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현산면 만안리)

알파고의 승리 이후 농업 관련 매체들에선 너도나도 인공지능과 농업이 결합된 미래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었다. 대다수의 기사들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의 활용으로 농업 생산성이 혁신적으로 향상될 것이라는 밝은 미래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나에게는 농업과 기술의 만남이 왠지 모르게 새삼스럽고 밝아야만 하는 농업의 미래가 불길하게만 생각된다. 왜일까?

농경시대의 시작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를 통제할 수 있다는 깨달음에서 시작 되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기술이 되었고 기원전부터 근대까지의 거의 모든 기술은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해 발전하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세시대 수도사들에 의해 발전한 농지개량법은 곡물 생산량을 증대시켜 유럽의 인구가 증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이앙법을 개발한 이후 인구가 폭등하였다. 이렇듯 농업과 기술은 인간이 자연을 얼마나 더 통제하느냐의 문제였고 그것의 발전은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있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런데 19세기 이후 농업과 기술, 인류의 생존은 별개의 문제가 되었다. 1837년 존디어가 발명한 강철 쟁기는 북미의 황무지를 개척하여 농업 생산력을 수십배로 증대하였지만 그 지역에서 오랜기간 살아왔던 원주민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제국주의 시대의 서막이 되었다.

그리고 20세기초 프리츠 하버와 카를 보슈의 공중 질소 고정법의 발견은 16억이던 전 세계 인구를 불과 100년 남짓한 시간만에 70억이 되는 그야말로 인구 폭발을 일으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인류는 농업생산력이 가져온 무지막지한 풍요를 만끽하고 더욱 큰 풍요를 누리기 위해 서로의 것을 빼앗느라 우리에게 주어진 풍요를 어떤 방식으로 통제하고 지속가능하게 할지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한 시대의 풍요가 더 이상 지속되기 힘들 것이라는 불안감이 고조되는 이 때 인간보다 더욱 효율적으로 자연을 통제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출현하였다. 이상기후와 온난화로 더욱 거칠어지는 자연을 인간보다 더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존재의 출현이라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와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 완벽해 보이는 존재(인공지능)는 누가 어떻게 통제하는가?

강철쟁기와 화학비료의 발명 이후 농업은 유럽과 미국의 주도하에 전문화 집약방식이라 불리는 형태로 변화하여 왔다. 트랙터 ·콤바인 등 고차원적인 기계화를 주축으로 하며 그 기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특정작물만의 집중재배, 연작제도의 도입, 경영의 전문화 등을 실시하였다. 농지가 넓은 해남은 미국식 전문화 집약방식의 농업 형태의 전형을 보여주는 한국형 모델이다.

현대의 농업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자본과 깊게 관계 맺고 있다. 전문화 집약방식이라는 농업의 형태는 더욱 고가의 기계를 구비해야 가능하고 자연의 효율적 통제를 위해 농업 기술을 발전시켜오던 농부들이 이제는 부채의 통제를 잘 해내야 생존을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

몇 년전부터 해남 곳곳에 '드론으로 농약을 살포해 드린다.' 더욱 효율화된 기계로 밭작업을 대리해 준다는 플래카드가 걸리기 시작하였다. 한편으로는 3차산업의 성장의 한계를 예감한 거대 기업들이 농업회사들을 인수하거나 투자를 진행 중에 있다.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는 나의 불길함은 여기에서 연유한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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