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신문의 기원은 유럽의 카페에서 비롯되었다. 카페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가던 소문이나 잡담을 정리해 인쇄한 것이 초창기의 신문이었다. 18세기 당시 유럽에 신기술로 보급된 금속활자 인쇄기를 통해 대중매체의 시대를 열었다.

신문을 통해 빠르게 많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던 유럽 국가들은 식민지 개척과 산업혁명을 주도하며 세계 최강의 문명대륙으로 부상했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유럽의 카페문화가 위협받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카페에 모여 대화하는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여전히 사람들이 카페에 모이고 있지만 서로 담소하기 보다는 스마트폰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국의 커피숍에도 서로 모여 수다 떠는 무리들 보다는 마주 앉아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를 만지작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청소년들이 친구나 가족과의 대화보다 스마트폰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아 우려가 심각하다. 미국의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시간이 많은 청소년들이 상대적으로 친구가 적고 친구와 어울리는 시간도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시대의 또 다른 부작용은 콘텐츠의 과잉이다. 우리 일상만 보더라도 확인해야할 이메일과 문자서비스가 끊임없이 도착하고, 페이스북과 카톡대화방과 인터넷카페를 매일 매일 점검해야 한다. 시간 내어 신문을 읽거나 시간 맞춰 방송 뉴스를 굳이 볼 이유도 없고 그럴 여유도 없이 빡빡한 일상이 되었다.

특히 진실과 허위를 구별하기 어려운 주장이나 정보가 넘쳐난다. 기존의 신문이나 방송처럼 뉴스와 광고가 구분되어 있지 않아 판단이나 행동의 지침으로 인터넷 정보를 사용하기 힘들다. 충격, 대박, 경악 등의 제목으로 독자의 클릭을 유도하지만 정작 내용은 별것 아닌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마치 우범지역을 한 밤중에 지나가는 것처럼 긴장하고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을 사용해야 하는 현실이다. 그렇지만 디지털 문화는 이제 우리 삶의 일부이고, 그 순기능을 최대한 이용하고 부작용을 최소화 하는 수밖에 없다.

지난 주 필자는 40년 넘게 소식이 끊겼던 초등학교 친구를 찾았다. 동창생들이 만든 카톡방에 그 친구의 이름이 마침내 뜬 것이다. 바로 문자를 주고받고 시간 내어 만나기로 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 듣고 싶은 얘기가 너무나 많다. 조용한 카페에서 그 친구와 정담을 나누며, 스마트폰 없이도 행복했던 옛 시절을 되돌아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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