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전남과학고 교사)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봄에 해남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또 하나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봄의 나른한 움직임이다. 전 세계 95% 이상의 흑두루미 서식지인 이즈미에서 월동하던 흑두루미가 번식지로 이동할 때 해남의 하늘과 들녘을 거쳐 간다.

3월 22일 오전 일본 이즈미 평야에서 흑두루미 3600마리가 북상하기 위해 우리나라 방향으로 날아갔고, 20일부터 북상한 것까지 합치면 4400마리가 넘는다. 1만5000마리의 흑두루미 중 약 1/3정도가 이동한 것이다. 3월 초순부터 이동한 흑두루미가 제주도를 거쳐 해남, 영광, 고창, 군산, 보령, 천수만으로 올라가는 서해안 경로와 순천만 방향으로 올라가는 경로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천수만에는 4000여 마리의 흑두루미가 머무르고 있다.

지난 17일 해남에서 흑두루미 500여 마리가 관찰되었다. 흑두루미 이동기의 잠깐 쉬는 장소로 이곳을 이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예전부터 해남은 다양한 희귀 조류의 월동지로 선택받던 지역이었다. 해남의 조류에 대한 조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던 1990년대 후반 이전부터 해남은 동아시아 최대의 조류월동지역이었다. 그 중심은 간척지였으며, 핵심지역은 뜬섬이었다. 그곳에서 재두루미, 흑두루미, 황새 등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 때 순천만도 중요성을 인정받았고, 순천만과 해남은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하여 순천만은 생태수도로 태어났고, 해남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갔다. 순천만에는 올해 1000여마리의 흑두루미를 포함한 두루미류가 월동하여 연 2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들려 생태도시로 각인되었지만 해남에는 잠깐 들른 500마리의 흑두루미에 관심을 보일 뿐이다. 심지어 순천만은 관광객이 너무 많아 제한하자는 이야기가 있다. 해남이 순천만과 같은 생태도시로 거듭날 수 있던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해남의 역량은 집결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일본 이즈미는 겨울철 흑두루미가 한 곳에 많이 모이는 것은 질병에 취약할 수 있어 분산되었으면 한다. 순천만도 두루미류 1000마리 정착으로 포화된 느낌이라 다른 곳으로 분산되었으면 한다.

또한 일본에서 방사된 황새가 한반도에 방황하고 있고, 올해 방사될 충남 예산의 황새도 한반도에 방황하게 될 것이다.

해남의 뜬섬에 생태적 관점의 디자인과 관리가 적용되면 다시 예전의 해남 명성이 되돌아오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 희망은 생태적인 디자인과 관리가 세밀해야 한다. 주민의 숙원사업으로 포장하여 다리 놓는 등이 아닌 방법이 필요하다. 어떤 환경을 만들 것인지와 어떤 목적으로 접근할 것인지는 여러 집단의 협업이 필요한 것이다. 일반적 행정 방법이 아닌 다른 행정의 접근법을 사용한다면 해남에서 특화된 간척지로 거듭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 겨울 해남에 머물던 25만 정도의 가창오리가 3월 16일에도 금강호에서 관찰되었다. 삽교호와 금강 등을 헤매고 다니다 이제 시베리아 근처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가창오리나 흑두루미의 관찰 소식은 새들이 해남이 좋아서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들이 추위에 마지못해 견딘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그래서 날씨가 풀리면 곧바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그들이 해남의 넉넉한 들녘에서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17일 해남의 500마리의 흑두루미 소식을 듣고 흑두루미가 본능적으로 고향을 찾아가듯, 해남의 조그만 반가운 소식에 멀리서 귀가 쫑긋하는 느낌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인간의 본능인가 보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