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인기(해남지역자활센터 관장)

 
 

숨 가쁘게 빨리 빨리 달려왔던 올 한해도 저물어 간다. 아웅다웅 어지러히 뒤엉켜 살면서 한번 잘못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지내왔다. 하지만 돌아보니 '백년도 못 살면서 늘 천년 살듯 근심하면서 산다(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는 글귀가 새삼 떠오른다.

매년 이맘때면 가는 해를 돌아보고 다가오는 한해를 맞이하는 희망에 부풀기도 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물질적으로는 예전보다 살기 편해졌지만 어딘가 마음속에는 허전함과 불안감이 넘친다. 요즈음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더욱 좌절감에 빠진다.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살피면서 협력과 상생을 도모하는 연대보다 돈과 편리함을 삶의 중심에 두고 자기 자신과 가족의 이익만을 지키는데 급급한 인정이 메마른 사회에서 오는 현상이다. 자기 자신 외에 아무도 믿지 못하는 사회에서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은 밑바닥 수준이다.

세상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함께 만드는 행복한 일터'를 목표로 하는 해남지역자활센터도 지난 주말 올 한해를 뒤돌아보고 내년 계획을 세우는 하룻밤의 모임을 가졌다. 자활센터에 다니는 참여자는 비록 가난하지만 열심히 일하며 앞으로의 희망을 만들어 간다, 하루 받는 일당은 4만원도 안된다. 한 참여자 대표가 그 달 공과금을 말일에 내야하기 때문에 한 달 일한 인건비를 다음달 1일이 아닌 말일에 주면 안되냐고 물어온다. 얼마나 경제적으로 어려운지를 그동안 헤아리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다.

자활센터에서는 혼자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들과 건강이 좋지 않은 분들을 위한 바우처 사업인 돌봄서비스사업을 하고 있다. 이 사업은 국가지원사업임에도 정부의 지원금으로는 이 사업을 수행하는 요양보호사들에게 정부가 정한 최저인건비를 지급하기에도 부족하다. 매년 지급했던 명절 휴가비도 내년에는 줄 수 없다는 현실에 엊그제 월례모임에 참석했던 요양보호사들은 안타까워한다. 이렇듯 국가가 시행하는 사회보장사업도 어려운 사람들의 최소한의 삶을 누릴 기본적 권리를 무시하고 있다.

최근 8주째 계속되는 촛불 시민 혁명은 단순히 박근혜와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우리사회와 국가에 쌓여왔던 주권자인 국민을 무시하고 상식을 뛰어넘는 '비정상의 정상화' 사회에 대한 위대한 저항이자 주권자로서의 국민의 정체성을 찾는 혁명이다.

인류의 역사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필수적인 재화를 획득하며 동시에 그 사회에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상대적 빈곤과 소외가 증대되는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가 되었다. 이제 국회에서의 탄핵안 통과와 헌재의 탄핵 심리에 따른 촛불혁명의 방향과 내용이 어떨지가 중요하다. 조선일보가 국회에서 탄핵이 의결되자 더 이상 촛불은 들지 말아야 한다고 한데서 보듯 기득권세력의 매서운 반격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탄핵 자체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 개혁에 대하여 생각해야 한다.

정치와 경제를 주권자인 국민이 통제하는 국가개혁을 실현해야 자활센터에 다니는 참여자들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누리는 사회보장도 성취될 수 있다.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나라가 산다'고 하였다. 살기 좋아지고 마음의 편안함을 가져오는 진정한 시민혁명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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