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우(대흥사 주지)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두둥실 떠가는 가을날에 소곤소곤 이야기 소리가 들려온다. 가을바람에 신이 난 코스모스들은 무리지어 바람 따라 몸을 맡긴 채 덩실덩실 춤을 춘다. 잠자리, 여치는 힘차게 창공을 날다 날개를 접고 앉아 휴식을 취하며 노래도 부르고 어디로 여행을 갈지 궁리도 하는 모양이다. 들녘에는 곡식들이 앞 다투어 알알이 익어가느라 아우성이다.

어디 그뿐인가? 새벽에 화단에서 만나는 거미는 작은 우주를 만들어 놓고 손님들을 초대하느라 분주하다. 손님들이 찾아오는 곳엔 거미가 집을 지어놓고 살기위한 방편으로 그렇게 하지만 아무런 대책 없이 거미줄에 걸려 집으로 초대된 손님들은 속절없이 잡아먹히고 만다. 그 뿐인가 포식자 사마귀는 거미줄을 피해 정원나무가지나 아파트 벽 그리고 방충망에 날아와 붙어있는 것도 볼 수 있다.

초가을 매미 우는 소리가 좀 이상하면 주변 나무를 둘러보자. 십중팔구 매미가 사마귀에게 잡혀 먹히고 있는 리얼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다. 풀밭 곤충 중에서는 가장 강한 포식자이기 때문에 풀밭을 아프리카사바나로 비교하면 사자 같은 존재이다.

올해 기록적인 더위는 1994년 이후 제일 더운 여름이다. 하지만 처서를 기점으로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나면 여름철의 끝자락과 시원한 가을을 알리는 전령사로 8월에서 10월 두 달 남짓 동안 활동하고 사라지는 사람에게 퍽이나 이로운 곤충이다.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곤충의 울음소리로 봄은 개구리, 여름은 매미, 가을은 귀뚜라미 그리고 메마른 겨울에는 동면에 들어간다.

고대 중국인들은 귀뚜라미를 날이 추워지니 빨리 베를 짜라고 재촉하듯 우는 벌레란 뜻으로 '촉직(促織)'이라고 불렀다. 귀뚜라미 울면 게으른 아낙이 놀란다는 말이 있다. 겨우살이를 위해 여름에 부지런히 길삼을 해야 할 아낙네가 실컷 게으름을 피우다 가을을 알리는 귀뚜라미 소리에 아차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귀뚜라미는 차세대 인류식량으로 가까운 미래에는 동네에 위치한 고급식품매장에 가면 귀뚜라미바가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전 세계 인구 중 3분의 1은 곤충을 먹고 있다. 곤충은 영양분이 풍부하고 소보다 훨씬 자원 절약 적이다. 그 뿐 아니라 무척 맛있기까지 하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곤충으로 만든 음식이 일반화된 건 아니다. 벌레를 먹고 싶었더라도 동네 슈퍼마켓에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곤충 요리를 파는 음식점에 가거나 아니면 직접 키워야했다.

그런데 아이슬란드는 이런 곤충요리를 대중화하려는 목표를 갖고 귀뚜라미 가루를 이용한 단백질 바를 곧 출시할 예정이란다. 정글바(Jungle Bar)라고 명명한 이제품은 바 1개에 200칼로리, 단백질 8g을 포함하고 있다. 식재료 중 20%는 귀뚜라미 가루이며 나머지는 대추와 참깨, 호박, 해바라기씨 등이다. 콩이나 글루텐, 유제품이나 땅콩 같은 견과류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현재 농업이 대부분 지속 불가능하다고 한다. 세계자원연구소가 지난 2013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식량생산을 앞으로 60% 늘려야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한 가지 방법은 고기와 유제품 의존도에서 벗어나 축산 사료 생산에 쓰이는 농지에서 물, 단백질이 풍부한 콩이나 마 같은 작물을 생산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곤충이 뛰어난 단백질 보충원이 될 수 있다. 곤충을 사육해 지속 가능한 식량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이로 삼고 이를 통해 곤충을 키워 유충을 식용으로 쓰는 과정을 거치는 등 폐기물 제로인 친환경 식생 생산 시스템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곤충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식용이 쉬운 일은 아니다. 정글바 같은 제품이 탄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상대적으로 다른 곤충보다는 귀뚜라미는 거부감이 덜한 곤충이라는 점도 한 몫 한다. 귀뚜라미 자체가 가장 자원 효율적인 단백질 공급원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곤충 음식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과연 고기에서 곤충으로 인류의 식습관과 식량문제 해결이라는 숙제가 동시에 풀리게 될까. 우주의 섭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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