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끼줄을 엮어 커다란 용줄을 만든다.
▲ 새끼줄을 엮어 커다란 용줄을 만든다.
▲ 우드럼이 마을을 행진한다.
▲ 우드럼이 마을을 행진한다.
▲ 아드럼과 우드럼이 모이면 고사를 지낸다.
▲ 아드럼과 우드럼이 모이면 고사를 지낸다.
▲ 아드럼과 우드럼이 싸움을 시작한다.
▲ 아드럼과 우드럼이 싸움을 시작한다.
▲ 아드럼과 우드럼을 비녀목으로 고정시켜 힘을 겨룬다.
▲ 아드럼과 우드럼을 비녀목으로 고정시켜 힘을 겨룬다.

l 싣는순서 l

1. 지역 문화예술 얼마나 알고 있나
2. 사라졌던 용줄다리기 다시 세상으로
3. 해남강강술래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다
4. 강원도의 색을 품은 매지농악
5. 조선시대의 모습 그대로 간직한 하회마을
6. 백제가요 정읍사 악극으로 전해져
7. 지역 문화예술 계승을 위한 방안 마련

풍년·풍어 빌던 줄다리기
50여년 끊겼던 명맥 이어

북평용줄다리기는 지역공동체 문화를 보여주는 전통문화이다. 용줄다리기는 지역민이 하나가 되어 용줄을 둘러메고 서로 힘을 겨루는 것으로 한 해의 풍년과 풍어를 점치고 지역의 발전과 지역민의 건강, 각자가 가진 바람을 비는 행위이다.

남창마을에서 행해지던 줄다리기는 정월대보름이면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나뉘어 아드럼과 우드럼을 잡고 힘을 겨루며 한 해를 시작하는 의미이자 지역민들의 소득원인 풍년과 풍어를 점치는 축제였다.

남창줄다리기는 매년 이어져 오다 약 55년전쯤 한국전쟁 이후 그 명맥이 끊겼다. 이후 지난 2009년 이를 복원해 지난해까지 7년 동안 남창마을을 넘어 북평면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축제로 확장됐다. 정월대보름에 행해졌던 용줄다리기를 추수가 끝난 시기에 맞춰 재연한다.

줄다리기는 전국 각지에서 행해지던 놀이였다. 지금도 북평과 우수영을 비롯해 다양한 곳에서 그 모습이 남아 행해지고 있다. 대부분이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 등을 겪으면 많은 지역에서 줄다리기는 그 모습을 감췄다.

전국적으로 줄다리기의 모습은 지역별 소리, 방식, 형태가 조금 차이가 있을 뿐 유사한 모습을 띈다. 줄을 운반하는 과정, 서로의 위세를 자랑하는 기싸움, 힘겨루기 등으로 승부를 가린다. 남창줄다리기도 이 같은 과정에서 크게 변함은 없다. 아랫마을과 윗마을의 아이들이 짚으로 새끼줄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해 어른들이 그 위에 새끼줄을 더해 커다란 용줄을 만들어 힘을 겨뤘다. 복원과정에서 용줄 위에 장군을 세우는 과정을 추가했다.

줄다리기는 줄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해 힘겨루기까지 모든 것을 마을에서 함께한다. 마을주민들을 한마음을 결집시키는 중요한 행사였다. 줄다리기에 쓰이는 용줄은 남, 녀를 의미하기도 한다. 두 개의 줄을 비녀목으로 고정하는 것은 남녀의 성행위를 묘사한다. 대부분의 줄다리에서는 여성이 승리하도록 결말을 낸다.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여성이 이겨야 그 해 농사가 잘된다는 의미이다. 남창줄다리기의 승리 방식을 두고 의견차가 있다. 여성을 뜻하는 아드럼이 이기면 풍어, 남성을 뜻하는 우드럼이 이기면 풍년이 든다는 주장도 있다. 복원 후 결정된 것은 여성인 아드럼이 이기면 풍년과 풍어가 든다고 정해 시연되고 있다.

동국세시기를 살펴보면 조산시대 연산군 6년에 전국성곽을 보수하고 성곽에 제사를 지내며 줄다리기, 대동제 등을 마을주민들이 모두 나와서 하도록 기록되어있다. 남창줄다리기도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달량진성을 보수하면서 관과 함께 남창주민들이 줄다리기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민 힘 모아 복원나서
민예총 포구문화제 첫 선

50여년의 세월 동안 사라졌던 남창줄다리기가 다시 복원된 것은 해남민예총에서 포구문화제를 준비하면서 부터다. 해남 포구들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 지역의 전통을 되살리자는 취지로 진행했던 제2회 포구문화제를 준비하면서 남창에 주목하게 됐다.

이에 지역민들은 해남남창줄다리기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그동안 명맥이 끊겼던 줄다리기의 모습을 하나 둘씩 되찾았다.

해남남창줄다리기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이후 북평용줄다리기 상임부회장을 맡았던 김동섭 씨는 "내가 7~9살 정도까지 남창에서 줄다리기를 했었다"며 "정월이 되면 보름전까지 어린아이들이 새끼를 꼬아 작은 용줄을 만드는 것으로 줄다리기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이어 "어린아이들의 작은 용줄에 어른들이 더해서 점점 굵기가 커진다"며 "정월대보름이면 완성된 용줄이 아랫마을과 윗마을을 가로질러 마을 중앙에 모여 힘겨루기를 했다"고 덧붙였다.

줄다리기를 했었던 마을 어르신들의 기억과 기술 등을 수집하고 행사 준비에 나섰다. 25m에 달하는 용줄을 들고 이동하려면 그만큼의 인력이 필요했다. 남창마을 주민들만으로는 줄다리기를 재현하기 힘들어 북평면민들이 함께 힘을 모았다. 줄다리기에는 아드럼과 우드럼을 운반하는 줄꾼만 120여명이 넘게 필요하다. 거기에 깃수, 풍물패 등이 더해지면 300여명이 넘는 인원이 있어야 줄다리기가 완성된다.

2009년 첫 시연에서는 아드럼과 우드럼 두 패로 나뉜 행렬은 풍물패와 소원이 담긴 깃발 등과 함께 등장했다. 서로의 기세를 자랑하며 각자 위용을 뽐내는 모습을 보고 행사장을 찾은 주민들은 환호를 질렀다. 줄고사, 이싸움, 깃발싸움 등을 통해 서로의 힘을 뽐내고 아드럼과 우드럼을 비녀목으로 엮어 힘싸움이 벌어졌다. 아드럼의 승리로 줄다리기가 끝이 났지만 소원이 담긴 깃발을 달집과 함께 태우며 첫 시연이 마무리 됐다.

이판수 남창이장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 재현하는 것보다 그 규모가 큰 행사였다고 한다"며 "마을주민들이 다함께 참여하는 공동체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포구문화제와 함께 시연됐던 남창줄다리기는 보존회를 구성해 매년 행사를 진행했다. 2회 가량까지 남창줄다리기로 불리다가 북평 용줄다리기로 명칭을 바꿔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북평 용줄다리기가 행해지던 시기는 정월 대보름이지만 수확이 끝난 시점에 행사를 진행한다. 지난해부터는 매년 10월 마지막주 토요일로 날짜를 고정해 용줄다리기 시연 외에도 민속놀이, 축하공연 등이 어우러진 축제로 운영되고 있다.

군에서도 2009년 300만원, 2010년 500만원 등 지원금을 늘리며 용줄다리기 시연을 지원하고 있다. 2013년 1000만원, 2014년 1300만원을 지원하다 지난해부터는 농식품부의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국비 1000만원과 군비 1000만원, 자부담 200만원 등 예산이 늘어났다. 예산이 늘어나 규모를 확장해 지역민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부대시설과 공연 등을 더해 운영됐다. 지난해 성과발표에서 1등을 해 400만원의 지원금이 더해질 예정이다.

북평용줄다리기 보존회는 면장, 각 마을 이장, 지역민 등 44명의 임원진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매년 남창에서 용줄다리기 축제를 열고 용줄 제작, 기술 전수 등에 힘쓰고 있다. 용줄다리기 전시관도 개관을 앞두고 있어 북평면과 해남을 대표하는 전통문화로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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