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 지났습니다. 다만 구태의 관습 정도로 여겨 제사를 올리지 않는 가족들이 점점 늘어난다고 하니 우려스럽습니다.소태산 대종사는 '제사는 열반인에 대하여 추모의 정성을 바치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그 의식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속세의 업장을 녹이고 헌공금으로 공도사업에 활용하여 미래의 명복을 증진하고 사회의 발전을 돕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재세 당시 공덕을 추모하며 자손 대대에 그 근본을 찾게 하여 후생의 보본사상을 권장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우리 선조들이 명절에 제사 의식을
▶원각도량하처(圓覺道場何處)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時) '석두보택(石頭寶澤) 선사''깨달음의 도량, 행복한 세상은 어디인가? 지금 생사가 있는 이곳, 당신이 발 딛고 있는 이곳이다!'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와 현실적인 상태를 잘 살피지 않고 미래와 미래적 상황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에 현재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살피지도 누리지도 못하면서 미래를 향해서만 관심하고 에너지를 보내며 끝없이 갈증하며 살고 있다.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아주 실존적이고 현실적이고 현재적이다. 그러므로 과거에는 더욱 관심하지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20~21)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하신 말씀은 너희 마음 안에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적대자요, 위선자이며 결국 나중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데 앞장섭니다. 그렇게 불신앙의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임할 수가 없습니다.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君子 '以文會友 以友輔仁'(군자 이문회우 이우보인) '논어 안연 편'증자가 한 이 말은 '군자는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 자기의 부족한 인을 메운다'는 뜻이다. 세상을 살아가며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지만 친구를 잘 사귀는 일도 스승 못지않게 중요하다.공부하는 사람은 글을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고, 그 친구로 인해 인격적 감화와 지적 자극을 받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끊임없이 누군가와 만나면서 산다. 그래서 좋은 친구를 만나 어울려야 하는데 좋은 친구 만나기가 어렵고 사귀
소태산 대종사는 시국을 바라보면서 병든 사회임을 직시하고 처방으로 올바른 정신을 함양해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바른 정신이란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를 말합니다. 두렷하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모습이 맑고 오전하여 어디에 치우치지 않고 확실하고 분명하다는 뜻이며 분별성과 주착심은 성질을 판별하여 고착된 마음을 말합니다.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경계와 오욕번뇌에 물들어 본래 정신을 흐리거나 오염되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른 정신을 회복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원하는 바로 이끌기 위한 필연적 도구가
'네 자신을 등불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으며, 가르친 법을 등불로 삼고 가르친 법을 귀의처로 삼아라' 「유교경」석존께서는 자신을 믿고 따르라 하지 않으셨다. 믿고 따를 것은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석존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라 하셨습니다.또 석존께서 가르치신 바른 법도 앞세우지 않고 가장 먼저 각자 본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앞세우라 하셨습니다. 석존의 위대함과 불교의 위대함을 느끼게 하는 말입니다.불교는 인간을 위시한 만물이 자신들의 삶과 존재에 주인 되게 하는 삶을 위한 길입니다. 모든 존재들의 주
▶朽木不可雕也 糞土之墻 不可圬也 (후목불가조야 분토지장 불가오야) ‘논어 공야장 편’"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거름흙으로 쌓은 담장은 흙손질할 수 없다." 이 말은 공자께서 제자인 재여가 한참 일해야 할 시간에 낮잠을 자자 꾸짖으며 한 말씀이다.재여는 공자의 제자 중 가장 말재주가 뛰어났으나 행실이 이에 미치지 못해 공자께서 주의를 수차례 줬으며, 재여의 말로 인해 공자께서도 당신 잘못을 고쳤다고 말씀하셨으니 거듭 깨우친 것이다.재여는 스스로 통솔하지 못하고 나태했다. 옛 성인은 일찍이 게으름과 편안히 지내는 것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욕심이 많은 사람은 누구인가? 제자들은 돈이 많은 사람, 명예가 높은 사람, 돈과 지위를 다 가진 정반왕을 답하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참 진리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진리를 구하면 삼세가 다 자기의 소유가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보고 알고 경험하는 모든 것은 변합니다. 변한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소멸하는 것입니다. 그 이치를 온전히 아는 사람은 구하는데 정신을 팔리지 않겠지요.마치 범을 사냥하고자 하는 사냥꾼은 장끼나 토끼를 사냥
▶거친 말은 예리한 칼이요, 탐욕은 무서운 독약이며, 성냄은 치솟는 불꽃이며, 무명은 칠흑 같은 어두움이다. '천청문경(天請問經)'어두운 상태에서는 나와 대상과 상대가 외형적으로 서로 분리되어 있어 상대 없이도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그 바탕에서 자신만을 위하는 마음이 심화되었을 때 욕심으로 발전하며, 그러할 때 자신의 마음의 상태가 얼마나 모질어지고 독해지고 있는 지를 알려주고 있다. 또 그러한 욕심이 이루어지지 않고 성취되지 않을 때 반발하여 나타나는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의 상태를 성냄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디모데전서 2:4)소설 '순교자(작가 김은국)'는 6·25 전쟁 발발 전후의 이야기이다. 공산당에 의해 붙잡혀간 14명의 목사 중에 죽임을 당한 12명은 순교자, 자유민주주의의 용사로서 인정받고, 살아 돌아온 2명은 배교자, 비겁자가 됩니다. 한 명은 정신이상자로 나머지 한 명 신 목사는 산속에 숨어 비루하게 살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 현장에 있던 북한군 장교가 잡히자 12명의 목사는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다 죽게 되었고, 신 목사만이
▶大丈夫當容人 無爲人所容(대장부당용인 무위인소용) 「명심보감 정기편」"대장부는 마땅히 남을 용서할지언정 남에게 용서를 받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인격을 갖춘 사내라면 대인관계에 있어 책을 잡히지 말아 남을 용서하는 입장이 되어야지 졸장부가 돼 남에게 용서받는 한심한 처지가 되어서는 안 됨을 뜻한다.여기서 맹자가 말하는 대장부의 정의를 살펴보면 천하의 넓은 거처에 살며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대도를 행하여 뜻을 얻었을 때는 그 도를 백성과 더불어 따르고 뜻을 얻지 못하였을 때는 혼자 그 도를 행하여
식물의 생존을 위해 뿌리의 역할은 절대적입니다. 뿌리는 땅 위에 줄기와 잎이 잘 서 있을 수 있도록 지탱해 주고 땅속 영양분을 흡수해 성장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사람에게도 뿌리의 역할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정산 송규 종사는 "사람의 뿌리는 마음이라, 무엇보다 먼저 마음공부에 힘써야 훌륭한 인격을 이룰 수 있나니, 이 마음공부를 하지 않고 어찌 지혜와 복의 결실을 바라리요." 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은 그 뿌리가 건강하고 단단해져서 감정과 어려운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중심을 잘 잡게 됩니다.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외식제연(外息諸緣) 내심무천(內心無喘) 심여장벽(心如障壁) 가이입도(可以入道) 밖으로는 여러 인연(因緣)을 끊고, 안으로는 이 생각 저 생각으로 헐떡거리지 않으며, 마음이 철벽같이 흔들림이 없어야 가히 도(道)에 이른다.' 인간 존재의 구성요소는 물질 환경과 몸과 호흡과 생각과 마음, 정신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 자신의 본질은 물질 환경도 아니고 몸도 아니고 생각도 아니며 마음, 정신 자체이다.도(道)의 완성인 수도 생활의 최종적인 소재와 핵심은 내면적 소재인 마음, 정신이고 생각까지 뛰어넘어 더 깊은 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장 8절)예수님의 승천과 재림은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을 통해 실감할 수 있습니다. 결혼 승낙을 위하여 신랑이 신부의 집에 찾아가서 절차를 거쳐 결혼이 성사되면, 거기서 신방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신랑은 자신의 아버지 집으로 되돌아가며 나중에 다시 찾아와 결혼식 잔치를 벌이고 신혼집으로 데리고 갈 것을 신부에게 약속합니다. 그리고 약속의 증표로 예물을 줍니다. 신랑은 그때부터 아버지의 집에
▶'修身而後齊家 齊家而後治國 天下之通義也'(수신이후제가 제가이후치국 천하지통의야) '목민심서 율기편'자기를 수양한 뒤에 집안을 다스리고, 집안을 다스린 뒤에 나라를 다스림은 천하의 공통된 원칙이다. 한 고을을 다스리는 것은 마치 한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으나 제 집도 다스리지 못하고 어떻게 한 고을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목민관이 집안을 다스리는 데는 몇 가지 지켜야 할 요점이 있다. 임지에 데리고 가는 가족의 숫자는 규정대로 지켜야 하고, 꾸미는 집이 검소해야 하며, 먹는 음식은 소찬이어야 하고, 규문
5월은 부처님이 세상에 탄강한 날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3000년 동안 인류에게 지혜의 등불을 밝혀주심에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현의 삶과 말씀을 인류가 지향해야 하는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처님의 탄생은 정신문명의 탄생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원불교 3대 종법사를 역임한 대산 김대거 종사는 부처님의 원만한 10대 인격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서원이 지극히 크심이요, 둘째는 대자대비하심이요, 셋째는 지극한 정성을 쉬지 않으심이요, 넷째는 지공무사하심이요, 다섯째는 언행일치하심이요, 여섯째는
'若有欲知佛境界 當淨其意如虛空 遠離妄想及諸取 令心所向皆無(약유욕지불경계 당정기의여허공 원리망상급제취 영심소향개무애/만약 누구라도 부처님의 경계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마음을 허공과 같이 하여서 망상과 모든 집착을 멀리 여의고 마음이 향하는 곳 걸림이 없도록 하라.) '화엄경 여래출현품 보현보살 게송'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나 천주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은 이름만 다르지 한 분이라는 것은 종교를 조금 안다면 누구도 안다.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님이 기독교, 천주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하느님이라는 사실은 전문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디모데전서 1:16)선생이 제자에게 가르치며 그 가르침에 미치지 못한다고 멸시하면 발전할 힘을 잃게 됩니다. 부모의 바람에 미치지 못한다고 자녀를 소홀히 하면 그 역시 성숙할 힘을 잃게 됩니다. 부모는 자녀를 보살피고 가르치며 성숙하도록 기다려줍니다. 선생도 제자에게 그렇고, 특히 하나님도 모든 인생에게 그렇습니다.하나님께서 믿음의 삶이 성숙할 수 있도록 오래 참고 기다리시며
▶江山易改 本性難改(강산이개 본성난개) 이 시를 직역하면 강산은 바뀌기 쉬워도 본성은 고치기 힘들다는 것이다. 즉, 사람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성품이 유연해져야 하는데 반대로 송곳처럼 뾰족해지는 경우가 많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일갈했다. 그의 친구들이 "그럼 너는 자신을 아느냐"고 되물었을 때, "나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나 자신을 모른다는 것은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너 자신을 알라는 질문의 내용은 모르고 있다며 꾸짖는 말이고 빨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보면서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지난 세월 인류가 전쟁의 뼈저린 역사를 통해서 얻은 교훈과 평화를 지키고자 한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나의 삶이 누군가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고통은 더 이상 벌어지면 안 되는 일이 아닐까요. 우리가 우리 삶을 지키고 서로의 삶을 지킬 수 있는 길을 생각해 봅니다. 그 길을 원불교에서는 '공생공영(共生共榮)'이라고 합니다. 공생공영은 하나의 동포로서 서로 의지하고 공급의 관계로 우리의 삶과 생명이 유지됨을 알고 행하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