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자들 동의·협의없이 진행
피해자 6명 9기 더 늘어날 듯

▲ 정 모 씨의 가족묘 4기가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채 제단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돌판 일부만 남아있다.
▲ 정 모 씨의 가족묘 4기가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채 제단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돌판 일부만 남아있다.

아파트 사업자 측이 A 아파트 사업부지 안에 있는 분묘 10여기를 최근 연고자들의 동의나 협의없이 무단으로 파헤쳐 이장한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커지고 있다.

정 모(49) 씨는 지난 10일 승용차를 타고 해남에서 광주로 가던 길에 도로에서 보이던 가족묘 4기(조부모·부·숙부)가 보이지 않아 잘못 본 것이라 생각하고 광주에서 일을 본 다음 저녁에 산소에 가봤다가 깜짝 놀랐다.

있어야 할 가족묘가 형체도 없이 사라졌고 제단으로 쓰이던 돌판 일부만 남아있을 뿐 황토색 흙으로 덮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정 씨는 "가족들이 자발적으로 이장하기 전까지는 임의로 훼손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교환하고 공증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떠한 동의나 협의도 구하지 않은채 일방적으로 묘지를 파헤쳤다"며 "이후 사업자측에 항의했더니 실수였다고만 해명하고 있어 분노가 치밀고 조상들 뵐 낯이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 씨 가족처럼 연고자들의 동의나 협의를 거치지 않고 묘지가 훼손되고 불법 이장된 사례는 지금까지 파악된 것만 6명에 9기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소식을 접하고 뒤늦게 사실을 확인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 피해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렇게 불법 이장된 유골 등은 읍교회 부활동산 아래쪽에 임시로 만들어놓은 가묘로 옮겨진데다 연고자가 누구인지, 누구의 가묘인지 표시돼 있지 않고 그냥 번호판만 꽂아져 있어 가족들의 더 큰 분노를 사고 있다.

사업자 측은 "이장 대행업체에 맡겨 협의가 된 분묘만 옮길 것을 지시했는데 그 쪽 실수로 이같은 일이 빚어진 것 같다"며 "그렇지만 모든 책임은 사업자측에 있는 만큼 잘못을 인정한다며 책임지고 보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행업체 사장은 "지난 10일 이장 작업을 하면서 인부들에게 제대로 작업 지시를 내렸는데 눈이 많이 오는 등 날씨가 좋지 않고 일부 유가족들이 직접 장비를 가져와 이장작업을 하는 등 복잡하고 경황이 없어 실수가 발생한 것 같다"며 "현재 인부들을 상대로 누구 지시로 누가 그런 일을 했는지 알아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당시 이장작업을 하는 동안 사업자측은 물론 대행업체에서도 잠시 현장을 다녀갔을 뿐 작업 내내 관리 감독하는 사람이 1명도 없었고 사전에 개장 신고나 개장허가를 받는 등 절차도 무시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A아파트 사업부지에 속한 39기의 분묘 가운데 지난 10일 훼손된 것으로 확인된 9기는 공교롭게도 그동안 연고자들과 협의가 안 돼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던 것으로 사업자측이 협의된 분묘에 대해 당일 이장작업을 한다면서 고의로 이들 분묘를 훼손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사업자 측은 행정기관에 신고하지 않고 설치된 묘는 모두 불법 시설이며 장사법 개정으로 2001년 이후 설치된 분묘의 연고자는 토지 사용권이나 그 밖에 분묘의 보존을 위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분묘 연고자들은 이전에 설치된 분묘의 권리 등에 대해서는 이해당사자간 다툼이 있을 경우 소송을 제기해 판결에 따르도록 돼 있고 판례에 따라 분묘기지권이 인정되는 사례도 있다고 맞서왔다.

또 사업자 측은 이 과정에서 경쟁아파트 측이 분묘 연고자들에게 일정 금액을 주고 이장을 지연시켰다며 관계자를 경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적인 문제를 떠나 이번 사태는 도의적으로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로 사업자측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편 피해자 가족들은 지난 14일 'A 아파트 부지 분묘 불법이장 피해자 대책위원회'를 구성한 데 이어 15일부터 개별적으로 해남경찰서에 사업자측을 고소해 경찰도 수사에 들어갔다.

피해자들은 앞으로 어떠한 합의에도 응하지 않고 불법 이장된 가족묘가 원상복구 될 때까지 싸우겠다고 밝혀 앞으로 수사와 별개로 민사소송도 진행될 것으로 보여 파장이 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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