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싣는 순서 |① 5·18 40주년,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나② 5·18 그날의 해남 그리고 해남인③ 지워져 가는 기억들, 끝나지 않은 상처들④ 한국전쟁, 그날의 해남, 그리고 해남인⑤ '4070',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해남에서의 5·18민주화 운동과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적잖은 숙제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해남의 경우 5·18과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에서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이 잇따라 발생했고 각각 40주년과 70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정확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
| 싣는 순서 |① 5·18 40주년,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나② 5·18 그날의 해남 그리고 해남인③ 지워져 가는 기억들, 끝나지 않은 상처들④ 한국전쟁, 그날의 해남, 그리고 해남인⑤ '4070',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부모님과 이름까지 뺏겼다- 김광수 씨(경기도 김포)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어느덧 70주년, 한국전쟁은 당시 일곱 살이던 김광수(77) 씨로부터 모든 것을 앗아갔다. 심지어 그의 이름까지도. 김광수 씨는 한국전쟁으로 부모님을 모두 잃었다. 70년이 다 됐지만 유해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김 씨
| 싣는 순서 |① 5·18 40주년,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나② 5·18 그날의 해남 그리고 해남인③ 지워져 가는 기억들, 끝나지 않은 상처들④ 한국전쟁, 그날의 해남, 그리고 해남인⑤ '4070',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 2500명 이상 주장… 정부는 159명만 인정한국전쟁을 전후로 해 국가공권력에 의해 아무 죄 없는 민간인이 무참히 살해당했다. 전국적으로 114만명, 전남 22만명, 해남 2500~3000명으로 추정된다.경찰과 우익단체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후퇴과정이나 서울 수복이 이뤄진
| 싣는 순서 |① 5·18 40주년,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나② 5·18 그날의 해남 그리고 해남인③ 지워져 가는 기억들, 끝나지 않은 상처들④ 한국전쟁, 그날의 해남, 그리고 해남인⑤ '4070',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 5·18의 또 다른 상징 해남읍교회"광주에서 온 시위대가 배고프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에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밥을 하고 김밥을 싸고 주먹밥을 만들어 가져다 줬고요. 우리 시민들, 학생들 다치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에 예배당에 모여 철야기도를 하곤 했죠."지금은 60~80대가
올해는 5·18 40주년과 한국전쟁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5·18 당시 해남에서도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7명 이상이 숨지고, 공수부대가 아닌 향토사단에 의한 조준사격과 암매장이 있었다는 증언이 계속되고 있다. 또 한국전쟁을 전후로 경찰이나 우익단체에 의해 빨갱이로 내몰려 죽어간 희생자가 250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과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은 더디기만 하다. 우리는 '4070'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본다. | 싣는 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