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현산면 만안리)

광복절 아침 대통령의 경축사를 보며 민주주의를 돌아본다. 대통령의 불통 가득한 경축사는 '어쩌면 민주주의는 말 많은 서양 사람들에게나 적합한 사회적 도구이지 눈빛으로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던 한민족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씁쓸한 생각을 들게 한다. 하지만 1919년 4월 13일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세계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민족의 자존과 존립의 근거를 갖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으리라.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지만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들은 여전히 말보다 정으로 소통하던 사람들이 많아서 말을 말처럼 하지 않아도 정만으로 살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시절 하던 민주주의는 말이 민주주의지 그 껍질은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이고 그 속에서 '우리가 남이가'같은 쑥덕공론으로 유지되어 왔다.

87년 6월의 민주항쟁은 문민정부를 탄생 시켰다. 하지만 강산이 세 번은 바뀔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저성장 중이다. 말(공약)보다 정으로 표를 구걸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그렇게 정으로 뽑은 대통령은 소통은 하지 않고 왕권을 휘두르듯 독선적 결단들을 남발하고 있다. 비단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지역만 해도 군수가 부패와 비리로 얼룩져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중이다. 군수 한사람의 도덕적 헤이가 문제라면 벌써 세 번이나 문제 있는 군수를 뽑은 군민들은 무엇이 되는가?

나는 더 이상 대통령 누구, 군수 누구를 탓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지금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우리 지역의 민주주의가 어디에 있는지 면밀히 살펴볼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완성이란 내게 주어진 한 표를 행사하기 이전에 서로의 다른 입장, 다른 말들을 주고받는 과정 그 자체에 있다. 과정을 생략한 민주주의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민주주의 꽃은 투표가 아닌 주고받는 '말'이다. 그동안 우리는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말들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말 꽃을 피워내지 못한 말들은 권력이 되고 폭력이 되어 부패와 비리를 낳는다. 그 결과는 투표로 선출된 대표자 한사람의 책임으로 끝나겠지만 반복되는 민주주의 후퇴는 우리 모두의 책임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말꽃을 피우는 과정을 잘 일구어 왔는지 끊임없이 물어봐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의 초석인 가족안의 민주주의는 어떤가. 가부장적 권위에 의해 여전히 남성 일방의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가족이 모여 사는 마을의 민주주의는 어떤가. 이장을 중심으로한 임원들이 마을 모두의 민의를 잘 듣고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있는가?

지난 백년간 우리는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를 공부해 왔다. 이제 그 꽃을 피울 때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영민한 지도자 한명을 투표로 뽑아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 내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끊임없이 민주주의 말 꽃을 피워낼 때 지역의 미래도 밝아진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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