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순(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고대하던 가을이 돌아왔지만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견디기 힘들었던 지난여름 폭염의 잔해가 아직 몸 속 어딘가에 남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맑고 쾌적한 가을 날씨를 즐길 여유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드문 탓이기도 하다. 뉴스를 통해 접하는 세상은 청명한 가을날씨와는 거리가 멀다. 정치인들은 여전히 편을 갈라 네 탓하기 바쁘고 북핵문제로 인한 한반도 정세 불안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청년실업과 노인빈곤으로 나타나는 국가경제 위기 역시 뾰족한 대안이 보이질 않는다. 여기에 예전에 없던 강한 지진이 한반도 남동부를 뒤흔들면서 마음 편히 가을을 만끽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다.

북핵 위기나 경기 침체, 자연재해 등은 지난 여름 찜통더위처럼 지역을 가리지 않고 모든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국가적 현안이라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체감하는 온도가 다르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지역사회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만한 지역별 대응체제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했다. 우선 지역주민들에게 신속하고 소상하게 지역사회에서 발생한 자연재해나 흉악범죄를 알려주는 경보체제나 언론체제가 없다. 그러다보니 위기가 닥치면 근거 없는 소문과 유언비어가 지역사회에 난무해 주민불안을 가중시키고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응을 어렵게 만든다. 공동체의 위기 극복에 필수적인 소통과 여론수렴 과정도 부재하여 위기가 발생하면 문제해결 방식을 두고 지역주민들 간의 오해와 갈등이 증폭된다. 대부분의 지역위기 상황들은 해결되기 보다는 미봉된 채 넘어가고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지역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그 기반이 더 취약해진다.

지역의 위기를 지역 스스로 해결할 역량이나 경험이 없다보니, 지역사람들은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지역문제를 해결하려하기 보다는 타 지역 즉, 중앙을 바라보고 중앙에서 해결해주길 기대한다. 이런 지역민심을 정치인들은 이용한다. 자기 지역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지만, 중앙정치 무대에 나가서 지역의 문제는 물론이고 국가적 문제도 해결하겠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러나 그들의 약속과 반대로 지역사회는 더욱 부실해지고, 지역 간의 갈등을 더욱 증폭되고, 국가적 위기 대처 능력은 더욱 약화된다.

지역사회에 다가오는 위기는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는다. 다른 지역사회가 대신 해결해주지도 않는다. 보다 평화롭고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려면 위기극복 역량을 갖춘 지역사회로 튼튼하게 짜여진 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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