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길록(해남항일운동 순국열사·애국지사 추모사업회장)

 
 

애국충절의 고장 땅끝 해남에서는 424년 전인 1592년 임진왜란 당시 68분이 전사하셨고, 7년 후인 1597년 정유재란에서는 33분이 전사하셨다. 이순신 장군과 해남, 진도의 의병들은 13척의 군함으로 133척의 왜선을 썰물과 밀물을 이용하여 격침시키는 세계해전사상 최대의 전과를 올렸다. 1636년 병자호란으로 14분이, 1890년~1894년 왜놈들은 동학농민혁명군 67분을 참살하였으며 1909년 대흥사 심적암에서 항일의병 60분과 스님 6분이 참살 되었다. 또한 1919년 기미 3·1만세운동에서는 해남장날과 우수영 장날에 1000여명씩 4~5차례의 궐기가 있었으며 이때 75분이 투옥되었다.

1929년 광주학생 독립만세운동에서도 14분이, 1934년 호남최대의 전남운동협의회 독립운동 사건에서는 21분이 투옥되시는 등 342년 동안 358분이 전사, 참살, 옥사, 투옥되시는 등 전국적으로 최대의 희생자가 발생하였으나 1945년 조국 광복 이후 해남군의 무관심과 정부당국의 직무유기로 인하여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천안 아우네 장터의 유관순 열사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에서 제일 규모가 큰 항일운동으로 오도되어 독립기념관이 천안에 건립되는 등 역사의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본회는 지난 2007년 동아대 홍순권 교수, 성공회대 손혁재 교수, 나라기록원 김경희 교수 등 근대학자 3분을 초청하여 해남의 항일운동사에 관한 학술세미나를 대흥사의 후원으로 개최하였고 제1회 추모제를 개최한 이후 오늘까지 10여 년 동안 전국의 모든 기관과 보훈단체, 언론사, 독립기념관, 박물관 등을 방문하여 각종 자료를 발굴하게 되었다.

10년 전부터 합동 추모제를 자체적으로 봉행하다가 수년 전부터 국가보훈처, 전라남도청, 해남군청과 대흥사의 지원으로 확대되기에 이르렀고 이제는 매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연례행사로 자리매김 되고 있으며 많은 군민들이 자진하여 참여하고 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10월 1일 전국의 독립운동가들과 농민들이 소작농해제, 공출반대, 친일경찰척결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자 미군정은 주동자를 학살하고 시위자들을 폭동으로 몰아 투옥시키고 보도연맹법을 만들어 강제 가입시킨 보도연맹원을 갈매기섬으로 끌고가서 무참히 학살시킨 후 빨갱이로 몰아 후손에게는 연좌제를 적용하여 제2, 제3의 인권침해를 행하였다.

이와 같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살신성인하고, 청춘을 불사른 애국선열이 없었다면 발전된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애국선열들의 이런 희생정신을 본받아 나라사랑과 후세 교육에 많은 관심과 계몽을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