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농산물가격의 하락세가 뚜렷하다.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인 FTA의 본격적인 발효, 작황과 기후여건, 소비감소, 최근 진행중인 한·중FTA 영향 등이 그 원인인 것 같다.농산물가격의 하락은 농가소득의 감소로 연결되고 농가소득의 감소는 곧바로 농촌경제의 파탄과 직결된다. 농산물에는 부가가치세와 소득세 등이 부과되지 않는 점까지 고려하면 가격하락의 폭은 심각하며 실질적인 농가소득은 마이너스 수준이라고도 볼 수 있다.농산물을 수확하기까지 투하되는 인건비, 농자재비, 농약비 등을 판매액에서 공제하면 부가가치가 '0'이거나 마이너스가
50대 초반의 어느 중견기업 사장님이 있다. 이른 나이에 사업을 일구고 지금은 경제적으로 남부러울 것 없이 이루어 놓았는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봤고 그 속에서 즐길 수 있는 것도 충분히 해봤어요. 돈도 어느 정도 있고 노후 걱정도 없어요. 다른 사람들이 저를 보면 아쉬울 것이 없다고 부러워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지 않거든요. 요즘은 통 예전처럼 재미를 느낄 수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요. 이런 이야기를 남들에게 꺼내지도 못해요. 배부른 소리한다고 눈총만 받으니까요' 남들은 50이 넘어서도 하루
지난주 현충일이었다. 읍내 모 학교에 근무하는 남편이 학생들을 인솔하여 추모식에 다녀온 후 물었다. "현충일의 의미가 뭔가요? 현충일인데 임진왜란이나 일제시대에 싸우다 희생된 분들은 왜 추모하지 않고 한국전쟁과 베트남 참전용사만 하지요?"1951년 전쟁 중에 추모식을 하고, 1956년에 기념일로 지정하였다는 자료를 찾아 알려주자 '그런가?' 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하는 것이었다. 추모식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당하신 순국선열(주로 한국 전쟁 시 국군 희생자)에 대한 묵념'과 '베트남 참전 용사' 추모사를 들으며 마음
6·4 지방선거가 코앞에 다가왔다. 선거는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을 구현할 최적의 제도이며 대의제 정치제도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제도이다. 선거를 통해 공무를 담당할 일꾼을 선출하게 되고 그러한 일꾼들은 우리들 모두와 관련된 공통의 문제를 해결할 의무와 권한을 갖게 된다.그러므로 유권자들로서는 어떠한 일꾼을 제대로 뽑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후보들이 내세우는 공약과 그들이 살아온 경력 및 과거의 행태 등에 대해서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위와 같이 선거라고 하는 제도는 우리들 미래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
6월이다. 오늘따라 쌍둥이 손자와 아이슈타인 박사를 이야기하고 싶다. 아니, 쌍둥이 손자와 아인슈타인 박사가 무슨 관계, 무슨 연관이 있느냐? 그렇게 고개를 가우뚱하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나의 이야기를 찬찬히 듣다보면 수긍이 갈 것이다.먼저 우리집 쌍둥이 손자에 관한 이야기다. 둘째 며느리가 하나도 아니고 두 녀석, 그러니까 아들 쌍둥이를 한꺼번에 둥글둥글 낳았지 않았는가! 가까스로 세 살을 넘어서고 있는데 이 녀석들이 얼마나 어여쁘고 귀여운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둘째 아들과 둘째 며느리가 맞벌이를 하고 있
유가족들과 함께 아파하고 울어주지는 못할망정, 유가족들의 가슴을 다시금 칼로 도려내는 잔인한 망언, 망동들을 서슴없이 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러는 것일까?전문가들에 의하면 공감능력이 없어서 그런다고 말한다. '사람이 다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라는 말이 있다. 사람다움이란 무엇일까? 물론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지만, 사람다움의 가장 중요한 지표 중에 하나는 바로 공감능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옆에 누군가가 고통스럽고 괴롭고 아프고 슬퍼하고 있다면, 함께 그런 마음들을 느끼고 나눌 수 있는 것, 이것이 공감
이번 달에는 글을 쓰기가 너무나 힘이 듭니다.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는 이때에 먹먹한 가슴을 견디기 어려워 다른 주제로 글을 썼습니다만 마음에 차지 않아 덮어두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다시 글을 써서 오늘 메일로 보냈으나 마감이 임박한 시간에 떨리는 손으로 '발송취소'를 하고 새로이 펜을 듭니다. 이 참담함을 가슴에 담고 어떻게 선생 노릇할 수 있을지 앞이 캄캄합니다. 목 놓아 울며 참회하고 견딜 수 없는 분노로 하늘을 향해 고함이라도 치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4월 16일을 어떻게 잊을까요. 힘든 공부에서 잠시
4·16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안겨주었다. 모든 것이 잘못되었고 제대로 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정부의 재난안전관리시스템은 이익집단인 선주협회나 선박회사에 포획되어 사고예방을 위한 사전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였고, 사고 후에도 실질적인 구조활동이 이뤄진 것이 전혀 없었으며 단지 시신인양작업만을 물때에 맞춰 그때그때 진행한 것이 전부였다. 가슴 아픈 얘기는 그만 두고 사후 전개될 법적인 문제들에 대해 간략히 짚어보고자 한다.우선, 선장과 승무원들의 대한 형사책임과 관련하여 현재 목포지청에 사무소를 차린 검경합동수사
이번 주 [해남광장]은 지난 4월 16일 오전 세월호에서 숨져간 넋들에게 바치는 초혼시(招魂詩 : 죽은 사람들의 혼을 부르는 노래)로 바칩니다. 해남진도 남도가락으로.다시라기-진혼, 세월호 넋들 김준태 오메 떼죽음 당한 우리 새끼들 어째야 쓸거냐 어째서야 쓸거냐 망망대해 파도의 무덤 속에 갇혀 훨훨 날아오지 못하는 넋, 넋들아 떼죽음 당한 배달겨레 자손들아 정녕코 솟구쳐 올라라 제비들처럼 정녕코 하늘 저 높이 날아올라라 오메 떼죽음 당한 우리 새끼들아 머언 수평선 하얀 칼날로 자르듯 연꽃 송이송이 이승에 띄우듯이 이제는 손끝 하나도
얼마 전 온 나라가 울었고, 모든 국민의 마음이 미어졌다. 생떼같은 우리 아이들이 침몰한 배에서 나오지 못했다. 이렇게 참담할 때가 어딨을까? 아무런 죄없는 아이들이 이렇게 불의의 사고로 어이없이 희생당해야 하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국민들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시스템에 분노가 치밀어 오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하늘도 무심하고, 하늘이 야속하기 그지없다. 오늘 우리는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면서 살아간다. 게중에는 우리를 너무 안타깝게 만드는 부당하고 무고한 죽음도 많다. 죽은 이들은 말이 없다. 그러나
1894년 갑오년에 전라도 고부에서 전봉준 주도하에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올해로 두 갑자가 되었다. 최제우가 동학을 전하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이단의 죄목으로 처형당한 때가 1864년이니 최제우 사망 후 30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동학교도라는 이유만으로 감금, 고문, 재산을 약탈하고, 마을에서 쫓아내자 이를 견디지 못하여 '최제우의 죄를 사면해 주십사'하는 '교조 신원 운동'을 벌이는 것으로 처음에는 시작되었다.동학을 금한 이유는 유교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서학과 동일하다는 것이었다. 동학의 주문에 '시천주 조화정
"노마드? 잡노마드? 노마디즘?" 요즘 한국사회에 널리 퍼지고 있는 말이다. 노마드(nomad)라? 이 말은 '유목민' '떠돌이'라는 말로 풀이된다. 그럼 잡노마드(job nomad)란 무슨 말일까? 이 말은 고정직업을 갖지 않은 혹은 갖지 못한 '떠돌이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럼 노마디즘(nomadism)란 또 어떤 말인가? 어느덧 철학적 어휘로 급부상한 이 말은 '유목주의'이란 말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사실을 알고 들어가서 그 뜻을 풀이해보면 노마드, 잡노마드, 노마디즘은 오늘의 한국사회를 극명하게
먹고 사는 것과 관련된 경제는 삶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단히 기본적인 문제로서 그것이 결여되면 삶의 근본이 흔들리게 된다.오늘날은 굶어죽을 직접적인 위험으로부터는 벗어났지만 생산력의 급속한 발전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인류는 굶주림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생명을 지속하기 위한 먹거리를 확보하는 것과 자손번식의 문제를 해결키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었을 것이다. 현재 우리는 문명화된 사회에 살고는 있으나 우리들 마음속 깊은 곳에는 옛날부터
대한민국에서 농촌은 어떤 의미일까? 농촌지역인 해남은 어떤 의미일까? 도심지역에 비교해 볼 때, 여러 가지 면에서 낙후되어있고, 소득도 많이 떨어지고 한마디로 먹고 살고 생활하기 열악한 지역(?)이 아닐까 한다.아마 대부분의 국민들의 생각에 농촌은 고생은 더 많이 하고 거기에 비해 소득은 현저히 낮은 지역이라는 인식이 많을 것 같다. 그래서 다들 농촌에 희망이 없다고, 농사가 전망이 없다고 말들 한다. 게다가 외국의 값싼 먹거리까지 거침없이 수입되어서, 그렇지 않아도 힘겨운 농촌살이를 더욱 힘들게 한다. 정말로 어떻게 농촌을 삶의
잔인한 3월이다. 입춘, 우수, 경칩까지 순서대로 절기들은 지나가며 봄이라고 말하는데 따라온 바람 끝은 '어디 한 번 혼나 봐라.'는 듯 맵다.3월은 전국의 학교들이 몸살을 앓는 달이다. 3월 3일. 아마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대부분의 학교에서 입학식을 했을 것이다.동료 여직원이 아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혼자 있게 할 수가 없어서 입학식 끝나고 피아노학원에 등록하였다 한다.하교갈 시간에 맞추어 학원차량이 교문 밖에서 기다렸다가 아이를 태워 간다고 하였다. 그런데 다음 날 일이 벌어졌다. 아이가 차를
사람은 태어난 이상 반드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살다보면 깜박깜박 잊어버리곤 하는데 일상생활이 바빠서도 그러지만 생각하기 싫어서 그러기도 하다. 죽어야만 되는 인간으로서는 죽음이 두렵고 죽고 난 뒤의 세계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인간에게 영혼은 존재하는 것인지, 존재한다면 죽음과 함께 없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영혼만 따로 남아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것인지 등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다.영혼의 존재여부나 사후세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영역이어서 추측만 난무할 뿐이다.죽음과 관련된 인간의 고민에 대해서는 종교가
미국독립 200주년을 기념한 '고문서비밀해제'로 120년 만에 햇볕을 보게된 '시애틀 인디언 추장'의 연설문(장문의 편지이기도 함)은 언제 읽어도 감동을 준다.이 문건은 1854년 미국 대통령 피어스에 의해 파견된 백인 대표자들이 이 땅(오늘의 시애틀 지역)을 팔 것을 강압적으로 요구하자 그에 대한 답글로 쓰여진 연설문이다.아, 이 얼마나 당당한 호소문인가. 당시 이 글을 편지로도 받아 읽은 피어스 대통령은 추장 시애틀의 편지에 감복한 나머지 이 지역을 그의 이름을 따서 '시애틀'이라고 명명한다. 이 도시는 태평양 연안에
지난 1월에 베트남, 캄보디아지역으로 안식년 문화탐방을 다녀왔다. 여행기간 해당지역의 여러 문화유적들과 수려한 경치를 눈으로 직접보고 느낄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그런데 여행의 목적이 단지 이국적인 풍경을 관광하는 즐거움을 얻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얻게 되는 가장 소중한 경험은 역시나 그곳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게 아닌가 한다.특별히 이번 여행을 통해 가장 인상깊게 남았던 것은 캄보디아 씨엠립지역의 앙코르유적을 돌아볼 때였다.처음에는 유적들의 웅장함이 눈을 사로잡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민행성과 함께하는 글쓰기캠프를 위해 개학하자마자 글을 한 편씩 쓰게 했다. 교과서 진도도 다 끝났는지라 개학 후에는 좀 느슨하게 수업하리라 기대했던 아이들이 '이게 웬 날벼락인가?' 하는 표정이다.하지만 난 아이들보다 한 수 위다. 글쓰라는 말에 경악하여 아이들이 불평불만을 말하기 전에 그 타이밍을 빼앗아야 한다. 용감한 아이가 먼저 불만을 쏟아내면 그 다음은 걷잡을 수 없이 봇물처럼 불만이 쏟아진다. 조금이라도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 그땐 상황 끝이다. 득의양양해진 아이들이 선생님도 양심을 가져보라며 벌떼처럼 공격하면 한발 물
인생사에 있어 성(性)에 관한 문제만큼 짜릿하고 흥분되는 것도 없을 것이다. 남녀간의 성은 인류생활의 기본단위인 가정의 기초이며 쾌락의 원천이면서도 오늘날에 와서는 거래의 수단 또는 각종 범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남녀간의 자유롭고 건전한 사랑과 교제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인격을 완성시키며 행복의 원천이 된다.그러나 필자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되돌아보면, 우리의 가정과 학교 및 사회는 남녀간의 교제와 사랑에 대해 대단히 폐쇄적이고 부정적이었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다.이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초등학교 5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