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해남 출신인 시인 김준태는 광주에 있는 전남고에서 독일어 교사로 근무 중이었다. 18일부터 시작된 광주항쟁이 이틀째 접어든 19일, 그는 마지막 수업을 하고 있었다. 광주는 이미 유혈이 낭자했고, 정상 수업은 불가능했다.'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던 나는 1930년대 이베리아반도에서 터져 나왔던 스페인 내전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그때 총살되어버린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를 떠올렸습니다. '로르카, 로르카!'를 마음속으로 불러내면서, 로르카의 '달이 떠오를 때'라는 시를
해남에서 산다는 건 무엇일까?왜 해남에서 살게 되었을까?왜 하필이면 한반도의 최남단이라는 해남에 삶을 의지하게 되었을까?숙명이라는 사람도 있겠고, 우연이라는 사람도 있겠다. 어쩌면 필자처럼 우연히 시작된 회귀본능 탓일 수도 있겠다.'어쩌다 보니 이곳에서 태어났고 살다보니 그렇게 됐어'라거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보니 어찌어찌 흘러들어 머물게 됐어'라거나, '어쩌다 보니 그 남자를, 그 여자를 만나서 혼인하게 되었는데 이곳이 집이라더군' 같은 얘기들이 전제된 삶이겠다.살게 된 이유야 어쨌든
변호사의 활동 영역은 매우 다양하다. 변호사 활동 경력을 기반 삼아 정치인이 되거나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경우도 점점 많아져 가고 있지만, 여전히 소송 사건의 처리가 변호사 업무의 중심에 있다. 이러한 소송분야도 잘 알려진 것처럼 대표 격인 민· 형사소송 외에도 행정소송, 가사소송 등 그 종류가 다양하고 넓다. 변호사로서는 경력이 일천하지만 그 사이 인상적이면서 인생과 부부생활에 관하여도 다시 생각하게 한 이혼사건이 있었다.흔히 볼 수 있는 사연이지만 부부가 이미 80세에 가까워 무거운 마음으로 수임한데다가, 의뢰인의 성품이 재산분
10살 난 딸아이가 노래를 연신 부른다."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월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어릴 적 친구들과 들판을 가로지르며 등·하교길에 불렀던 날들이 눈물 나게 먼 세월이 되어 올라온다.딸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작년까지만 해도 같은 학년이 6명이었는데 전학 가고 4명만 남았다. 올해 입학할 아이도 동성 친구가 없다고 읍으로 학교를 보냈다. 마을에 사는 학생도 읍으로 보내야 하는 현실이다.내 아이를 보면, 항상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고민에 빠진다.농촌의 초고령화와 지역 소멸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유럽의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고 화려한 벚꽃이 봄을 알리더니, 4월의 산야(山野)는 화사한 봄꽃과 푸르름으로 수채화를 그린 듯 아름다움을 주고, 조용하던 농촌의 들판 여기저기 농사 준비에 바쁜 모습이다.아침 일찍 농장엘 가다 보면 밭에서 고구마를 심고, 고추 모종을 하는 모습을 본다. 이제 농촌의 활력이 넘치고 풍년 농사를 위한 준비가 시작된 것 같다. 아침 안개가 자욱한 아름다운 들녘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 좋아 보인다. 고령화로 인해 외국인들이 많은 노동력을 대신하고 있지만, 마을 주변을 지나가다 보면 마늘밭에서 풀을 매
'다양하다'라는 표현은 많다, 풍요롭다, 그래서 살필 것도, 감동받을 것도 많아서 상상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단어이다. 多(많을 다), 樣(모양 양), 性(성질 성)으로 빚어진 '다양성'은 나이, 종교, 성, 인종, 윤리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의 개인적 특성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다.코로나19 확산으로 개인 간·집단 간 교류가 제한되고 비대면 서비스가 확산됨에 따라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 반면 세상은 이미 자기만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확장
LH(한국토지주택공사) 농지투기 사태로 온 나라가 야단법석이다. 농지문제는 그동안 농민들과 농민단체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수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농지이용실태에 대한 전수조사를 요구해 왔다. 2006년 직불금 수급자 100만명 중에 비농민(부정수급자)이 28만명에 달했다. 현재 직불금 총액이 2조4000억원에 가까우니 약 7000억원을 농민이 아닌 사람이 받은 것이다. 이뿐이겠는가. 전체농지 중에 비농민이 소유한 농지가 57%이고, 농민의 60%가 소작농인 현실에서는 밝혀진 것보다 더 많은 부정수급자가 있을 것이다.지금 우리 농촌에
미국 뉴욕항 앞에 있는 엘리스섬. '자유의 여신상'으로 유명한 리버티섬 바로 옆에 있다. 1892년 1월 1일, 엘리스섬 선착장에 대형 선박 3척이 닻을 내렸다. 이 날은 엘리스섬에 개설한 연방이민국이 업무를 시작한 날. 이민국을 통과한 1호 이민자는 아일랜드에서 온 15세 소녀 애니 무어. 그녀는 이미 미국에 와있던 부모와 함께 살기 위해 대서양을 건넜다. 이 해에만 앨리스섬을 통해 45만명이 미국으로 들어왔다.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이어진 대규모 미국 이민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수많은 인종간의
1993년 저명한 문화계 인사의 저서를 통하여 내 고향 해남과 이웃 강진이 남도의 첫손 꼽 히는 문화유산 지역으로 소개된 것을 보고 나 자신이 고향 주변에 얼마나 무심하였는지 각성하게 되었다. 그 저서의 서두에 인용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선대 문인의 문구는 그 시절 인구에 회자되었던 것으로 기억되고, 사물을 보는 자세를 가다듬는 데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마침, 재경 법원에서 4년 근무하면 지방의 법원에서 2년 정도 근무 후 다시 재경 법원으로 복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이다. 초연결과 초지능인 AI와 사물인터넷, 빅테이터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산업혁명인 것이다. 이런 초연결 초지능 4차 산업혁명에 돌입하면서 공유개념이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공유차, 공유주방, 공유하우스, 공유창고, 공유자전거, 공유냉장고 등 공유경제를 통해 사회적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해남의 사회적경제 협동조합인 해남사네에서도 공유주방과 공유오피스를 내세워 사회적 경제 실현을 준비하고 있고, 해남땅끝이랑 가공센터는 교육을 이수한 농가를 대상으로 협동조합 가입 후 가공공장 공유를 통해 가공품을 쉽게
우리의 일상 생활에 깊숙이 파고든 것 중의 하나가 SNS(social networking service)라고 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Wikipedia, 2012)는 SNS를 '관심이나 활동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교호적 관계망이나 교호적 관계를 구축해 주고 보여 주는 온라인 서비스 또는 플랫폼'으로 정의한다. 특정한 관심이나 활동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을 구축해 주는 온라인 서비스인 SNS는 최근 페이스북(Facebook)과 트위터(Twitter),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의 폭발적 성장에 따라 사회적·학문
2050년, 탄소 중립(Carbon Neutral)을 이루고자 하는 해이다. 경제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탄소량과 없애는 탄소량을 같게 하여, 탄소의 순 배출량이 제로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해외에선 이미 20개 국가와 지역이 2020년 6월 탄소의 순배출 제로(Net Zero) 목표를 채택했다.이러한 국제적 흐름 속에 우리 정부도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 Long-term low greenhouse gas Emission Development Strategies)'을 올해 말까지 유엔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마와 눈꺼풀 위로 쏟아지는 굵은 땀방울을 팔뚝으로 닦아내며 논일을 하던 어느 날, 논둑에 벗어둔 옷 주머니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숨 가쁘게 울려댄다. 흙 범벅이 된 장갑을 가까스로 벗겨내고 손에 묻은 흙을 닦을 새도 없이 전화기를 꺼냈다. 모르는 번호다."여보세요!" "ㅇㅇㅇ 아버님 맞으신가요?" "ㅇㅇ태양광 업체인데요…." 다음 내용에 대해서는 전화를 받아본 분들은 다들 아실 것이다. 집 주소, 주택 형태, 마당넓이 등 질문들이 이어지고, 태양광을 설치하면 정부에서 보조해 주니 설치만 하면 수익이 된다면서
고향 모습이 예전 같지 않은 지는 오래다. 온 동네에 가득했던 웃음소리와 활기도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아이들은 사라졌고, 노인들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코로나 이동 자제로 인해 올 설은 더 외롭고 쓸쓸했다.수년 전부터 '지방소멸'을 경고하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지방소멸은 일본 이와테현 지사와 총무장관을 지낸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가 2014년 발표한 책에서 처음으로 제시했다.그는 이 책을 통해 당시의 추세가 계속되면 일본 자치단체 900여 개가 사라진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일본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그렇
내 고향 집은 계곡면 신평리이다. 대표격인 신평(新坪) 부락을 포함 6개 자연 부락을 묶어 '신평리'라는 행정리가 된 곳이다.어린 시절 우편 봉투에 주소를 쓸 때는 꼭 마지막에 괄호를 쳐서 내 집이 있던 '해월(海月)부락'이라고 썼다. 강진군의 도암면과 해남군의 옥천면에 접한 변두리여서 교통도 불편하고 전기, 전화 문명의 혜택도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을 정도로 뒤늦은 곳이다. 하지만 위쪽에 큰 저수지가 있고, 그런대로 넓은 들판이 있으며 작지만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도 있던, 특히 말(馬) 삼아 올라타면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정말, 우리는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을 주고 있을까?농촌 마을에는 아이들의 뛰어노는 소리가 없어진 지 오래다. 어쩌다 한두 명 있는 아이들도 마을에서는 존재감이 없다.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 아래는 남자 어르신들의 공간이고, 마을회관은 여성 어르신 방, 남성 어르신 방으로 나뉜 경로당이다. 그곳엔 아이들이 낄 공간이 없다. 마을에 아이들을 위한 온전한 공간이 없는 농촌의 현주소이다.아이들에게 놀이는 생활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 고향 해남을 오랫동안 떠나본 적이 없다. 해남에서 태어나 해남에서 자라고 해남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퇴직을 한 지금도 해남에서 생활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다른 지역에서 살아보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아니 한때는 그런 생각을 품은 적도 있지만, 지금은 어머니 품 같은 따뜻한 정이 넘치는 고향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다행이다 싶은지 모른다. 그렇지만 30여 년을 공직자로서 군민을 위해 봉사하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이제 7개월이 지나가고 있는 요즘에는 지금
해남의 수성리 군청 뒤 우리집 기와지붕을 찾으러 나섰다. 어릴 적 다니던 좁은 골목을 찾지 못하여 자동차로 같은 길을 세 번이나 왕복하였다. 조금 움직인 듯했는데도 금세 동네 끝이 나와 버려 오던 길을 되돌아간 것이다.결국 군청 옆에 차를 세워둔 채 걸어가서야 변해버린 마을길 속 과거를 더듬으며 찾아냈다. 어릴 적 대궐 같던 우리집 기와지붕은 신축 건물에 묻혀 아주 작아 보였다. 친구들과 어울려 달리며 누비던 그 길던 골목길은 마치 소인국에 온 듯 몇 걸음에 끝나버렸다. 키 작은 내가 훌쩍 커버린 것이다.우슬재를 지나 해남읍에 들어
우리나라는 식량을 자급하고 있을까? 이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식량 자급에 있어 어떤 문제가 있고 우리 국민과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얼마나 있을지 회의적인 생각을 한다.인구 5180만명, 농경지 158만ha, 국민 1인당 농경지 91평, 식량자급률 23%. 국민 1인당 농경지 면적은 1965년 238.8평, 2000년 119.7평, 2019년 91.5평으로 연 평균 2.6평이 넘는 농경지가 사라지고 있고 이상기후는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정부와 농업 관료들은 이
신축(辛丑)년 새해가 밝았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간 코로나19 상황은 여전하다. 새해에 대한 기대보다는 암울함과 우울이 세상을 휩싸고 있다. 사람들간의 거리는 멀어졌고, 비대면(언택트)은 일상화됐다. 밀집과 밀접, 집중은 악행이 됐다.코로나19가 초래한 불가피한 결과 중 하나가 비대면 사회다. 비대면이 모든 것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많은 부분을 대체한 것만은 사실이다. 2020년 거의 1년 내내 시행된 각급 학교의 비대면 수업을 보면 분명해진다.비대면이 가져온 또 다른 면은 홀로서기. 사람들과의 거리두기가 자신만을 위한 이기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