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몇 가닥 잡아 그대에게 편지를 씁니다.뒤뜰 샛노란 산수유도 같이 넣어 씁니다.봄비 오는 소리 노래처럼 들리면내 안의 뜰에도 음악처럼 봄비가 옵니다.봄비 오는 날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친구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합니다.봄기운을 느낀 새들의 날갯짓이 어찌나 힘차던지지난 겨울에 내렸던 잔설이 며칠 전에 다 녹았지요.이제 곧 달려올 완연한 봄에는그대가 더욱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그대의 봄 한복판에 하얀 한 떨기 목련꽃으로 피겠습니다.봄비가 너무 좋아 봄비로 편지를 쓰면그대의 아름다운 미소로 봄편지를 받아보겠지요.다음에 봄비가
푸르른 긴 가지 늘어뜨려 송화가루 날리며드높은 하늘 향해 솔잎 향기 뿜어내고오가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내려 보면서군청 앞마당에 위풍 당당히 우뚝 선 수성송수백 년 동안 새 찬 비바람 나 홀로 이겨내고 북풍한설 모진 한파 한마디 불평 없이 견뎌내며한결같이 군민의 자긍심 키워 희망 땅끝 만들고기나긴 세월 오직 한 자세로 해남성을 지켜 오며자신의 몸뚱아리 피부 갈기갈기 금이 가고 날개 가지 긴 세월 거친 풍파에 심히 흔들려도꿋꿋이 우리 땅 우리 곁을 지킨 주름진 수성송해마다 새롭게 달라지고 혁신 속에 발전하는희망찬 땅끝 해남 말없이
한 쌍의 아름다운 원앙새 깃털 가다듬어얕은 호숫가 구석진 풀 섶에 둥지 틀고물 위에 뜬 지푸라기와 깃털 물어다가조심스레 튼튼하고 포근한 보금자리 만드네보금자리에 물기 마르고 포근함 느껴지면사랑으로 정성 들여 알을 낳고 굴리면서서로 번갈아 가며 정답게 품어 대네 엄마가 알을 품으면 아빠가 물고기 잡아너도 한입 나도 한입 다정스럽게 오가고앞으로 태어날 자식들 희망으로 기다리며사랑과 믿음으로 행복한 가정 꾸며 놓았네새 찬 비바람이 풀섶 위 보금자리 흔들어도두터운 믿음 사랑 변함없고 헌신과 정성으로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애써 품은 둥근 알
또 한 해가 갑니다.특별히 이루어 놓은 업적도 없는데삼백육십오일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이저리도 서글프게 보일까요.해마다 연말이 되면 새해만은이웃들에게 사랑과 감사의 삶을뿌리내리자고 다짐하지만초라한 나의 자화상 앞에또 실망의 고개를 숙이고 맙니다.고마운 사람들 아름다운 만남행복했던 순간들 가슴 아픈 사연들좋았던 일들만 기억하자고스스로에게 다짐 주어도한 해의 끝에 서면 늘 회한만이 가슴을 메웁니다.어떻게 살아야 더 의연한 삶일까내 앞에 나를 세워두고회초리로 아프게 질타하면서나를 이만큼 키워준 한 해에 감사하며멋진
따사로운 아침 햇살온몸 가득 받으며 잠에서 깨면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눈물겹도록 큰 행복으로 다가옵니다.하루하루희노애락 삼백예순날대과없고 큰 아픔없이 지나온 날들이얼마나 큰 축복인지요.미워할 수 있는 마음도사랑할 수 있는 마음도살아 있으므로 느끼는 것이기에모두 한결같이 소중합니다.나를 에워싼 모든 사물과 사람들크게 은혜하고 감사하며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으로 임인년의 한 해를 곱게 곱게 보내드립니다.
맑은 물 흐르는 고요하고 얕은 냇가에넓적 돌 군데군데 보폭 맞춰 세우고흔들림 없도록 조약돌로 균형 잡으니징검다리와 아낙네의 빨래터가 완성되네어떤 여자는 방망이로 시집살이 설움두들겨 패면서 슬픔 어린 응어리 풀고또 다른 주부는 남편의 술주정 못 참고빨랫감 지어 짜면서 화풀이하고 있네부자로 사는 사람도 가난 속에 찌들어 사는 사람도 빨랫감 두들겨 화를 풀고찌든 때 빼기는 똑같은 방법을 쓰고 있네때리고 주물러지어 짜고 다시 물속에휘이 저어 달래 보기도 하며 자신의처지와 쌓인 설움을 빨래터 맑은 물에씻어 흘러보내네
가난과 함께 살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우리책가방 속 물려받은 헌책에서 가난 향기 묻어나고몽당연필 한 자루 아끼려 가난과 싸웠다검정 통 고무신 닳을까 맨발로 가난 속 헤맸고구멍 난 뻣뻣한 양말 자주 신어 떨어질까호주머니에 쑤셔 넣고 가난을 이기려 했다 가진 게 없는 절망 속에 가난은 가난을 낳고배고픔으로 고난의 한숨과 눈물을 만들었다가난에 찌들어 사는 사람들의 희망 잃은 한숨 소리 들으면서 가난 속에 섞인 우리가난에서 벗어나 대물림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하지만 쉽게 끊어지지 않고 되풀이되는원망스런 가난살이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가
무더위 피하여 아침 일찍 산에 오른다작은 물병 하나 들고 줄였다 늘였다 하는지팡이 스틱 하나 짚고 느린 발걸음 옮긴다길가에 하얗게 핀 찔레꽃 향기 나를 반기고 길가 숲속 소나무 가지에선 뻐꾸기 노래 한창이다한 걸음 한 걸음 재촉해자연 속에 빠져들고자연의 맑은 향기 공기 땅 냄새 코끝 자극해내 몸 깊이 스며든다지팡이 스틱 짚는 소리에 발걸음 가벼워지고손에 든 물병 본 다람쥐 먹거리로 착각해꼬리치며 뒤따라온다잠깐 산에 오르는 등산이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하루 일과를 위한 준비 운동까지 시켜준다산에 오르고 또 오르고 오늘을 생각하며 자연의
마른 논 갈아엎어 고랑 둑 만들고맑은 물 논바닥에 흘려보내면 들판의 봄 내음 아지랑이 핀다못자리 논물 차고 흙물 가라앉아평평한 모판 바닥 훤히 드러나면일손 바쁜 농부 볍씨 싹 틔우고조심조심 모판에 고루 펼쳐뿌린다한 해 농사 풍년 빌고 정성으로 보살피면 볍씨 모종 훌쩍 자라 푸른 숲 만들고 뿌리로 맑은 물 빨아들인 뒤잎사귀 두 손 모아 찬 이슬 마신다한낮의 햇볕에 모 줄기 굵어지고하얀 뿌리 여러 갈래 퍼져나가면 메뚜기 날아들어 풍년 농사 빌어 주고풍뎅이 날개 저어 모판 위 맴돈다곱게 자란 못자리에 모내기 시작되고 농부의 노랫가락 온
오랜 세월 비바람에씻겨 내린 산비탈 언덕에큰 바위 작은 돌 차곡차곡정성 들여 쌓아 올려안개구름 쉬어가는가장자리에 법당 세우니도솔암 처마 끝 풍경소리주변 산천초목 깨우고스님의 애달픈 염불 소리달마산 자락에 울려 퍼질 때염불에 장단 맞춰 두드리는목탁 소리 그칠 줄 모르고뒤뜰에 홀로선 보리수 열매에 구슬 이슬 걷히니산새도 높이 날아올라붉게 영근 보리수 열매 넘보네
하늘땅 맞닿은 산봉우리구름과 바람 머무는 곳울룩불룩 솟아오른 바위병풍 삼아 비바람 견뎌내고산골짜기 타고 올라온 골바람에 새벽안개 걷히니날쌘 다람쥐 먹이 찾아도솔암 법당 주변 맴돌고홀로 남은 외로운 스님엎드려 정성 어린 예불 올리니인적없는 조용한 첩첩산중 평화로운 고요함만 흐르고속세를 떠난 지 오래된지금에도 옛 추억 생각나눈물 섞인 염불로 목탁 치며두손 모아 고개 숙여 빌 때면탱글탱글 영근 보리수 붉은 열매 목탁 소리에 놀라 한알 두알떨어져 법당 마당 뒹구네
겨울 옷 벗고 봄문 열듯땅끝 해남에 불어온 문해사 바람못 배워 속앓이 하던 할매들의 한품어안아 녹이는 봄바람이다전쟁으로, 여자여서학교 근처도 못 간 할매들자식 출가하고 영감 떠난 뒤로자식의 살가운 편지마저까막눈이라 이장 찾아 줄달음치던겨울 장막 같은 갑갑한 세월하늬바람 산들산들 다가가들어주고 일깨워주는 소통으로청맹과니 벗은 할매들 마음 속마다파릇한 새 잎 새 부리처럼 돋아나고내내 밑둥에 내려앉힌 사연들수줍은 할미꽃 시를 피우는 중이다
내 고향 뒷동산에 진달래 피어나고울타리 담장 햇볕 드는 외딴 곳에 개나리 노란 미소로 향기 풍기면 이웃집 할머니 지팡이 짚고 짚어양지바른 풀섶 위에 자리 잡는다청보리 유채꽃 숨 쉬는 들판에선 종달새 먹이 찾아 하늘 높이 날고뻐꾸기 노래하며 남의 둥지 넘본다내 고향 정든 곳 꿈에도 가고픈 곳봄볕 드는 앞마당 삽살개 뛰놀고 한구석 텃밭에선 병아리 엄마 찾는데고향 떠난 오랜 친구 찾을 길 없고낯선 사람 발걸음에 삽살개 짖으면 내 고향 푸른 하늘 뭉게구름 뒤덮고친구 잃은 내 고향 긴 봄날 지나간다
겨우내 얼었던 땅속 헤짚고 이른 봄 황토밭 언덕에 갓 피어난 노란 복수초둥근 얼굴 내밀어 구름 하늘 바라본다그토록 긴 겨울밤 땅속의 물방울 머금고포근한 봄바람에 양팔 벌려 피워낸 노란 복수초둥그런 노란 얼굴 모든 시름 져 버리고한잎 두잎 새싹 틔워 밝은 희망 노래한다봄볕 드는 양지바른 언덕에 홀로 핀 노란 복수초내일의 겨울과 봄을 잊은 채 구름 머문 하늘 아래 향기 뿜어 춤 춘다봄비 그치고 밤안개 걷히면 둥근 얼굴의노란 복수초가는 봄 보내고 내년 봄 기다리며 살며시 두 손 모아 노란 얼굴 가린다
아침이다. 壬寅年은 해남으로 가자대흥사 수도승을 만나고우수영으로 가서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울돌목의 역사를 만나자.오시아노단지를 거쳐 한반도의 시작, 땅끝으로 가자청정한 바다가 있고사람냄새 나는 사람들이 사는 곳임인년은 꼭 해남으로 달려가자숨겼던 발톱을 세우자올해도 도망가지 않는저 어둠이 있으므로, 범 내려간다.어흥, 범 내려간다며, 백수의 대왕으로용맹스러운 자태로어둠의 숨통을 물어뜯어야 하므로분노로 돋아난 어금니가 아니라예지로 돋아난 어금니로정확히 피 한 방울 없이 어둠의 숨통을 정확히 끊어야 한다.호랑이 담배 피던 날도 있었고
장년의 벽시계가두근거린 가슴으로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연륜의 나이테 속에뭔가를 씻어내려는시간도 찍혀 나왔다 찬물에 몸담고 씻던 불면의 꽃 내 몸속에 탄피처럼꽂혀 감았다 푸는실타래가 불 켜진 전동판에슬슬 몸을 태우고서서히 떠오른다오늘의 태양처럼
옥봉께서는 기산마을에 태를 묻고요산요수 따라 옥천면 대산마을에터를 잡으니 물 맑은 비토가 옥천이요굵고 길게 뻗은 기맥이 흐른 대산에서글공부를 시작할 적 신동이 나왔다며 동기간도 시샘하며 앞다퉈 정진하니사형제 글재주는 일문 사문장이요 천부적 재질이 연이어 삼세삼절이라소동파 송풍의 경직성에서 벗어나낭만과 유연성의 당풍으로 탈바꿈해후세인들은 삼당시인으로 불리었고 한석봉과 더불어 명필가로 손꼽힌다생전에 남긴 작품 옥산서실에 소장하고영혼은 옥봉사에 배향 향사로 모시면서옥봉의 학문을 강마 선행 덕행코자 문우회가 탄생 영벽정에서 강론한다
명산이 감싸주고 기름진 들이 먹여주며 맑은 물이 새싹들을 키워내며 둥지를 틀어두메산골 척박한 땅을 일구며 후비어서질경이는 걷어내고 이랑에 씨 뿌리며 가꾸어가을에 결실하면 하늘이 한몫 새 벌레도 한몫나 또한 한몫인데 내 보듬은 몫이 푸짐하다해변가 농부들의 삶도 거친 풍파 이겨내며마상이 한척 좽이그물에 잡힌 고기 쬐깐해도욕심 부리지 않고 탐 없는 삶이 지족제일 부다풋 나락 물 감자는 폄하에서 나온 말이지만되레 그 표현이 애칭이 돼 그분들이 고마워 이해남인들은 여린 마음으로 어우르며 살리다
너, 나우리 모두는 나그네입니다.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무엇을 위해 살아가고또 어떻게 살아가며현실에 아파하고 고뇌하며 때론 좌절을 묵묵히 견뎌내는 우리들마지막 수레바퀴가 멈추는 역에서 참다운 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멋지게 남은 인생을 살겠습니다.칙칙-폭폭, 칙칙-폭폭나그네들이 탄 기차는 오늘도 쉬지 않고 달려갑니다.
우린 그때 그 시절주린 허리띠를 꼭꼭 동여매면서도오일장터에 들어온 시네마스코프 가설극장천으로 둘러친 시골 밤 영화관올빼미 눈초리 매발톱 피해개구멍으로 허리 굽힌 엉덩이를운수 나빠 목덜미 잡혀발길질에 피멍울이 되었어도결국 용서의 사슴되어 영화는 보았다.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행복한 시절이었노라고퍼렇게 가슴을 멍들게 한 슬픈 영화에배우들도 관객들도 눈물바다 되었다.아! 모두가 모질게 살아 온우리들의 가난한 삶 속에서도아름다운 옛 추억의 흔적들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