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웅(해남군장애인종합복지관장)

 
 

북평면 남창에 살고 있는 내가 퇴근길에 읍내에 들어서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마침 편지지가 떨어져서 읍내 문구점에 들렀더니 매장 안이 온통 초콜릿 천지다. 가만히 날을 헤아려보니 '발렌타인데이'다.

발렌타인데이의 유래는 3세기 경 로마황제가 전쟁 중에 결혼을 금지시켰음에도 규율을 깨고 몰래 사랑하는 연인들의 결혼을 성사시키다 처형 당한 사제 성 발렌타인의 기일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라고 알려져있다. 서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 날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는 풍습이 있었다.

예쁘고 귀여운 여자아이들이 자기들만큼이나 예쁘게 포장된 초콜릿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세심하게 골라 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 초콜릿을 받는 사람은 누군지 몰라도 참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예쁜 여자아이들의 손에 들려 있던 달콤해 보이는 초콜릿을 떠올리다가 동시에 떠오르는 건 몇 년 전 어떤 잡지에서 본 까만 얼굴에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던 아프리카 소년의 얼굴이다. 열 두어살 쯤 되어 보이는 그 소년의 작은 손은 어린 미소와 어울리지 않게 거칠었다.

그 소년은 초콜릿의 주된 원료인 카카오를 재배하는 아프리카 어느 깊은 산 속에 위치한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온 가족이 카카오 농사에만 매달려도 하루 벌어 하루 먹기가 힘든 상황이라 학교에는 다닐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했다. 6살 이후로 날마다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며 전문 카카오 농사꾼이 되어버린 아이는 정작 카카오로 만들어 낸 "초콜릿은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며 "어떤 맛인지 궁금하다"고 수줍게 웃었다고 했다.

큰 낫으로 카카오 열매를 다루느라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린 그 아이의 고단한 손은 아직도 초콜릿을 사려는 내 손을 머뭇거리게 만든다. 달콤한 초콜릿에 배어 있을 어린 소년의 고된 노동이 쌉싸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이름 모를 소년의 어린 노동은 내가 살아왔던 60~70년대 흔한 풍경이었던 시골에서 갓 상경한 어린 여공들의 고된 공장살이와 겹쳐졌고, 그들의 고된 노동이 말도 안되는 수준의 헐값에 소모되는 것이 미덕인 거대자본의 착취 구조와 다르지 않기에 달콤한 초콜릿은 쓰기만 했다.

싼 값과 좋은 품질 속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아프리카 농민들에게 낮은 가격으로 사들인 카카오 콩, 임금이 싼 나라에서 싼 값에 생산된 초콜릿, 식품다국적기업의 충분한 수익을 보장하면서도 대량 판매를 가능하게 하는 가격의 결정, 이 지속 가능한 생산자 착취 구조가 그 진실임을 알기에 달콤하기만 한 초콜릿이 씁쓸해진다.

다행히 요즘은 비중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 공정무역이라는 방식으로 저개발국 생산자에게 적정한 대가를 지불하여 안정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소비자에게는 윤리적 소비의 기회를 제공하는 무역의 형태가 확장되어 가는 모양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특히 공정무역은 카카오 생산과정에서 아동노동이나 강제노동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니,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죄 의식 없이 초콜릿의 달콤함을 음미할 수 있을 것 같다.

'신의 선물'이라는 카카오가 카카오 생산자들에게도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 신의 선물이 되었을 때, 최종 소비자인 우리도 즐거운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

정직한 노동으로 생산되는 카카오, 정당한 노동의 가치에 대한 보상으로 얻는 생산수입, 아이들이 농장이 아닌 학교로 갈 수 있도록 만드는 진정한 신의 선물이 되는 카카오, 생산자의 평범한 일상을 보장해주는 윤리적 소비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초콜릿.

발렌타인데이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초콜릿을 마음껏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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