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은 '바르게 본다'이며, 생각을 포함하고 있는 견해(見解)와는 다르다. 오히려 바른 관찰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좋다.정견은 석존께서 인간의 바람직한 삶의 방식을 여덟 가지 항목으로 세분한 것 중에서 첫 번째로 놓았다. 불교가 생각도 중시하기 때문에 정사유(正思惟)를 두 번째로 놓고, 바른 생각의 가르침인 경전(經典)의 교학(敎學)도 중시하였지만, 더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은 바르게 보는 정견이며 선학(禪學)이다.그러나 바르게 보기, 정견을 위해서는 바라다보는 인간의 존재적 상태가 올바르게 되어야 하므로, 바르게 볼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잠언 15:3)눈의 건강은 참 중요합니다. '녹내장' 등의 질환은 실명을 일으켜서 건강과 삶의 질을 거의 잃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눈이 멀어서 선한 일을 보지 못하고, 옳은 일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영혼의 건강을 잃게 되고 삶을 망가뜨리게 됩니다.성경에는 "하나님이(여호와) 보시기에 좋았다" 또는 "악을 행하였다" 등의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의 눈은 '안목의 정욕'에 이끌려 선하고 옳은 것을 바로 보지 못하고 겉으로 선한
새해를 맞아 원불교 최고 지도자이신 전산 김주원 종법사님의 신년법문 일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원불교 교조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께서도 교단 창립 시에 수많은 어려움을 당하셨고, 그러한 엄혹한 환경 속에서도 대도회상의 창업이라는 크고 큰일을 이뤄내셨습니다.대종사께서는 "도탄에 빠진 민중에게 지금이 말세인 것은 분명하나 참으로 문명하고 좋은 세상이 오고 있으니 어서어서 준비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한 제자가 불가에서 이상세계로 꿈꾸는 미륵불 용화회상에 대해 여쭙자, 대종사께서는 "미륵불은 법신불의 진리가 크게 드러나는 것이요,
▶瘟疫流行 蚩俗多忌 撫之療之 裨無畏也(온역유행 치속다기 무지요지 비무외야) '목민심서 애민편'직역하면 '염병이 유행할 때 어리석은 풍속이 꺼리는 것이 많으니 어루만져주고 치료해주어 두려워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뜻이다.약 200년 전 미각온(지금의 코로나와 유사)이라는 병이 유행해 10일도 못돼 서울에서만 13만 명이 사망했다. 당시 다산은 염병이 전염되는 것이 모두 콧구멍으로 그 기운을 들이마신 때문이라고 하고 예방을 위해서는 일정한 거리를 지켜야 한다고 했고 환자를 돌볼 때는 마땅히 바람을 등
사대원무주(四大元無主/이 몸에는 본래 주인이 없고)오온본래공(五蘊本來空/마음과 생각느낌 본래 비었네) 장두임백도(將頭臨白刃/저 칼이 내 목을 자른다 해도) 흡사참춘풍(恰似斬春風/봄바람을 베는 것에 불과 하리라)승조(僧肇·384~414) 법사는 구마라습의 수제자였다. 워낙 총명하여 모두가 그의 식견에 감탄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 후진의 2대 왕인 요흥(姚興)은 불교를 독실하게 믿은 군주였는데, 요흥은 승조의 천재적인 자질과 인품을 알고 그를 등용하여 재상을 삼고자 하였다.하지만 승조는 세상의 부귀영화와 벼슬이란 허망한 것이라면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6~8)요즘은 예전과 다르게 강아지가 사람이 사는 집 안에 들어와서 살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주인을 잘 만나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강아지가 사는 마당의 개집으로 내려와서 살기는 예나 지금이나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마찬가지로 사람이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 가기는 그리 어렵지
공자께서 군자는 세 가지 경계할 것이 있다고 했다. 젊어선 혈기가 정해지지 않으므로 여색을 경계해야 하고, 장성해서는 혈기가 한창 강하므로 싸움을 경계해야 하며, 늙어서는 혈기가 쇠하므로 얻음에 경계함이 있다고 했다. 이를 요약하면 정욕, 승리욕, 소유욕이다.혈기(血氣)의 '혈'은 음이고 '기'는 양을 말함인데, 때에 따라서 경계할 줄 알아 이치로써 혈기를 이기면 혈기의 부림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군자가 일반인과 같은 것은 혈기이고 일반인과 다른 것은 지기(志氣)이다. 혈기는 격동하기 쉽고 때가 지나면
엊그제 TV를 보던 중 한 프로그램에 월호 스님이 나오셔서 하시는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였는데 월호 스님이 답하시기를 행복을 쫓아 살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삶의 목적을 묻는다면 바로 '행복'이라고 답하는데 행복을 쫓아 살면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그러면서 제시한 삶의 목적으로 '안심(安心)'을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편안하면 만사가 편안하고 만사가 편안하면 우리는 지속 가능한 행복 속에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우리는 안
접인본무언 출몰임왕환 원무첨감처 단원추월원(接引本無言 出沒任往還 元無添減處 但同秋月圓)사람을 대하면 말이 없고, 출몰은 가고 옴에 내맡기네. 원래 보탤 것도 덜 것도 없는 곳이여, 다만 저 둥근 가을 달 같네. 「북송 4대 황제 인종」무심할 때처럼 마음이 고요할 때가 없고 시비하지 않을 때처럼 마음이 평화로울 때가 없다.너 나를 떠나고, 옳고 그름의 잣대를 내려놓을 때, 그냥 이대로 만족이고 그냥 이대로 기쁨인 것이다. 그러니 이 세상에 그 어떤 것을 보탤 것이며,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을 뺄 것인가?이렇게 도달한 절대 마음 세계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누가복음 6:32~33」흔히 상식적으로도 하는 말입니다. '내 자식 귀한 줄 알면 남의 자식 귀한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 씀씀이나 손길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합니다.잘잘못을 떠나서,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내가 그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의 탓이 아니라 나의 좁은 사랑 탓입니다. 나의 사랑
- 논어 계씨편 -공자께서 벗을 사귐에 있어 유익한 벗이 세 가지요, 손해 보는 벗이 세 가지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유익한 벗 셋은 정직, 성실, 박식함이고. 손해 보는 벗 셋은 겉치레만 잘하는 사람, 아첨하는 사람, 말만 잘하는 사람을 말한다.또 논어 학이편 첫 구절에 '먼데 있는 친구가 찾아오니 기쁘니 않느냐'고 했다. 여기서 친구와 만나는 기쁨도 있지만 공자가 말하는 기쁨은 배움의 과정에서 얻는 기쁨이다.'친구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고 했고 '친구를 보면 나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난 평생 결정적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하길 바랐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사진을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위대한 사진작가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1908~2004, 프랑스)의 말입니다.그의 의미를 음미하자니 소태산 대종사의 법문이 떠오릅니다."세상 사람들은 사서삼경(四書三經)이나 팔만장경이나 기타 교회의 서적들만이 경전인 줄로 알고 현실로 나타나 있는 큰 경전은 알지 못하나니 어찌 답답한 일이 아니리요. 사람이 만일 참된 정신을 가지고 본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이 하
이 세상의 뜨거운 번뇌가 마치 불타는 집과 같은데, 왜 끝없는 고통을 달게 받을 것인가?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부처를 찾아야 한다. 부처는 곧 이 마음이므로 어찌 먼 데서 찾으랴.육신은 생과 멸이 있지만, 참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변하지 않는다.슬프다, 요새 사람들은 자기 마음이 참 부처인 줄을 알지 못하고 자기 성품이 참법인 줄을 모른다.법을 저 멀리 밖에서만 구하려 하고, 부처를 찾고자 하면서도 자기 마음은 살피지 않는다.만약 마음 밖에 부처가 있고, 상품 밖에 법이 있다고 고집하여 불법을 구한다면, 이런 사람은 억만년이 지나도록
사람이 100년을 산다하면 초반 20살까지는 신체적으로 성장한 후에 나머지는 서서히 늙어갑니다. 주어진 수명의 비중에서 초반 짧은 기간에 급성장한 후에 서서히 노화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강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씁쓸한 이치이지요.몸이 늙어가는 동안 사람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바로 성숙입니다. 몸은 이미 다 성장해 늙어질 일밖에 없지만 사람의 내면은 계속해서 성숙해야 하고, 할 수 있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나머지 시간들은 계속해서 끝까지 영혼이 성숙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사랑과 평
▶'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군자구저기 소인구저인) '논어 위령공편'직역하면 군자는 잘못을 자기 자신에서 찾지만 소인은 남의 잘못으로 돌린다는 말이다. 일을 하다보면 누구나 잘못할 때가 있게 마련인데 이 잘못을 남을 탓하기 전에 나를 돌아보는 마음이 필요하다.남을 탓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왜 모르는가? 내 탓으로 하면 좋아질 걸 남의 탓으로 미루면 사회는 밝지 않고 어지럽다. 우리나라 고위공직자나 지도층에 있는 분들이 각성해야 한다. 말로는 충직하다고 떠들어대면서 사건이 불거지면 내
결실의 계절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여느 가을과 달리 민족의 대이동도 가족들과 시끌벅적한 일상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기존의 우리 일상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격리된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심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인간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면서 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러한 관계성을 '없어서는 살지 못하는 관계'라고 정의해 주십니다. 너와
일등능제 천년암 (一燈能除 千年暗) 한 등불이 능히 천년의 어두움을 없애고일지능멸 만년우 (一智能滅 萬年愚) 한 지혜가 능히 만년의 어리석음을 없앤다.물질세계에 빛이 없으면 암흑(暗黑)이고 현실적 괴로움이고 죽음이라면, 정신세계에 지혜가 없다면 무지(無知)이고 어리석음이며 또한 정신적 괴로움이다.그러한 상황이 아무리 오래되었다 하더라도 등불이 켜지는 순간 그 공간에 어두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밝아지고 환해지며, 사람에게 지혜가 생기는 순간 그간의 무지와 어리석음이 문득 사라지고 희망과 기쁨과 행복이 생기는 것이다.불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한일서 4:11)그 어떤 믿음도 사랑이 없다면 자신만의 신념 안에 갇힌 독선과 아집이 될 것이고, 그 어떤 소망도 사랑이 없다면 자신만을 위한 욕망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요한일서 4:8)라고 말씀했듯이 아무리 교회의 겉모습을 가졌더라도 사랑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거짓과 가짜일 뿐입니다.하나님은 모두를 살리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중국 남사에서 유래된 문구로 '송계아'라는 고위관리가 퇴직 후 살집을 알아보는데 여승진이라는 집 옆에 백만금이면 살집을 천만금을 주고 샀다. 궁금해 여승진이 묻자 백만금은 집값이고, 구백만금은 좋은 이웃과 가까이 지내는 사랑의 대가라고 했다.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는 제2의 자신이다'라고 했고 옛말에 '그 사람을 알려거든 주변 그 친구를 보라'고 했다. 친구는 나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존재이기에 친구를 사귈 때 신중해야 한다.끼리끼리 어울려 놀아서 유유상종이라 하지 않는가. 좋은 친구는 배
코로나19의 재확산이 두렵습니다. 그동안 온 국민이 협력하여 방역에 힘쓴 덕에 코로나19가 조금 잡히나 싶더니 몇몇 무리의 부주의로 그 확산 속도가 무섭기까지 합니다.예전에는 국가적 재난에 종교인들이 앞장서서 희생과 헌신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들이 많았습니다.그런데 종교가 오히려 재난 전파의 온상이 되고 있으니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화해와 구원에 앞장서야할 종교인이 돈과 물질의 노예가 되어 낮도깨비처럼 온갖 감언이설로 사회를 어지럽히고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마음을 바르지 못하게 사용하면 모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