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영암호엔 삼십만 마리 넘게 가창오리들이 자리를 잡았다. 러시아 북동부 바이칼호수, 레나강, 아무르와 오호츠크 해안에서 여름을 나고 무려 4000km를 쉬지 않고 꼬박 일주일 걸려 날아왔다. 그런데도 노을 진 호수위로 하늘을 뒤덮은 가창오리들이 너무나 많아 그렇게 먼 길을 돌아온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또 어느 지방에서나 문만 나서면 보이는 그렇고 그런 흔한 새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오리에선 가창오리를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나라 동부와 동북부에선 찾아보기 힘든 새이다. 그러니 가창오리란 이름도 지역 이름에서 따온 것은 아니다. 저명한 조류학자가 일제강점기 때 유리처럼 예쁘다고 해서 가창오리로 불렀다고 전하기는 하지만 문헌으로 나온 것은 없어서 한자로 어찌 적는지는 알 수 없다. 오리들 속에 무중이다. 다만 길거리를 떠도는 나그네 신세의 아름다운 창기가 연상되기는 한다.

머리 부위 뺨에 도드라진 태극무늬가 가창오리의 아름다움을 대표한다. 북한에서는 태극오리 또는 반달오리라 부른다. 동북아 다른 나라들 중국과 일본도 그 이름에 태극문양을 담고 있다. '꽃뺨'이나 '소용돌이친다'는 단어를 사용한다. 라틴어로 쓰인 학명도 아름다운 오리라는 뜻이다.

이리 아름다우면서도 흔한 가창오리가 국제적으로는 보호종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의 적색자료집에는 취약종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에 수록되어 보호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지정하였다. 전 지구 가창오리의 95%가 우리나라를 찾아 겨울을 나기 때문에 서해안을 중심으로 많아 보일 뿐 세계적으로는 보기 드문 새들이다.

우리나라에도 처음부터 보였던 것은 아니다. 가창오리들이 겨울을 났던 기록 중 일제강점기엔 오히려 일본 서남부가 주요 월동지였다. 한해 5만 마리를 잡았다는 기록도 나온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에는 1000여 마리만 보이더니 지금은 아예 보고가 없다. 말 그대로 한반도는 잠깐 통과하는 지역으로, 우리도 가창오리를 나그네새로 보았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1984년 주남저수지에서 5000여 마리가 겨울 나는 것을 보았고 이후 천수만과 금강하구가 최대 월동지로 되었다.

이 지역도 매해 항상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어느 해는 거르기도 하고 어느 해는 다시 수가 늘어나기도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가까운 고천암호를 보면 분명해진다. 지난 2009년을 마지막으로 볼 수 없었던 가창오리가 작년 겨울 십여만 마리 찾아왔다. 그동안 생태공원 조성사업으로 내수면 어업이 금지되고 먹이가 많아지면서 찾아왔으리라. 그러나 규모는 작다. 아무래도 사람 손길이 닿지 않고 차가 들어오지 않으면서 먹이가 풍성한 영암호나 금호호엔 미치지 못한다.

결국은 사람들 간섭이 문제다. 그 수가 늘어나는 것도 아예 한반도를 벗어나 다른 나라로 떠나가는 것도 우리가 할 탓이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먹이 문제. 가을걷이 끝난 들판에 널려있어야 할 낟알들이 볏짚말이 되면서 사라져 간다. 소먹이용 곤포사일로로 만들어지면서 먹을거리가 없어진다. 거기다 차량으로 배로 잠을 방해하고 심지어는 좋은 사진 욕심내며 일부러 쫓아 날리기까지 한다. 여기에 개발바람까지 불라치면 가창오리들의 안식처는 쉽게 부서진다.

이 모두가 가창오리의 영양부족과 면역결핍을 불러오고 결과적으로 AI와 관련될 수 밖에 없다. 방역에 있어서도 먹이가 충분할수록 이익이다. 여기저기 분산해 질병을 옮길 가능성을 미리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미리 철새용 알곡을 마련하고, 논엔 볏짚을 걷지 않게 하며, 밀이나 보리를 기르도록 하는 생물다양성 관리 계약을 성실히 이행하는 행정에 박수를 보낸다. 매년 가창오리의 멋진 군무를 볼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겨울이 벌써부터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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