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쌀 책임감 갖고 판매"40여년간 해남읍 조양영농조합법인RPC를 운영해온 2대 박종서(73) 대표의 뒤를 이어 아들 박찬재(43) 씨가 힘을 보태기로 해 3대째 가업을 이끌어가게 됐다.조양영농조합법인RPC는 농사를 지으셨던 박종서 대표의 아버지가 정미소를 차리면서 운영이 시작됐다. 삼산면 금산리에서 6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박 대표는 당시 서울에서 학교생활을 마치고 전화국에 취직했었는데, 함께 정미소를 운영하자는 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여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고 한다.박 대표는 80kg씩 판매하던 정미소 쌀을 20kg 소포
"전통의 얼 담긴 막걸리 잇겠다"삼산주조장의 2대째 이중자(79) 씨가 56년간 지켜온 막걸리의 맛을 아들 한홍희(52) 씨와 며느리 이혜옥(52) 씨가 이어가기로 해 눈길을 끌고 있다.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이중자 씨는 남편 고 한상소 씨와 결혼하면서 꽃다운 23살에 해남으로 내려왔다. 삼산 상가리가 고향인 시부모님은 송지면에서 산정주조장을 운영하고 있었고, 갓 새댁이 된 이 씨도 막걸리를 만드는 길에 들어서게 됐다.이 씨가 만들어온 막걸리는 생막걸리다. 술밥을 직접 쪄서 주모를 만들고, 1973년부터 사용해온 대형 옹기에서 입
49년 옥공예 외길, 아들과 함께 걷는다49년째 옥공예에 매진하고 있는 황산 옥동리 김육남(64) 명인의 외길 인생을 아들 김혁신(35) 씨가 함께 걷게 됐다.김 명인은 강진군 칠량면에서 태어났으며 8살에는 도토리에 도장을 새길 정도로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다고 한다.아랫집 할머니가 자신의 친정인 황산면에서는 좋은 옥이 나오니 거기에 도장을 새기는 것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전했고, 9살부터는 방학 때마다 옥돌을 주워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그러다 16살이 된 지난 1968년 황산 옥동리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옥공예에 빠져들었다.
참다래 부자, '땅은 노력을 알아준다'30년간 참다래 농사를 지어온 박충길(78)씨. 그는 오롯이 친환경 유기농만 고집했다. 그 고집의 결과로 지난 8월에 열린 전국친환경농산물품평회에서 과일부분 협회장상을 받았다. 제때 나온 수박, 참외, 포도, 복숭아를 제치고 지난 12월에 생산하고 저온창고에 있었던 참다래가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이뤄낸 성과다.이런 아버지의 고집을 배어온 아들도 아버지가 일구고 만든 참다래를 지키고 싶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2년전 고향으로 귀농안 아들 박성관(50)씨. 그는 아버지의 농업을
품질 탄탄한 고구마로 전국 판매 꿈꾼다화산면 해창마을 오중석(29) 씨는 농촌에서의 삶을 개척해나가기 위해 대학교를 자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 오두진(55) 씨와 고구마 농사를 지으며 최근 법인까지 설립하는 등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중석 씨는 해창마을 토박이인 아버지 오두진 씨를 돕기 위해 고등학생 때부터 농사의 길로 들어섰다. 스무살 때에는 자동차공학과로 대학 진학을 했으나, 농업인으로서의 삶을 꿈꾸며 자퇴를 결정하고 귀향했다.중석 씨는 "도시에서의 각박한 삶 보다 농사를 지으며 농촌에서 살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며
그림 그리는 아버지 따라 아들도 미술 두각 나타내아버지의 작업실에서 놀던 아들이 이제는 한국미술계의 기대주로 성장하면서 아버지에 이어 아들까지 대를 이어 미술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부자가 있다. 마산면 연구리 출신 박오주(51)·박예찬(서울 송곡고 3) 부자가 그 주인공이다.오주 씨는 마산중학교를 다닐 때 오주 씨의 감각적인 미술적 소양을 알아본 고 정윤자 교사의 권유로 미술을 시작했다. 이후 광주조선대부속고등학교로 진학하고 경희대와 홍익대 대학원을 다니면서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 동안 6번의 개인전과 300여번의 국내
가족농업으로 일손부족 해결 새로운 시도도일손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현장에서 가족농업으로 일손부족을 일정부분 극복함은 물론 새로운 아이디어로 판로도 확대하며 농업농촌에서 꿈을 키워가고 있다.화산면 송평리 정범수(61)·안영숙(59) 씨 부부의 장남인 대웅(34) 씨는 5년 전 해남으로 귀농해 부모의 농업을 잇고 있다. 정범수 씨는 송평마을 이장을 맡고 있다.대웅 씨는 "광주에서 자영업을 했지만 이곳에서 앞으로의 비전을 찾지 못했다"며 "어렸을 때와 주말에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왔는데 농촌에서도 꿈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 귀
번창했던 표구 문화 이제는 찾는 사람만 찾아예술이 번창하던 시절, 해남에서 표구사를 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지금 해남읍에는 2곳의 표구사가 남아있다. 그 중 하나인 대림표구사는 아버지가 집에서 그림, 서예 등 작품들을 표구하던 것을 돕던 아들이 직접 표구사를 차리고 어깨너머로 배웠던 기술을 갈고 닦아 35년이라는 세월동안 표구사를 운영해오고 있다.대림표구사는 지난 1980년에 문을 연 자리에서 꾸준히 운영되고 있다. 대림표구사의 주인은 김홍(65)씨로 한문학자인 고 창강 김두만(1909~2001) 선생의 둘째 아들이다. 김 씨는
할아버지부터 이어져 온 대장간 농기구부터 닻까지 못 만드는 것 없어대장간이라는 말이 잊혀져가는 지금 옥천면 신죽리에 위치한 농어촌 농기구 제작소에는 쇠를 다듬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호미, 괭이, 낫, 조쇠, 닻 등 농어촌 농기구들이 쇳소리와 함께 만들어지고 있다. 쇠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만들 수 있다는 이 대장간은 아버지 최금석(71) 씨와 아들 최용호(40) 씨가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대장간의 역사는 최금석 씨의 아버지인 최태식 씨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남읍 호천리에서 대장간을 운영하던 아버지를 보며 자란
부모 30여년 사업 노하우에 아들의 홈쇼핑 경험 결합북평면 남창리에 위치한 땅끝매일수산영어조합법인. 부모가 다져놓은 낙지 도매에 대한 사업기반에 아들이 해남 낙지 브랜드화를 통한 직거래 등을 접목해 더욱 발전시키고 있다.땅끝매일수산영어조합법인은 30여년 전 매일수산이란 이름으로 한 칸의 수조에서 김용운(59)·오근순(55) 씨 부부가 낙지 도매업을 시작했다. 김 씨 부부는 처음 하는 낙지 도매 사업에 맨몸으로 부딪치며 노하우를 익히고 사업기반을 닦아갔다.판로도 마땅치 않았던 사업초기에는 활어차에 낙지를 싣고 무작정 서울 노량진수산시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가업 잇는다자동차정비공장인 장공업사(대표 장우기)는 50여년동안 할아버지 고 장몽암, 아버지 장우기(60), 아들 장익준(30) 씨로 3대째 이어지고 있다.장공업사는 1960년대 후반 고 장몽암 씨가 해남읍 남외리에 2급 자동차정비사업장을 세우면서부터 시작됐다. 그 당시에는 신고제가 아닌 허가제여서 서남부지역에서 최초로 자동차정비공장을 세우게 됐다. 이후 1977년에는 지금의 자리인 구교리로 옮기면서 1급 자동차정비사업장 및 검사장으로 변경했다.장 대표는 "그 당시 차를 고치기 위해서는 차를 배에 싣고 목포로
전파사로 시작, 대표 음향전문업체로 성장마을행사, 마라톤대회, 명량대첩 축제 등 해남의 크고 작은 행사를 다니며 음향을 책임지고 있는 광수전자.읍 구교리에 위치한 광수전자는 박광수(62)씨와 박지승(29) 씨 부자가 대를 이어 운영해오고 있다.광수전자의 역사가 시작된 건 지난 1978년. 수원에서 RTV학원을 다니며 TV, 라디오 수리 기술을 배운 박광수 씨가 고향인 마산면에 내려와 광수전자의 전신인 삼원전파사의 문을 열면서 부터다. 박 씨는 군대를 전역한 이후 육일시와 해남읍에서 지난 30여 년간 본인의 이름을 딴 '광수전
부친은 해남녹청자 재현, 아들은 계승 발전 1대 정동윤 선생부터 4대째 도예가 길 걸어4대째 대를 이어가며 해남 녹청자를 재현하고 그 맥을 계승·발전시켜가고 있는 도예가 부자가 있다. 황산면 연호리에 자리한 공방 '화원요'의 정기봉, 정병민 부자가 바로 그들이다. 비가 내리던 지난 17일 화원요를 찾아 남강 정기봉 선생을 만났다. 집에 들어서자 은은한 색을 뽐내는 도자기 등 청자들과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상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모두 정기봉, 정병민 부자의 작품들이다. 화원요에서는 일반 청자 뿐 아니라 국내에서 보기
"땅끝 한우브랜드화로 우수성 세계에 알리겠다"청정 땅끝해남 한우 고기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하는 젊은 축산인이 있다.그 주인공은 삼산면 시등마을 안성준(23) 씨. 지난 23일 늦은 저녁 삼산면 원진마을을 찾아 고된 농사일을 마치고 축산농장을 지키고 있는 성준 씨를 만났다.서글서글한 인상의 성준 씨는 지난해 한국농수산대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삼산면 원진마을에서 아버지를 도와 한우 50여두를 키우고 있는 성준 씨는 젊은 축산농업인이다. 23세의 젊은 나이, 거기다 깔끔한 외모까지 도무지 시골생활과는 어
싼 가격과 질 좋은 고기에 손님들로 바글바글마산면 육일시 큰길가에 위치한 한아름식당. 차를 타고 큰길을 지나다 보면 식당인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간판도 작고 건물 외형이 식당 같지 않게 허름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쇠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한아름식당은 꽤 유명하다. 한우 암소 생고기를 비롯해 1등급 이상의 쇠고기를 다른 식당에 비해 훨씬 싼 가격에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허름한 외형에 비해 식당 내부는 여느 음식점 못지않게 깔끔하다. 그래서 매일 찾아오는 손님들로 식당은 늘 붐빈다. 특히 목포 도축장에서 한우 암소를
해남군민 사이에서 염소요리 하면 떠오르는 곳은 아마도 삼산면 평활리에 있는 '송암정'이 아닐까 한다.염소탕과 수육, 주물럭 등 염소음식을 주 메뉴로 하는 이곳은 3대째 전통을 이어오며 그 맛을 지키고 있다. 지난 1984년 염소를 키우던 고 김권배 씨가 아들 김종호 씨와 함께 삼산면 평활리에 음식점을 차리며 처음 시작된 송암정은 현재 해남대표 염소요리 전문점이 됐다.지금은 김종호(65)·이상임(62) 씨 부부가 운영하고 있으며 아들인 경태(40) 씨도 지난 1996년 군대를 제대한 이후 고향에 내려와 식당일을 함께 돕
따뜻한 정과 인심 가득 40여 년간 매일시장서 2대째 장사 겨울철 서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간식이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길거리 표 음식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국화빵이 아닐까 싶다. 물론 최근 들어 붕어빵과 피자빵 등 겨울철 간식이 다양해졌지만 요즘같이 차가운 날씨면 어릴 적 먹었던 국화빵이 절로 생각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화빵 속에 담겨있던 국화빵집 주인의 따뜻한 정과 인심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찬바람이 불어 더욱 춥던 지난 14일 해남읍 매일시장에 있는 '해
가난해 시작한 석공, 아들이 예술로 이어받아아들이 전국 제일의 석장이 됐으면…북평면 남창마을 도로변에 위치한 현대석재. 이곳에는 돌이 좋아 평생 돌만 깎고 살아온 임석종 씨와 그의 아들 임태희 씨가 살고 있다.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높이 4m가 넘는 거대한 불상이 이곳을 찾는 손님을 반긴다. 그 외에도 용의 모습을 담은 용상과 인물상, 여인상, 거북이상, 비석 등 돌을 이용해 만든 수많은 조각품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작업장에 있는 대부분의 조각품이 임 씨와 그의 아들 태희 씨가 해남의 단단하고 딱딱한 돌에 따스한
한쪽이 뜨면 다른 한쪽은 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대를 이어 가업을 잇기란 쉽지 않다. 한때는 호황을 이뤘던 직종도, 직업도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차츰 역사의 뒤안길로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다양한 분야에서 대를 이어 가업을 잇고 있는 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해남읍 읍내리 매일시장 앞 도로변에서 64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매일상회.매일상회는 한복과 이불을 파는 포목점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에는 형형색색 예쁜 색을 한 이불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왼쪽에는 고운 자태를 뽐내는 수백여벌의 한복이 있다.창업주인 손양례