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대신 북채를 쥔 영웅

살갗이 타들어 갈 것처럼 작열하던 태양빛이 이젠 더이상 아니다. 청신하게 불어오는 가을 바람에 자리를 내주고 순한 햇발이 되어 가을 들녘을 비춘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은 그 무덥던 한여름 북을 두드리며 더위 한 가운데 있었다. 이제 한숨 돌릴만큼 선선해진 날씨 덕에 땀을 흘리며 연습하지 않아도 되지만 20~30명이 한박자로 두드리는 합북의 신명에 취하다보면 그 열기는 지난 여름 못지 않게 뜨겁다. 합북의 웅장하고 장엄함은 판소리에 신명을 불어넣는 한명의 고수와는 또 다른 맛이다.
웅장함과 장엄함의 묘미를 갖춘 합북의 매력에 빠져 오늘도 연습에 여념이 없는 노인합북단. 우리지역의 새로운 노인문화로 자리잡은 이 단체를 이끄는 이가 윤재원(73 옥천 용산)씨다. 깡마른 체구에 굳은살이 두툼하게 박힌 손, 어느 모로보나 한량한 고수의 모습은 아니다.

금성무공훈장 받은 영웅

윤씨의 전우들은 ‘중공군 껍질을 벗겨온 영웅'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51년 5월, 국민학교 6학년이던 그는 학도병으로 전쟁에 참가 3사단 22연대에 배속된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하루밤이 지나면 1개중대원 중 몇 명만이 생존하는 중동부전선 김화지구 김일성고지와 피의 능선 전투, 백마고지 전투에서 질기디 질긴 목숨을 연명하며 중공군을 포로로 잡는 전과를 올린다.
이때 상급부대에서 포로 껍질을 벗겨오라는 말(포로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옷을 벗겨오라는 표현)에 윤씨는 잘들지도 않는 대검으로 손톱에 피가 나도록 포로의 진짜 살가죽을 벗겨왔다. 얼마전 작고한 해남의 전우는 이것은 그가 잔인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그가 순진했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한다.
중동부전선 김화지구 전투는 그에게 금성무공훈장과 태극무공훈장을 가져다주었고 7년 6개월을 복무한 그는 59년 특무상사로 전역한다.
 이때의 호기와 영웅심이 젊은 시절 자신을 지탱해준 보루였다고 윤씨는 기억하고 있다.

세상사 시름 다 잊어

전역하기 1년전인 58년 지금의 부인 이관녀(68)씨와 결혼, 전역후 농사로 연명하며 남매를 키우는 중에도 그는 일이 있으면 항상 남보다 앞장서 나서는 호기를 잃지 않았다.
지금과 같이 보상금도 없었던 시절, 6남매중 막내로 태어난 그에게 돌아올 재산도 없었다. 군대 시절 가졌던 밥 먹고 싶은 데로 먹고, 자고 싶은 만큼 잘 여유는 전쟁영웅에게는 한여름밤의 꿈에 불과했다.
7년전 주위의 권유로 잡은 북채는 그의 인생에 새로운 전환기가 됐다. 영웅심으로 살던 세상에 북은 그에게 또 다른 신명을 불어넣은 것이다. 북을 치다가도 신명이 나면 그는 혼자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춘다.
북을 치기 시작한 후 그는 잡념도 없어지고 시간도 잘가서 좋지만 무엇보다 세상 살다보면 안좋은 일도 많은데 북채를 쥐면 세상사 시름을 다 잊어버려서 북을 계속 치게 됐다고 한다.
태풍이 지나간 뒤 끝, 땡볕 아래 밭작물을 보살피느라 여념이 없는 부인은 “복 있는 사람은 놀고 복없는 사람은 일이나 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젊은 시절 남편의 영웅심에 속께나 상했음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북을 친 뒤로는 성질이 좋아져서 아침마당에 나온 사람 마냥 업어주고 싶다는 부인 이씨. 군에서 살아온 것만도 고맙고 지난해 경운기 사고로 팔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는데도 수술 후 그 손으로 다시 북채를 쥐게 된 것도 감사하단다.

전국국악대회 특별상 수상

창립2년째 노인합북단 회장을 맞고 있는 윤씨는 지난 4일 실시된 부산 1인1기 전국국악대회에서 고수부분 특별상의 영예를 안았다. 전국에서 모인 고수들을 제치고 각 면에서 모인 70~80대의 노인합북단 35명이 거둔 쾌거다.
현재 최고령자 회원은 84세이고 거의 대부분의 회원이 70대다. 그 중 거의 대부분의 회원이 윤씨보다 북을 오래 친 사람이다. 나이가 더든 사람도 많고 그보다 더 오래 북을 친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어떻게 회장이 됐느냐는 물음에 “제자가 스승 잡아먹는 것이 북”이라고 답한다. 전쟁의 영웅심이 북의 신명속에 녹아 남들보다 더 빨리 경지에 들어가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5월 ‘북과 춤과 아름다운 인생'이란 주제로 문화예술회관 개관 기념 공연을 가진 것을 비롯해 진도초청공연 등 그는 총 대신 북채를 쥐고 새로운 인생을 열어가고 있다. 자신의 주도로 6년전 설립한 옥천 국악협회도 그에게는 커다란 재산이다. 낮이면 그곳에서 50여명의 회원들에게 사물놀이도 가르치고 자신이 배운 살풀이와 학춤을 지도하고 있다.
그에게는 요즘 하나의 바람이 있다. 노인합북단의 모든 운영비가 경제력도 없는 노인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다보니 궁색하기 짝이 없다 한다. 그래서 군에 임의단체 신청을 고려 중이다. 전국에서 최초로 활성화된 노인합북단이 해남의 새로운 노인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조그마한 지원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오늘도 그의 방에는 훈장이 달린 정장과 훈장증서를 걸어둔 액자가 먼지가 수북히 쌓인 채 걸려 있다. 107명의 옥천면 참전군인 중 6명만이 살아 돌아온 한국전쟁. 그에게는 아직도 자신의 인생 대부분을 차지했던 전쟁에서의 기억과 영웅심이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장을 차려 입은 노 군인의 눈에는 번득이는 눈빛대신 풍류의 신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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