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원불교의 화두는 '진화'와 '혁신'입니다. 그 중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진화'입니다. 생태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최재천 교수(이화여대 에코학부)는 "진화의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인간의 삶의 어느 것도 의미가 없다."라고 단언합니다. 개인의 성장은 주변 환경에서 선택 받아서 성장하는 경우와 스스로 선택해서 성장하는 경우로 크게 나눠볼 수 있겠습니다.그리고 성장은 생로병사 또는 흥망성쇠의 인과적 고리 속에서 세대를 통해 전해져 남겨집니다. 그 결과 내적 자각을 얻게 됩니다
새해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새로운 다짐으로 새롭게 시작해보자는 뜻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가 바뀌는 시기에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올 해에 이루고 싶은 희망을 발원하고 계획들을 생각합니다.스님들이 출가하면 처음으로 배우는 경전 중 '초발심자경문'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삼일수심(三日修心)은 천재보(千載寶)요, 백년탐물(百年貪物)은 일조진(一朝塵)이다.' 사흘 동안 닦은 마음은 천 년의 보배이고, 백 년 동안 탐한 물건은 하루아침에 티끌이 되고 만다라는 의미입니다.새롭게 세운 다짐과 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로마서 8:37)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통해 이 땅에 적극적으로 드러났고, 삶을 통해 풍성해졌으며,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온전히 이루어졌습니다. 그 사랑은 더 이상 움츠러든 짝사랑이 아니라 우리에게 확실하게 고백되고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주어진 사랑입니다.이제 그 사랑의 고백을 받은 우리들의 반응이 남았습니다. 우리도 사랑한다고 대답하고 사랑으로 마주하면 아름답고 영원한 최고의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 사랑의 관계에도 크고
어렵고 힘든 시간은 지나가고 기대와 희망찬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 겪었던 어려움은 마지막 일몰과 함께 사라지고 희망만 가득하길 기원해봅니다.지난해 우리를 힘들게 한 이유를 찾아보면 불평등에서 나타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께서는 사회 진화의 도인 사요실천으로 불평등을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사요는 자력양성 지자본위 타자녀교육 공도자 숭배입니다.2023년 새해 벽두 전산 김주원 종법사께서도 강자약자 진화의 도로써 평등세계를 건설하자고 하였습니다. 강자는 영원한 강자가 되고, 약자가 진화하여 강자가 되기 위해
▶人無遠慮 必有近憂(인무원려 필유근우·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가까이에 근심이 있다) -논어 위령편-멀리 생각한다는 것은 목표를 말한다. 연초에 사람들은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을 다짐하며 출발은 거창하다. 목표가 분명하다고 해서 장애가 없는 것은 아니며 현실은 언제나 냉혹해서 시작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간 관리를 잘하려면 약속, 다음 약속을 잡으라는 말이 있다.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끝내면 성취감의 기쁨 때문에 마음이 풀리기 십상이다. 한데 다음 약속이 잡혀있으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다.
'청산 속에 사람의 머리는 희어지고(靑山人白髮) 세월은 유성처럼 흘러갔어라.(歲月如流星) 덧없는 인생 좋은 곳이 어디인고(浮生何處好) 천지간 어디에도 보이지 않네.(天地亦冥冥)'청허 휴정스님의 시, '세상을 탄식하다(嘆世)'입니다. 한 해가 속절없이 왔다가 가고, 우리는 또 한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청허 스님께서도 검은 머리가 어느덧 희어지고, 새로 시작한 세월이 유성처럼 흘러갔다고 한탄했습니다. 스님은 수행자답게 세상사에 일희일비 하기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본질을 보라고 당부하고 계십니다.2
사람이 강아지를 너무 좋아해서 방안에 들여 자식처럼 키우며 함께 살아가는 모습은 요즘엔 익숙합니다. 옛날 강아지들에 비하면 지금 반려견들은 마치 천국에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그런데 사람이 강아지를 너무 좋아한다고 해도 옛날 강아지들처럼 마당에 사는 그 자리에 가서 함께 살 수는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정확히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 세상에 와서 살게 되었다면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생각해 보셨습니까? 물론 하나님이시기에 불가능한 일은 없지만,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사람이 사는 곳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았다면, 사람이 강
▶吏事必考其功 不考其功 則民不勸(이사필고기공 불고기공 즉민불권) '목민심서 이전편'직역하면 "아전들이 하는 일도 반드시 그 공적을 따져야 한다. 그 공적의 우열을 가리지 않으면 백성이 힘써 일하지 않는다."는 말이다.사람을 통솔하는 법은 일을 잘하면 격려해 더욱 잘하게 하고, 잘못하면 징계하는데 달려있다. 공이 있는데도 상응한 상이 없으면 힘써 일하지 않고, 죄가 있는데도 벌을 주지 않으면 불평이 따름은 당연지사다.권면하지도, 징계하지도 않으면 모든 백성이 게을러지고 일이 글러지게 되는데 벼슬아치와 아전들도 다를
어느덧 2022년도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작년에는 코로나 여파로 전 세계가 패닉 상태였다면 올해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속출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안타깝게도 태풍 피해와 아파트 건설현장 붕괴사고, 이태원 참사 등 우리들의 마음을 어둡고 아프게 한 사건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또한 이로 인해 고물가에 저 성장 사회, 저 출산과 인구 고령화에 따른 사회 성장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시점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갈 것입니다. 위기는 언제나 존재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하지도 못한 위기는
불교에서 쓰는 말에 회향이란 말이 있습니다. 회향한다는 말은 보편적으로 끝났음을 의미하는데 불교에서 쓰는 '돌려서 향하게 한다'는 뜻의 회향은 끝이 아닌 시작을 의미합니다.지난 과정과 시간을 마무리하여 끝내는 것이 아닌 마무리하며 발생한 작은 공덕이라도 이웃과 나누고, 남보다 더 많이 가졌다면 적게 가진 사람과 조건 없이 나누어야 한다는 자비의 시작을 의미하는 불교의 참뜻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2022년을 마무리해야 하는 이 시기에 그 뜻을 되새겨 봐야 할 말인 것 같습니다.스스로 지은 공덕을 이웃과 나눠 함께 선업
▶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누가복음 5:32)언젠가 인생이 하나님 앞에 설 때, 마귀는 우리들의 모든 죄에 대하여 기소(정죄)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재판관이십니다. 어느 누구도 그 재판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히브리서 9:27). 그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로마서 6:23)그런데 그 자리에 변호사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시편 9:4, 로마서 8:33~39). 예수님은 우리 죄의 값을 대신해서 치르신 분입니다. 하나님만이 그 죄의 값을 대신 치를 수 있습니다. 그래
158명이 압사한 이태원 참사는 모두에게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OECD 가입국 중에서도 안전도가 5위 안에 드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참사가 발생하리라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잠깐 친구 만나러 나간 딸이 주검이 되어서 돌아왔을 때, 어제까지 함께 웃으며 밥 먹자던 친구가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을 때 남겨진 사람들이 겪을 고통은 가히 짐작도 안 됩니다. 그러면서도 법질서가 갖는 위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원불교에서는 근원적 은혜로 법률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근원적 은혜란 내 생명의
▶子曰 晏平仲 善與人交 久而敬之(자왈 안평중 선여인교 구이경지) -논어-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평중은 남과 사귀기를 잘 하는구나. 사귄지 오래돼도 공경하니." 안평중은 제나라 대부였으나 키가 작아 외모는 볼품이 없어보였다. 그가 초나라에 사신으로 간 적이 있는데 초나라 관원이 사저에 들 때 개구멍으로 들라 했다.이때 당당히 대문으로 들어가 왕을 대했을 때 왕은 이를 업신여겨 "제나라는 인재가 그리도 없어 너 같은 못난이가 뽑혀 왔단 말인가"하고 얕잡아 말을 건넸다. 이에 안평중이 "우린 사신을 보낼 때 상대방 나라 실정에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 이태원에서 발생한 핼러윈데이 참사는 처참한 희생이 있었고, 지옥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분들은 우리의 부모였고, 형제였으며 자식이었습니다. 숙세부터 동고동락을 거듭해오던 지중한 인연들이었습니다. 하룻밤에 삶과 죽음이 갈리니 평생의 영원한 이별임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사바세계에서의 삶이 무상함을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지금 온 나라가 슬픔에 휩싸여 있는 가운데 국민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도 4일부터 이틀간 서울 조계사에서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종단 차원의 추모법회를 봉행합니다. 광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세아 6:3)동네에 트럭 한 대가 지나가며 방송을 합니다! "개 삽니다. 염소 삽니다. **리 고추 삽니다." 다 알아 듣겠는데 무슨 고추라고 하는 지 정확하게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희나리'라는 말이 생소했기 때문입니다. 외국어(영어)도 그렇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도 그렇습니다! 아는 만큼 들리고, 깨닫고, 믿을 수 있습니다.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알듯이, 부부가 서로를 알듯이 실재의 경험과 친밀함으로 아는 것
'일을 만들면 일이 생기고 일을 줄이면 일이 준다'는 뜻이다, 무슨 일이든 일을 적당히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속뜻은 간단치가 않고 아리송해 똑 부러지게 정답이 이렇다고 속단하기 어렵다. 이 문구가 재미있는 것은 거꾸로 읽어도 음이 똑같아 눈길이 쏠린다.오늘날 우리의 삶은 복잡다단해서 정신이 혼미하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더 헝클어져 미니멀한 삶에 대한 동경이 우리에게 다가온 느낌이다. 더 좋은 학벌로 더 큰 주택에서 사는 게 잘사는 것인지 질문을 함과 동시에 줄이고 빼고 버리는 것이 그 해답이라고 일러준다.필자는 1
요즘 뉴스를 보고 있으면 대통령을 중심으로 여당과 야당의 공방이 참으로 치열합니다.타인의 잘못을 드러내서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고 있는 양태가 과거 붕당정치를 상기하게 하고 있으며 정쟁의 대상이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으로 말미암고 있으니 현 대통령에 대한 관심도가 지나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일국의 지도자로서 처신하기가 참으로 어렵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처세에 대해 "처세는 유한 것이 제일 귀하고(處世柔爲貴), 강강함은 재앙의 근본이니라(剛强是禍基). 말하기는 어눌한 듯 조심히 하고(發言常欲訥), 일 당하면 바보
내 몸, 마음, 느낌이나 감정이 왜 이런지 통찰하고 올바른지 챙겨야 하는데 이것을 불교에서는 팔정도 중 하나인 '정념(正念)'이라고 한다.'왜?'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고 답을 찾는 '내생각 바라보기'가 필요하다. 정념을 닦아야 내가 옳다고 하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인지, 옳지 않다고 생각한 상대방의 생각이 정말 틀린 것인지를 통찰하는 힘이 생긴다.이렇게 생긴 힘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튼튼한 기초가 되고, 서로에 대한 이해는 불필요한 갈등과 다툼을 대폭 줄여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요즘 우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에베소서 2:14)2000년 전의 초대교회 안에도 유대인과 헬라인의 갈등과 분열이 심각했습니다. 엄청난 결단과 은혜와 믿음이 아니면 예수를 믿기 힘들 당시의 교회 안에서도 스스로 선민으로 여기는 유대인의 자존심은 이방인들을 무시했고, 헬라인은 스스로를 지혜자로 높였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이유와 원인으로 개인과 개인, 공동체와 공동체 간 갈등과 분열을 이어가고 있습니다.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川澤者 農利之所本 川澤之政 聖王重焉(천택자 농리지소본 천택지정 성왕중언)' - 목민심서 공조6조 중 수리시설-"내와 저수지는 농사이익의 근본이므로 옛날 훌륭한 임금은 내와 저수지에 대한 정사를 소중히 여겼다." 목민관의 직무 가운데 농사에 힘쓰는 일보다 더 급한 것이 없으며 농사의 근본은 물을 다스리는 일이다.훌륭한 관리는 몸소 농사를 지으며 전답과 도랑을 다스렸고 훌륭한 관리의 뛰어난 업적은 모두 수리에 있다.조선시대 허만석이 연기현감이 되어 큰 제방을 만들고 도랑을 뚫어 천여 경(頃·1경은 7800여 평)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