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순(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4.13 총선 공천과정에서 여야 정당 모두 한심한 추태를 국민들에게 보여주었다. 민주주의 원칙이나 정책 이념은 고사하고 상식적으로는 이해 못할 촌극이 연이어 벌어졌다.

대한민국 정치가 한심한 수준에 머무는 이유는 정치적 "진입장벽" 때문이다. 시장경제 용어인 진입장벽은 특정 산업이나 사업 분야에 새로운 경쟁자가 진입하기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이다. 진입장벽이 높으면 경쟁이 제한되어 독과점 시장이 형성되고, 신상품 개발이나 기술혁신이 지체된다. 소비자들은 가격이나 품질면에서 선택의 여지가 줄어든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대부분의 진입장벽은 허물어야 할 대상이다.

진입장벽은 사회 전체적인 측면에서 볼 때 득보다 실이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정 사업자나 직업인의 기득권 유지에 악용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치권에는 여전히 높은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민주국가에서 정당은 다양한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결집하는 수단으로 필수불가결하지만, 특정인들이 권력을 독과점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그것을 가능케하는 것이 현행 공천제도이다. 대한민국에서 정치인이 되려면 우선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당의 후보가 되어야 하는 과정, 즉 공천을 거쳐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한 정치인들은 정당을 장악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후보자들에게만 그 벽을 넘을 수 있는 사다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들에게 잘 보이면 선거도 하지 않고(비례대표 공천후보자), 혹은 형식적인 선거만 치르고(소위 텃밭지역 공천후보) 국회의원으로서 국민대표자가 된다. 국회에 진출해서도 그들은 유권자를 두고 상대후보와 치열한 경쟁을 할 필요없이 자신에게 사다리를 제공한 선배 정치인에게만 잘 보이면 된다.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를 선배 정치인들은 이번 공천과정에서 후배 정치인들에게 잘 보여주었다. 비록 국민들로부터는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후배 정치인들의 기강을 잡는데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작금의 공천파동은 누구에게 진입장벽을 넘어갈 사다리를 줄 것인가를 두고 기득권 정치인들이 드러내놓고 벌인 싸움이다. 국민들에게 추태를 보였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경쟁정당도 별반 다르지 않아, 선택권이 제한된 국민들은 다른 대안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국민주권 민주공화국이라지만, 소수의 정당권력자들이 주권을 찬탈한 국가로 전락했다. 이제부터라도 정당의 진입장벽을 허물고 국민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공천 민주주의" 투쟁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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