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연화제 고니에 대한 단상

아무리 겨울이 새 생명을 움틔울 봄을 준비하는 기간이라 하지만 텅 빈 들판과 초록의 옷을 벗어버린 산야는 보는 이의 마음을 황량하고 쓸쓸하게 만들어버린다.
올해는 보리 수매량도 줄어들어 예전 같으면 눈 속에서도 씩씩하게 자라고 있을 보리 밭을 보기도 힘들고 그나마 비닐을 깔고 있는 마늘만이 대지 위에 꿋꿋하다.
며칠 전 읍에 가던 중 화산면 석정리 앞 연화제 위에서 한가로이 놀고 있는 청둥오리와 고니 떼(?)를 봤다. 청둥오리야 백여 마리는 족히 되어 떼라고 해도 되지만 열 대여섯 마리밖에 안 되는 고니를 떼라고 할 수 있을까 하겠지만, 얼마 전에 고천암에 갔을 때도 그 많은 가창오리 무리에서 멀리 떨어져 외롭게 노닐고 있는 한 마리의 고니에 비하면 열 대여섯 마리는 엄청난 수가 아닐는지… 더구나 고니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보호조류가 아닌가?
청둥오리 속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고니는 제 모습을 찾은 듯 우아하고 당당한 것이 그 보다 많은 무리의 청둥오리보다 대번에 눈길을 잡아끌었던 것이다.
석정리 앞 연화제는 저수지가 넓고 저수지 가장자리로 갈대밭이 듬성듬성 있으며 주위에 논이 많아 해마다 거르지 않고 청둥오리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해남에서는 그다지 흔하게 볼 수 없는 고니를 무엇이 여기로 불러들였을까? 해마다 여기서 겨울을 나는 청둥오리가 자신이 살아보니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오갈 데 없던 고니를 부른 것일까?
동화 ‘미운 오리새끼’에 나오는 오리들은 어쩌다 자신의 무리 속에 잘못 끼어 들어온 고니를 자신들과 틀리게 생겼다고 구박하지만, 석정리 저수지에 있는 고니와 오리는 서로 다른 몸 색깔이나 크기에 상관하지 않고 평화롭게 이 겨울을 나고 있다.
다만 문제는 우리 인간이 문제인 것이다. 누군가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했을 때 누군가 사람만이 문제라고 했다던가? 인간만을 세상의 중심에 놓는 오만함을 버리고 인간만이 세상의 것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하고 소비하고 있다는 인식이라도 제대로 하라는 말일 것이다. 석정리의 겨울은 그들에게 어떻게 각인되고 있을까? 그들이 따뜻한 봄이 되어 인간에 의한 한 마리의 희생도 없이 그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갈 때, 그들의 머리에 해남이 다시 찾아야 할 좌표로 온 몸에 각인되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고니와 청머리 오리, 홍머리 오리, 물닭 등이 어우러져 유유히 노니는 화산 연화저수지.>

장진숙(송지 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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