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아(해남성폭력상담소장)

 
 

입추와 처서가 지나 가을을 기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덥다.

조금씩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진 기운이 느껴진다. 어제는 대흥사길을 창문을 열고 달리니 벼 익는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그 속에 가을내음이 난다. 역시 구름도 좀 높아졌다. 그러다 문득 아! 추석이 얼마 안 남았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머리에 걱정이 스며들어온다. 자주 볼 수 없었던 가족·친지들을 만날 수 있는 반가운 명절…. 어렸을 때는 정말 기대되고 좋았다. 하지만 지금도 그럴까?

한 여름 햇볕에서 고생으로 일궈 낸 땀의 결실을 가을에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통해 누리는 추석은 온 가족이 오랜만에 모두 모여 송편과 음식을 나누어 먹고, 차례를 지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날이다. 오랜만에 고향에 온 남자들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술과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현재 우리나라 명절문화는 제사음식 준비와 설거지 등 명절노동 대부분이 엄마들에게 집중되어 추석만 되면 우울증, 두통, 소화불량 등으로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를 호소하여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있다.

명절증후군은 명절만 되면 여성들이 이유 없이 몸이 아프거나 기분이 우울해 지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명절 이후 과도한 가사노동으로 시달리고 친척들과 어르신들의 눈치를 보느라 숨죽여야 했던 일들로 부부 상담과 이혼문제가 급증하는 사례들도 주변에서나 신문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나의 시댁은 아들만 사형제에 딸이 귀한 집이다. 그 중에 딸을 낳은 며느리는 나하나이다. 평소 우리 딸들은 작은 아빠와 할머니에게 공주님. 공주님 하며 귀한 대접을 받는다. 할머니는 옷을 사거나 선물을 사도 손녀들것만 준비할 정도로 예뻐하신다.

그러나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데에는 남·녀의 역할이 확연하게 구분되어 진다. 딸들은 음식 준비를 도와 함께 일을 하지만 집안의 대장손인 우리 아들은 혹여 부엌에만 들어와도 할머니인 우리 시어머니 "무슨 일이냐"며 놀라 아들에게 묻는다. 평소 집에서 함께 식사를 준비하는 아들 "수저 가지러 왔어요" "여자가 몇인데 니가 나오냐"며 방으로 들여보내시는 풍경이 우리 집 명절의 모습이다. 성별의 역할이 분명하게 나뉘어 학습되어지는 현장이다. 이 모습은 어느 가정이나 비슷할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맞벌이로 함께 살림을 하며 함께 육아를 하는 '여성과 남성이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으로 라는 말처럼 법과 제도를 통해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명절을 통한 여성의 역할은 함께 명절을 즐기지 못하고 힘든 명절을 보내고 있는 현실이다.

가부장적인 세대와 현세대와의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가족문화가 변화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 가족부터 시작하는 추석명절에 명절준비를 여자, 며느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아이들에게 부모의 모습은 장차 자녀가 어른이 되었을 때 명절의 문화를 답습을 하게 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가족이 함께 명절을 준비하고 부모가 서로 아껴주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다음 세대를 살아가게 하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아들, 딸이 생물학적으로 다르다는 이유로 가정에서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 지금은 나의 시댁도 변해가고 있다. 아들이 행주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 마음에는 드시지 않겠지만 말리지는 않으시는 우리 시어머니를 보면 어른 세대도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다. 행복한 명절을 꿈꾸는 마음은 다르지 않은데 여성들은 가질 수 없다면 우리 가족의 명절문화를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 추석명절은 모두가 함께 즐겁고 행복한 명절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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