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지금까지 내 고향 해남을 오랫동안 떠나본 적이 없다. 해남에서 태어나 해남에서 자라고 해남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퇴직을 한 지금도 해남에서 생활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다른 지역에서 살아보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아니 한때는 그런 생각을 품은 적도 있지만, 지금은 어머니 품 같은 따뜻한 정이 넘치는 고향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다행이다 싶은지 모른다. 그렇지만 30여 년을 공직자로서 군민을 위해 봉사하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이제 7개월이 지나가고 있는 요즘에는 지금
해남의 수성리 군청 뒤 우리집 기와지붕을 찾으러 나섰다. 어릴 적 다니던 좁은 골목을 찾지 못하여 자동차로 같은 길을 세 번이나 왕복하였다. 조금 움직인 듯했는데도 금세 동네 끝이 나와 버려 오던 길을 되돌아간 것이다.결국 군청 옆에 차를 세워둔 채 걸어가서야 변해버린 마을길 속 과거를 더듬으며 찾아냈다. 어릴 적 대궐 같던 우리집 기와지붕은 신축 건물에 묻혀 아주 작아 보였다. 친구들과 어울려 달리며 누비던 그 길던 골목길은 마치 소인국에 온 듯 몇 걸음에 끝나버렸다. 키 작은 내가 훌쩍 커버린 것이다.우슬재를 지나 해남읍에 들어
우리나라는 식량을 자급하고 있을까? 이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식량 자급에 있어 어떤 문제가 있고 우리 국민과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얼마나 있을지 회의적인 생각을 한다.인구 5180만명, 농경지 158만ha, 국민 1인당 농경지 91평, 식량자급률 23%. 국민 1인당 농경지 면적은 1965년 238.8평, 2000년 119.7평, 2019년 91.5평으로 연 평균 2.6평이 넘는 농경지가 사라지고 있고 이상기후는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정부와 농업 관료들은 이
신축(辛丑)년 새해가 밝았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간 코로나19 상황은 여전하다. 새해에 대한 기대보다는 암울함과 우울이 세상을 휩싸고 있다. 사람들간의 거리는 멀어졌고, 비대면(언택트)은 일상화됐다. 밀집과 밀접, 집중은 악행이 됐다.코로나19가 초래한 불가피한 결과 중 하나가 비대면 사회다. 비대면이 모든 것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많은 부분을 대체한 것만은 사실이다. 2020년 거의 1년 내내 시행된 각급 학교의 비대면 수업을 보면 분명해진다.비대면이 가져온 또 다른 면은 홀로서기. 사람들과의 거리두기가 자신만을 위한 이기주의
해남 촌놈인 내 가슴을 뛰게 한 인생작들을 소개할까 한다. 나를 연극에 입문시켜 프로듀서를 꿈꾸게 만들고, 또 도전정신을 일깨워준 작품들이다. 특히 그 때 맺은 인연들이 요즘 들어 더없이 소중하게 다가온다.먼저, 고등학교 시절 본 고(故) 차범석 선생의 '산불'이다. '산불'은 내가 연극판에 뛰어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시절엔 한 편의 영화, 한 권의 책, 한 편의 연극이 큰 자극이 되어 진로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산불' 때문에 연극에 입문하였고
한국사회는 해방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개의 축을 이루며 급격하게 발전해왔다. 1960년대 국민소득 80불 안팎의 세계 최빈국에서 탈출한 후 고도성장을 거듭하였다. 2020년 현재는 국민소득 3만불을 상회하는 경이로운 성과로 선진국의 대열에 서있다.민주화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민주항쟁 등 치열한 투쟁으로 박정희 군사유신독재체제와 전두환 군부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였다.그동안 격동의 시대를 거치면서 국민들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하였지만 잃은 것 또한 적지 않다. 당장 직면하고 있는 것
"김장은 하셨어요?"월동을 준비하기 위한 첫 번째 행사가 김장이었던 시절 날씨가 추워질 때 나눴던 인사말인데, 요즘은 나이 든 여자들 사이에서나 건네는 말이 되었다. 이웃과 품앗이로 100포기 넘게 담그는 김장은 겨우내 많은 가족의 밥상을 책임지는 중요한 반찬이었다. 김장은 배추김치를 담그는 것이 중심이고 동치미, 백김치, 총각김치 등도 빠질 수 없다.우리의 김치 종류는 매우 다양해서, 재료가 나는 철에 따라 갓김치, 파김치, 열무김치, 고들빼기김치, 부추김치를 담기도 한다. 거의 모든 야채들을 김치로 담글 수 있다. 김치 이름
우연하게 TV채널을 돌리다 한 케이블TV의 프로그램에 끌리게 됐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대한민국을 넘어 세상을 놀라게 할 프리한 남자들의 프리한 특급 뉴스로 전무후무한 특종랭킹쇼'라는 설명으로 소개된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공중파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했던, 더 이상 두려울 것 없는 프리한 세 남자가 진정한 저널리스트가 되어 취재해서 진행한다는 것이다.지금은 'K' 전성시대! 끝날 줄 모르는 전 세계의 한국앓이라며 'K-브랜드'를 소개했다. 미국에서 건강식품으로 떠오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정을 논하지 말라. 공정을 기울어진 상태에서 수평상태처럼 적용하는 것은 참 뻔뻔하다. 국가대표와 시골 초등학생을 같은 출발선에서 달리게 하는 것이 기회균등인가? 한마디로 '엿먹어라~'가 아닌가? 시골 고교생과 강남 고교생을 같은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가?이재용이나 나경원이나 조국의 자식들과 강원도 산골이나 전라도 시골의 청년을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하라는 것은 공정한가? 그들의 할아버지 찬스나 부모 찬스를 시골 고등학생도 받을 수 있는가? 돌려주마, "엿이나 드세요."이쯤에서 한 가지 제안하고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공연예술계가 쑥대밭이 된지 오래다. 세계 공연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공연예술의 메카 런던의 웨스트앤드와 뉴욕의 브로드웨이 역시 지난 3월 이후 벌써 7개월 이상 '셧다운' 기간이 이어지고 있다. 언제쯤 공연들이 재개될 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실정이라 한다.전 세계 모든 공연장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데 비하면 그나마 한국은 좀 괜찮은 편이다. 코로나19 이전보다 작품의 숫자는 현저히 줄었지만 산발적으로라도 명맥은 이어가고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간신히 막이 오른 공연들도 모두 적자에 허덕이고
4년 전 미국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자 4년 동안 미국을 인종차별, 미국 이기주의, 자국 특혜주의, 적자생존을 기반으로 한 집단 이기주의라는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갔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를 '트럼프주의'라고 불렀다. 트럼프 재임 4년 동안 트럼프주의는 국제적으로 적대적인 나라는 물론 자신의 우방 국가를 포함한 전 세계를 향해 펼쳐졌다. 미국의 파리기후협약 및 세계보건기구 탈퇴는 트럼프가 4년 내내 보여줬던 미국 일방주의의 상징이다. 전통적인 우방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에도 미
정부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처하기 위한 방역을 한 단계 완화하면서,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학생들은 학교에 갈 수 있게 되고,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당도 문을 열었다.이번 기회를 통해 이러한 기관이나 시설들이 본래의 기능 외에 얼마나 중요한 다른 사회적 기능을 하는지, 얼마나 고마운지 무엇보다 지난날 어머니 세대가 책임졌던 든든한 가정과 전업주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게 되었다.코로나 바이러스가 대면접촉, 특히 말할 때 튀기는 침을 통해 전파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제일 먼저 나온 방역대책 중 하나는 학교 등
이제 달력이 두 장 남았다. 연초부터 우리의 일상을 옥죄었던 코로나19는 쉽게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이리 오랫동안 우리의 일상을 위협할 것이라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했던 지역민들의 피로도는 극에 달했다. 각종 지원금과 지원대책은 '언 발에 오줌누기'격이 됐으며 생계가 무너지고 생활이 무너졌다. 포털사이트에 '코로나 재확산'이 검색 1위로, '코로나 공포'도 급상승하는 걸 보니 코로나가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올 여름 54일간의 지리한 장마와 세
"불행하세요? 그럼 그 불행을 제게 파시죠~ 어떤가요, 파시겠습니까?" 누군가 당신에게 말을 걸어온다면 당신은 팔 수 있는 불행이 있을까요?일단 '나는 불행하다'고 전제해 보죠. 그 불행이란 무엇일까요? 오늘 아침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일이거나, 쇼핑몰에서 본 어떤 물건을 쉽게 구입할 수 없는 주머니 사정이나, 왁자하게 떠들고 놀아줄 벗이 지금 없다거나, 뭐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겹치고 있다거나, 어느 연예인처럼 잘 생기지 못했다거나, 뭐 그렇고 그런 일들이 나를 붙들고 있는 것들이 아닐까요?산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해남에 머무는 동안엔 꼭 해창막걸리를 찾는다. 해창 막걸리집 주인장은 늘 푹 삶은 돼지고기와 맛깔스런 김치 한 사발을 막걸리와 함께 질펀하게 내놓는다. 손님을 맞이하듯 그가 정성껏 빚은 해창막걸리 역시, 그 깊은 맛을 보면 탄성부터 절로 나온다. 주인장은 내가 주조장 앞에 있는 100년 넘은 창고에 큰 관심을 보이던 것을 알아차리고는, 올 때마다 창고로 안내해 이런 저런 자랑하기에 바쁘시다.아직도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은 목조트러스와 무심하게 발라놓은 울퉁불퉁한 시멘트는 100년이 넘게 비와 바람을 막아주며 수많은 물건들의 안식처가
최근 광주·전남지역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화두는 '광주·전남 행정통합'이다. '광주·전남 행정통합' 논의는 지난 9월 10일, 광주광역시청에서 열린 '공공기관 지방이전 관련 정책토론회'에서 이용섭 광주시장이 꺼낸 화두였다.이 시장은 한국고용정보원 연구보고서의 향후 30년 내에 전남 22개 시·군 가운데 18곳이 소멸위험지역에 포함되었다는 내용을 인용하며 광주·전남 통합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사전 협의 없이 갑작스럽게 나온 깜짝 발언 때문에 당시에 이해 당사자인 전라남도는 물론 정치권이 발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력은 결국 우리의 전통명절인 추석도 특별하게 만들었다. 정부와 방역 당국도 이번 추석엔 고향 방문을 말아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이미 고령이 되신 어르신들은 1년에 겨우 한두 번 명절에나 고향을 찾는 자식과 손주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번엔 그조차 어렵게 되었다.인터넷이나 핸드폰으로 성묘도 하고 제사도 지내라고 하니, 시골에 사시는 노인들에게 이번 추석은 매우 썰렁하고 쓸쓸한 명절이 될 것이 틀림없다.추석은 농경사회의 명절이다. 봄부터 가을이 되도록 땀 흘려 거둔 햇곡식과 햇과일들을 풍성하게 차려놓고, 오랜만에
올 여름 기록적인 기나긴 장마와 역대급 태풍을 겪으면서 '기후변화'라는 단어 대신 '기후위기'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기후변화'는 '지구온난화'라는 단어 대신 등장했었다. 이런 '기후위기' 속에 사람도 힘들어 하는데 야생동물들은 어떨까?일제강점기 때 갖은 이유로 야생동물들을 남획해 사라진 종과 개체수가 수없이 많다. 사라진, 사라질 위기에 처한 멸종위기종에 대한 복원작업도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다.대표적인 야생동물 복원사업이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 프로젝트다.
한국처럼 잘 먹고 잘 사는 나라가 또 있을까?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주변을 둘러보면 부족함 없이 사는 사람들이 참 많기도 하다. 결코 그 행복한 삶을 부정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그런데도 저런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은 한국사회에 대한 일종의 조롱임을 숨기지 않겠다.한국은 이미 오래 전에 배고픔이 해결된 나라라고 한다. 음식 소비량이 엄청난 나라이기도 하고, 그만큼 음식 쓰레기 처리에 애를 먹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요즘 방송을 보면, 방송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어디 방송만이겠는가, 신문이든 사회관계망서비
나는 요즘 내 고향 땅끝 해남을 자주 찾아간다.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이 취소되거나 중단되는 일이 잦아서 그런지, 허탈한 마음이 들면 뭔가 고향에서 위로를 얻고 싶은 가 보다. 해남에서의 쉼은 내게 많은 위로와 안식을 주었지만 동시에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 시간이기도 했다.나는 왜 연극을 하는가? 앞으로도 해야하는가? 그렇다면 이제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어디에서 누구랑 이야기를 나눌 것인가? 나에게 던졌던 수많은 질문들 중에 몇 가지는 더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재미와 감동을 나눌 수 있는 새로운 이야깃거리는 없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