소 가운데 해남읍사무소와 삼산면사무소, 화산면사무소, 송지면사무소, 북일면사무소, 계곡면사무소, 산이면사무소 등 모두 7곳에 새마을기가 걸려있다.

이들 7곳의 국기게양대에는 태극기를 중앙에 놓고 왼쪽에 군기와 오른쪽에 새마을기가 걸려있다. 반면에 현산면사무소와 북평면사무소, 옥천면사무소, 마산면사무소, 문내면사무소, 화원면사무소에는 태극기와 군기만이 걸려있고 황산면사무소에는 태극기가 3개 걸려있다.

읍·면 사무소에서도 이처럼 제각각인 상황에서 읍·면에 있는 마을회관 대부분에도 새마을기가 걸려 있는 실정이다. 이밖에 대흥사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광천교에도 20개의 새마을기가 휘날리고 있다.

이 역시도 해남군 새마을회에서 회비를 들여 80년대 후반쯤 다리에 구멍을 뚫고 지지대를 만들어 새마을기를 걸었으며 자체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개월동안 새마을기 대부분이 바람에 찢어지고 잘려져 방치된 채로 걸려 있다가 최근에 다시 새로운 새마을기로 전면 교체된 것으로 확인됐다. 태극기처럼 관이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단체에서 관리하다 보니 한계가 있어 자칫 방치되기 쉬운 실정이다.

해남군청 건물에는 새마을기가 있는 자리에 현재 전라남도기가 걸려있다. 군 관계자들은 새마을기가 없어진 것이 10여년이 넘었다고 밝히고 있지만 확인 결과 2년전까지도 새마을회의 요청에 따라 새마을의 날(4월 22일)과 축제 기간을 전후로 1년에 4개월정도는 새마을기를 내걸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새마을회에서 제공한 전라남도새마을 정책사업 추진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6년 12월 현재 전라남도와 22개 시군가운데 새마을기를 본청 건물에 걸지 않고 있는 곳은 화순군과 진도군 2곳으로 해남군은 빠져있다.

해남군 관계자는 "상위 기관인 전라남도에서 걸지 말라는 지침도 없는데다 읍·면 사무소나 마을회관의 경우 예전부터 걸려있어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고 광천교에 있는 새마을기도 새마을회 자체적으로 걸고 관리하고 있는 것이라 군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결국 해남에 있는 새마을기는 관행인데다 마땅한 게 없어서 걸려있고 관공서나 공공시설의 한 부분이 특정 단체의 점유물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광주 관공서 철거, 성남 세월호기

광주에서는 최근 모든 관공서에서 새마을기가 철거됐다. 광주시청과 광주시의회 그리고 5개 구청과 구의회는 물론 동 주민센터 26곳에 내걸린 새마을기도 없어졌다. 광주 시내에서는 이제 더 이상 새마을기를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시민단체들이 나서 철거운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유신정권의 잔재인데다 의무적으로 걸어야 할 규정도 없고 특히 최근의 시대정신과도 맞지 않다며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철거운동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성남시는 새마을기 대신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깃발을 게양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지 보름 후인 2014년 5월 1일부터 현재까지 시청과 3개 구청, 도서관 등에 추모 깃발을 게양중이다.

성남시에 있는 여당 소속 시의원들이 시 청사에 게양된 세월호기를 내려 달라고 요청했지만 성남시는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게양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포항에서는 지난해 3억원을 들여 45m의 대형 새마을기를 설치하려 했다가 시민여론에 밀려 사업계획을 철회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포항을 방문한지 올해 45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추진했다는 것인데 박근혜 정부 아래에서 새마을운동과 박정희 우상화가 어느정도 심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새마을기는 지난 1976년부터 내무부의 강제 지시로 모든 공공기관 입구에 걸도록 의무화됐지만 김영삼 대통령 취임 이후 새마을운동에 대한 재평가 여론이 일면서 1995년부터 의무화가 폐지되고 기관 자율에 맡겨져왔는데 일선 관공서는 지금까지 40년 넘게 관행적으로 게양해 왔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제2의 새마을운동이 펼쳐졌고 언론에서는 새마을운동이 후진국에 수출하고 있다고 홍보하는 등 시대에 맞지 않는 녹색혁명운동이 계속돼 왔다.

새마을운동의 정신은 근면·자조·협동이다. 1970년대에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당시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잘사는 농촌은 물론 한국사회 전체의 근대화운동으로 확대·발전했다.

이렇게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사실상 관 주도의 운동으로 유신정권을 이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으며 전두환 정권에서는 각종 비리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서는 옛 향수를 들먹이며 박정희 우상화 사업을 통한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활용돼 왔지만 국정농단사태가 만 천하에 드러나며 21세기 첨단 시대와 지금의 시대상에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새마을기 대신 도기나 자매기를

해남군새마을회 박강하 회장은 "새마을운동이 비록 일부 문제가 있지만 좋은 점이 많고 그 정신을 계승해 발전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폐지하라는 것도 아니고 현재 자율에 맡겨져 있는 상황에서 굳이 관공서에 있는 새마을기를 내릴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고 말했다.

해남군 관계자는 "농촌에서 아직 새마을운동과 새마을회의 힘이 작용하는게 사실이다. 모든 행사나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그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면서 "상위기관에서 철거하라는 지침도 없는데 먼저 나서서 해남군이 앞장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해남군새마을회는 제2의 새마을운동을 내걸며 나눔·봉사·배려를 바탕으로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며 지역에서 환경개선 사업과 맑은물 가꾸기 사업, 그리고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과 화목한 가정만들기 운동을 펴왔다.

새마을기를 없애자는 것이 새마을운동 정신 전체를 다 없애고 새마을회 자체를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유신잔재이고 시대에도 맞지 않으니 그 상징인 기부터 없애자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정신은 그대로 살리고 새마을회도 21세기에 걸맞는 새로운 조직으로 변화해서 지금처럼 시대에 맞는 운동을 펼쳐 나가면 되는 것이다.

해남군의회의 한 의원은 "군청에는 걸려 있지 않고 여성회관에는 걸려 있고 일부 읍·면 사무소에는 걸려 있고 다른 곳에는 걸려 있지 않고 군 스스로 새마을기에 대한 통일되고 일관된 지침이 없고 관리 의지도 없는 것이 문제다"며 "관공서나 공공시설 일부를 특정 단체가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두는 것은 한심스러운 일이라며 필요하다면 군이 직접 관리하고 필요없다고 한다면 철거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해남군의 한 공무원은 "읍·면 사무소에도 새마을기 대신 전라남도기를 내걸고 대흥사 가는 쪽에도 관광지이기 때문에 새마을기 대신에 자매도시의 기나 관광지를 상징하는 다른 시설물을 설치하면 더 산뜻하고 해남의 이미지도 좋아질 것이다"고 말했다.

성하목 전 해남군농민회 회장은 "부녀회와 영농회를 구성하고 회장 등 임원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70년대 초에 만들어진 정부 지침서가 그대로 활용되고 있는 등 여전히 지역 곳곳에서 과거 잔재들이 유지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며 "새마을운동은 역사의 한 과정으로 평가될 부분은 평가돼야 하지만 수십년동안 걸려 있어서 마치 당연한 것처럼, 관행인 것처럼 태극기 옆에 지금도 걸려 있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어서 당장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게양할 근거도 없고 시대정신에도 맞지 않는 새마을기. 단지 관행이어서 상위기관의 지침이 없어서 계속 내걸고 있는 새마을기. 특정 단체가 자체 예산을 들여 관공서나 공공시설에 설치하고 관리하고 있는 새마을기. 이제는 변화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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