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우(대흥사 주지)

 
 

한 해 가운데서 어떤 일을 하기에 좋은 시기나 때를 절기라한다. 여름철새 백로가 9월에 뜻한 곳을 찾아 필리핀으로 떠나면 9월 절기 백로가 처서와 추분 사이에 온다. 이 때가 되면 밤에 기온이 내려가 대기 중의 수증기가 엉켜 이슬이 되어 풀잎에 맺힌다. 백로 기간에는 겨울 철새 기러기가 시베리아, 사할린, 알래스카에서 우리나라로 날아오고, 제비는 중국양쯔강 남쪽지방인 강남으로 날아간다.

이 뿐만 아니다. 추분은 밤낮의 길이가 같아지고 가을 추수가 시작되고 백곡이 풍성하고 동면할 벌레가 구멍을 막는 계절이다.

전래동화 '흥부놀부'에서 자신의 다리를 고쳐준 흥부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금은보화가 나오는 박씨를 선물한 제비는 많은 사람들에게 행운의 새로 기억되고 있다.

"달 밝은 가을밤에 기러기들이 찬서리 맞으면서 어디로들 가나요…. 기러기들이 날아가는 곳, 달아달아 밝은 달아 너는 알고 있겠지"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이 '기러기'노래를 자주 불렀다. 가을에 흔히 보던 기러기는 왜 알파벳 V자 대형을 지어 일제히 날아가는지 궁금했었다.

그리고 기러기는 한국의 전통 결혼식이나 폐백시 항상 등장했다. 전통혼례 첫 의식으로 신랑이 신부집에 도착하여 시간이 되면 혼례복으로 갈아입고 전안례를 올린다. 신랑은 신부와 백년해로를 하겠다는 의미로 목기러기를 몸 아래위로 세 번 옮긴 후 전안상에 올려놓고 절을 한다. 재배를 하면서 "기러기 받아가시오"라고 하면 신부의 어머니가 목기러기르 처마폭에 감추어 신부가 대기하는 방에 던진다. 기러기가 누우면 딸이고 똑바로 서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이 기러기는 신랑집으로 가지고 간다. 기러기는 음양의 이치를 알고, 지혜가 있으며, 질서를 안다고 하기 때문에 혼례에 사용한다고 한다. 또한 한 번 짝을 맺으면 어느 한 쪽이 죽어도 절대로 다른 짝을 구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속성에 따라 사람도 혼인하여 서로 백년해로를 하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익히 듣는 '기러기 엄마'와 '기러기 아빠'란 단어가 있다. 조기유학을 위해 떨어져 사는 가족 중 자녀의 뒷바라지를 위해 따라온 기러기 엄마. 자식과 아내의 생활비를 벌기위해 한국에서 혼자 살면서 돈을 버는 기러기 아빠, 마치 기러기가 1년에 한 두 번씩 이동하는 것처럼 가족에게 간다하여 붙여진 신조어다.

톰 위삼의 '기러기 이야기'에 의하면 가장 앞에 날아가는 리더의 날개 짓은 기류에 양력을 만들어 주어 뒤에 따라오는 기러기가 혼자 날 때보다 71%정도 쉽게 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들은 날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울음소리를 내는데 그 울음소리는 앞에서 거센 바람을 가르며 힘들게 날아가는 리더에게 보내는 응원의 소리라고 한다.

기러기는 4만km의 머나먼 길을 옆에서 함께 날개 짓을 하는 동료를 의지하며 날아간다. 만약 어느 기러기가 총에 맞았거나 아프거나 지쳐서 대열에서 이탈하게 되면 다른 동료 기러기 두 마리도 함께 대열에서 이탈해 지친 동료가 원기를 회복해 다시 날 때까지, 아니면 죽음을 맞을 때까지 옆에서 지켜준다. 이렇게 의리를 지킨 다음 다른 기러기 떼와 함께 날아서 자기 떼를 찾아간다.

그런데 이 기러기란 새는 다른 짐승들처럼 한 마리의 대장이 지비해고 그것에 의존하는 사회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 보자. 만약 제일 앞에서 나는 기러기가 지치고 힘들어지면 그 뒤의 기러기가 제일 앞으로 나와 리더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렇게 기러기 무리는 서로 순서를 바꾸어 리더의 역할을 하며 길을 찾아 날아간다. 선두의 자리를 계속 교체하며 날아가고 약자는 편대의 중간에 위치하며 묻혀가고 다들 울음소리로 용기를 주고받는다. 조류학자들은 이렇게 서로 돕는 지혜와 독특한 비행기술이 없었다면 매일 수백 킬로를 날면서 해마다 수천 킬로를 이동하는 그 비행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기러기 덕목 중 첫째, 기러기 리더십이다. 둘째, 기러기는 사랑의 약속을 영원히 지키고 짝을 잃으면 결코 다른 짝을 찾지 않고 홀로 지낸다고 한다. 셋째, 상하의 질서를 지키고 날아갈 때도 행렬을 맞추며 앞서가는 놈이 울면 뒤따라가는 놈도 '화답'을 하여 예를 지킨다고 한다. 넷째, 기러기는 왔다는 흔적을 분명히 남기는 속성이 있다. 이러한 기러기를 본받아 훌륭한 삶의 업적을 날길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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